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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Nov 20. 2017

신하균의 일관성

신하균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새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영화가 개봉을 앞두면 다양한 홍보 활동이 진행된다. 제작보고회나 시사회 직후 진행하는 기자간담회, 최근에는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이 추가됐다. 김영란법 때문에 사라지긴 했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데이'라는 제목으로 기자들과 감독·배우·제작자 등이 다함께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자리도 있었다. 인터뷰도 이런 홍보 활동 중 하나다. 배우들은 기사를 통해 최대한 영화를 알리고, 기자들은 배우들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기사를 쓴다.


 인터뷰에 나오는 배우는 한정돼 있다. 먼저 주연 배우. 한국 영화계에서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극소수다. 이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기자들을 만나야 한다. 흔히 조연이라고 불리는 배우들도 인터뷰를 한다. 작품을 할 때마다 하는 건 아니다. 주연급 비중을 부여받았을 때다. 이런 배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 또한 많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이름 알리기에 시급한 신인급 배우 정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 담당 기자를 수년 간 하다보면 특정 배우와 수차례 인터뷰를 하게 된다. 


 과거 인터뷰했던 배우를 다시 만나게 되면 전에 했던 인터뷰 워딩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그러면 당시에 기사에는 담지 못해던 그들의 생생한 말들이 되살아난다. 새 영화에서 보여줬던 연기와 과거 인터뷰 때 했던 말들을 비교해보면서 질문을 만들기도 한다.


 대화하다보면 그때 했던 말과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다른 배우를 보게 된다. 그러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왜 말이 달라졌느냐'고. 실제로 생각이 바뀐 경우도 있지만, 그저 일관성이 없는 사람일 때도 있다(심하게는 연기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 완전히 다른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배우의 연기는 어쩔 수 없이 흥미가 떨어진다.

 신하균(43)은 인터뷰하기 어려운 배우 중 한 명이다. 어떤 배우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도 다양한 이야기를 쉴새 없이 하기도 한다. 신하균은 반대다. 그는 대개 대답이 짧아 듣고 싶은 말을 이끌어내려면 후속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낯을 가리는 편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인터뷰어의 얼굴이 익숙해져 이제 막 입이 풀릴 때가 되면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를 신뢰할 수 있는 건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하균을 만난 건 '순수의 시대'(2015) '올레'(2016) 그리고 최근 개봉한 '7호실'(감독 이용승)까지 세 차례다. 인터뷰 주제는 언제나 '어떤 연기를 원하는가'로 귀결됐다. 그러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매번 새로운 걸 원한다." 배우들이 하는 흔한 대답이다. 그러나 대부분 배우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한다. 다들 알다시피 많은 배우들은 비슷한 역할을 반복한다. 그리고나서 고착화된 이미지를 바꾸겠다며 도전을 선언한다. 흔한패턴이다. 신하균은 자신의 말을 필모그래피로 증명한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이름을 알린 이후 그는 비슷해보이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그의 행보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변신이 매번 성공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그런 도전은 '복수는 나의 것'(2002) '지구를 지켜라'(2003) '박쥐'(2009)와 같은 걸작이 나오는 데 힘이 됐다.


 7호실에서 그가 언급했던 '새로움'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들을 공유해본다.


 첫 번째,


 "새로움을 원해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저는 영화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전에 못 봤던 것들, 우리가 TV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잖아요. 캐릭터도 다양할 수 있고요. 이런 영화적인 상상력에서 나오는 인물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해서 막연하게 이상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느냐도 물론 중요하죠. 재밌는 건 저는 평범하게 살았고, 얼굴도 이상하지 않고, 그냥 무난한데, 그런 캐릭터 제안이 많이 오고 저도 그게 더 끌려요. 이전에 나왔던 영화에서 접하지 못한 소재나 캐릭터, 시대가 될 수 있어요. 그런 새로운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지?'하는 영화요."


 두 번째,


 "전 저한테 어떤 역할이 잘 어울리고, 어떤 건 안 어울린다, 이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아요. 새로운 걸 원할 뿐이죠. 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 필모그래피를 몰아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때 그때 재밌을 것 같은 걸 하는데, 제가 전형적인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해요. 새로운 이야기이지만, 관객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중요한 부분이죠.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요. 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웠어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일 수도 있고, 인간에 관한 것일 수도 있죠. 저도 그런 일을 하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연기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공감이라는 게 평범한 방식으로는 잘 안돼요. 기억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때 오래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전 그런 영화를 원할 뿐입니다."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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