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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Feb 23. 2024

[추락의 해부] 결혼의 해부

완벽한 균형을 이룬 관계란 가능할까






여성학계에서 혼인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미혼’이라는 용어 대신 ‘비혼’을 주장한 이래, 비혼이라는 단어는 이제 제법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이 대중화가 너무 극적으로 이루어진 부작용으로 비혼주의자가 아닌 미혼들이 본인의 결혼을 낭만화하는 데 비혼이라는 말을 끌어다 쓴 탓(원래 비혼주의자였지만, 이 사람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같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 유감이지만, 인생에 있어 결혼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의 때문에, 그리고 여성학적 나의 가치관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나 또한 비혼주의자여야 할 것 같지만 아니다. 비혼주의의 의의와 그 탄생 배경에 공감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나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간단히 이유를 자면 사람 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한 이후에도 연애를 했고, 지금 역시 하고 있다.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 하겠다. 사정이 이러니 비혼주의에 동의한답시고 비혼을 선언했다가 누군가와 결혼해 이를 번복함으로써 나름의 결심을 통해 비혼을 선언한 이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긍정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여성학적 관점에서의 가부장적 결혼 제도의 비판 지점들은 일단 제쳐두자. 왜냐하면 그것 말고도 들 이유는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숨 막히는 부분은 평생을 따로 살았던 누군가와 한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속마음은 다 몰라도 생활 패턴만은 꿰고 있을 가족들과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식사 시간, 욕실을 사용하는 시간은 물론 취침 시간도 합이 맞아야 한다. 식성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데이트를 하며 바깥에서 외식하던 것과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 그러니 가사 분담 이야기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자. 여기에 결혼을 긍정할 수 없는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주변의 결혼한 부부 중 부러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 도마 위에 올라간 어떤 부부의 사생활


문학과 학생을 집으로 초대해 인터뷰에 응하는 산드라. 그러나 인터뷰가 채 진행이 되기도 전, 위층에서 작업 중이던 남편 사뮈엘이 요란하게 힙합 음악을 트는 바람에 이내 중단되고 만다. 하는 수 없이 산드라는 나중을 기약하며 학생을 돌려보낸 후 자신의 침실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 그동안 사뮈엘은 여전히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작업을 이어 가고, 의 아들 다니엘은 반려견 스눕과 함께 산책에 나선다. 그리고 얼마 뒤, 다니엘의 애가 타는 외침에 창밖을 살핀 산드라는 새하얀 눈밭 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뮈엘을 발견한다.


추락 사고로 사망한 남편 사뮈엘 / 법정에 선 산드라


사뮈엘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와 부검이 이루어지고, 산드라는 곧 법정에 서게 된다. 법정에서의 공방은 단순히 남편의 사망 이유를 밝히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산드라를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로 보는 검사부터, 자살 기도 이후 사뮈엘이 상담을 받던 의사 등 증인으로 서는 모든 이들은 산드라가 남편에게 얼마나 냉정하고 가혹한 아내였는지 주장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이 생전에 준비해 둔, 두 사람의 부부 싸움이 적나라하게 녹음된 음성이 증거로 활용되면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의 민낯이 방청객들은 물론 아들 다니엘에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재판이 산드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마지막 공판일에 아들 다니엘이 증인으로 서기로 한다.



•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는가


자살인가 타살인가. 영화는 남편의 추락 이후 주로 법정을 배경으로 진행이 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장르가 법정 스릴러라고 보기는 힘들고, 영화에서 진정으로 해부되는 것은 남편의 추락 사고가 아닌 한 부부의 결혼 생활이다.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많은 커플들이 그러하듯 둘의 관계도 어느 지점부터 삐걱거렸다.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영화에서 설명해 주지 않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둘은 언젠가부터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했으며, 지난하고도 지겹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견디는 와중에 지난날의 사랑을 잊지 않고 문득문득 상대방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되살렸다. 그리고 아마 이는 계속해서 반복되다 마침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 한계가 바로 남편 사뮈엘의 죽음이다.


평균적인 부부들과의 유일한 차이점이랄 수 있는, 배우자사망 사건으로 인해 산드라는 곤욕을 치르게 된다. 두 사람의 날것과도 같은 말싸움부터, 산드라가 외도를 저지른 일까지 남들 앞에서 폭로된다.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하게도 남편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따와 책을 쓴 사실까지 밝혀진다. 법정에 선 산드라의 치부와 그들의 결혼 생활은 말 그대로 생선의 가시를 바르듯 낱낱이 까발려진다. 이 상황에서 산드라는 남편의 살해범으로 몰린 것과,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들킨 것 중 어떤 것이 더 괴롭게 느껴졌을까.


변호사와 산드라 / 법원에서의 산드라


이 모든 장치들 사이에 선 산드라의 모습은 마치 제단 위에 올라간 제물과도 같아 보였다. 그러나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서 그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부부의 말싸움을 반추해 보건대 산드라가 분명 냉정한 사람인 건 맞아 보인다. 네 살 때 다니엘이 불의의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이에 죄책감을 느낀 사뮈엘은 아들의 홈스쿨링을 시작하며 가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산드라는 남편의 내조 덕에 글에만 집중하여 작가로서 승승장구한다.


웬만하면 현실 속, 그리고 많은 영화에서의 역할 분담과 정반대 되는 이 상황에 원래의 나라면 은근한 짜릿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내의 헌신을 당연히 여기는 가부장적 남편들과 다를 바 없이 남편의 희생에 고마워 하기는커녕 다 본인의 선택 아니냐며 공감해 주지 않는 산드라의 모습에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산드라가 악에 절어 있는 순수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보긴 힘들다. 가족에 대한 헌신은 높이 살만 하지만 과연 언젠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아내 몰래 부부싸움을 녹음해 두고,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에 젖어 있는 남편이 무조건적인 피해자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아들 다니엘 / 반려견 스눕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 맺는 모든 관계에는 얼마간의 알력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평화로워 보이는 관계라 할지라도 어느 한쪽에 추가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매 순간 같은 쪽에만 추가 치우쳐져 있을 수도 있고, 양쪽에 번갈아 가면서 무게가 쏠릴 수도 있다. 결국 완벽하게 동등한 관계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력다툼을 서로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비록 이 영화가 남편 사뮈엘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하지 않는 철저하게 열린 결말의 영화이기는 해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상상의 나래를 펴지 않을 수 없으리라. 과연 남편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개인적으로는 자살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사뮈엘이 사전에 두 사람의 부부 싸움을 녹음을 했다는 점도 판단의 한 가지 이유이지만, 그보다 영화의 마지막 산드라가 보인 모습 때문이 크다. 아무런 대사가 없는 그 장면에서 나는 그의 감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 모든 난리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사랑, 그리고 거기에 새로이 덧칠해진 그리움이 전달 됐다. 그 모습 때문에 더더욱 나는 남편에게 매정했던 산드라를 마냥 비난할 수 없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자신의 관계에서 상대에게 얼마나 관대하고 이상적이었는지를.


행복하던 시절의 산드라와 사뮈엘






사진 출처

1. CGV

https://moviestory.cgv.co.kr/fanpage/mainView;jsessionid=C9B951E9916EE55FB777D6855DF9F80B.STORY_node?movieIdx=87979


2. IMDB

https://m.imdb.com/title/tt1700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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