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쓰리 빌보드'
비극적인 사건이 꼬리를 문다. 날 선 캐릭터들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품고 맞부딪힌다. 그 사이에 괴상한 유머가 똬리를 틀고 앉았다. 이정도였다면 마틴 맥도너 감독의 '쓰리 빌보드'를 지독한 영화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세계의 존재다. 믿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살인, 이 사건 자체도 용납할 수 없는데 범인을 잡기는 커녕 단서도 없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 세계의 냉엄한 작동 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쓰리 빌보드'는 그렇게 모진 질문을 던진다.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의 딸은 괴한에 의해 강간당했고, 죽었다. 범인은 사체를 불태워 버렸다. 경찰 수사는 사건 이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 그러자 엄마는 수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낸다. 외곽 도로 길거리에 있는 세 개 광고판에는 이같은 문구가 담긴다. '강간당하면서 죽었어.'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고?' '윌러비, 어떻게 된 거지?' 윌러비(우디 해럴슨)는 경찰서장. 이 도발적 광고에 지역 경찰은 물론 시민 사회도 발칵 뒤집힌다. 광고는 주목받지만, 동시에 밀드레드는 평판 좋은 서장 윌러비를 저격했다는 이유로 비난에 휩싸인다.
영화는 범인을 찾는 수사물도, 살인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는 스릴러물도 아니다. 흑백으로 구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물론 없고, 흔히 말하는 영화같은 사건도 없다. 단서가 없어 수사 동력을 잃은 딸의 사건을 머리에 짊어지고 끝까지 발악해보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사실 그에게 이런 분노와 무기력과 죄책감을 안긴 존재는 윌러비 서장도, 덜떨어진 경찰 딕슨도, 밀드레드 자신도 아니다. 갑작스럽게 불행이 닥쳤고, 엄마는 그 불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에 모두를 적으로 돌린 채 싸운다(그가 목사에게 독한 말을 쏟아내는 건 신의 존재로도 딸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이유를 설득하지 못해서다).
다시 말해 '쓰리 빌보드'는 불가해한 세계를 견뎌내기 위해 위악을 부리는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경찰이 내 딸을 지키지 못했고, 경찰은 범인을 잡지도 못한다'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 엄마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해요. 심하다고요." 윌러비가 밀드레드에게 이같이 말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타겟으로 삼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얼마나 비정한지 왜 직시하지 못하느냐는 핀잔이다. 단란한 가정을 가진 윌러비는 암에 걸려 투병 중이며, 살 확률이 높지 않다. 그도 이해하기 힘든 불행에 직면한 인간이기에 밀드레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이 작품의 연출은 물론 각본까지 쓴 맥도너 감독은 밀드레드를 봐주는 법이 없다. 그는 자식 잃은 엄마를 더 혹독하게 밀어붙인다. 그가 광고판을 사이에 두고 천덕꾸러기 경찰 딕슨(샘 록웰)과 벌이는 대립은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비극들을 낳고, 그들이 사는 세계는 지옥이 돼간다. 이때 밀드레드와 딕슨이 모두 거대한 불길 속에서 화상을 입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러고보니 딕슨 또한 밀드레드처럼 세계의 불합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걸 남탓으로 돌리던 인물이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투쟁을 위한 연대. 최근 영미 영화계의 화두를 '쓰리 빌보드'도 따른다. 다른 게 있다면 밀드레드의 싸움이 권력이 아닌 그들이 사는 세계 그 자체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공권력을 비웃고, 소수자를 끌어들이는 건 인간을 어떻게 구분해도 거대한 세계의 흐름 앞에서 무기력한 건 마찬가지라서다. 우리가 서로의 그런 안타까운 처지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만이 더이상 냉소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그나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영화 말미에서 그려지는 예상치 못한 연대는 바로 그런 의미다(윌러비 서장의 편지가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배우들이 완성한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마르고 퀭한 얼굴로 '쓰리 빌보드'의 세계를 상징해낸다. 그의 무표정에는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범인에 대한 분노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원망 등 복잡다단한 감정이 있다. 맥도먼드가 보여주는 폭발하기보다는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 속 격동은 때로 삶의 진실에 더가깝다.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월의 연기도 특기할 만하다. 그가 시종일관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결국 눈물을 떨구는 순간의 페이소스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두 배우가 각각 오스카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