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많이 받았지. 그럴 때 나가는 거야."
이 말은 내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쫓겨날 때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 전화를 받고 난 정말 세상 펑펑 울었다. 누구도 내 편인 사람도 없었고, 누구도 나한테 괜찮냐고 통화를 해 준 적이 없었기에 정말 난 서러웠고, 먹먹했고, 화가 났다. 하소연할 때도 없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안이 발의되기 전이였다. 그 신고를 할 수 있는 법도 마련되기 전이었다. 바로 직장 내 괴롭힘 법이 발의되기 전 바로 그 전년도에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쫓겨났다.
모두들 한 통속이었고 그 누구도 내가 부당하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그들 눈에는 그냥 만만하고, 자기들이 오래 댕겨야 하는 그런 희생자였기에.
"2년이면 스스로 나가게 한데. 그러니 정년까지 다닌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하니?"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내보낼 줄은 누가 알았으리라.
2년 동안 그냥 묵묵히 일만 해오고, 볼 거 다 보고, 자기들끼리 라인을 만들고 정치질을 하고, 그 것을 만만한 사람탓으로 만들고, 불륜 천지인 그런 회사를 보고, 잠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 시기에는 나는 왕따였기에. 그들은 날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왕따였고 내가 마음에 안 들면 누구든지 내 차에 펑크도 내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뿐이랴 누구였는지 몰라도 (식품회사였기에 일이 끝나면 청소를 항상 했다.) 앞치마는 물론 장화도 갖다 버릴 정도였다. 그럴 정도로 그들의 괴롭힘은 심했다. 누가 했는지 누가 주도했는지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은 없었다.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는 말했겠지 왜 윗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항상 퇴근하고 나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하고 모임을 갖거나, 술로 모든 것을 달래 왔기에. 남들처럼 스트레스 풀면 상관없었지만 그때 그 모임은 그저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노는 친목회의나 다름이 없었다.
공과 사 따위는 그들에게 필요 없었다. 그때 그 모임을 갖는 이들은 그들의 라인이었고,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줬다. 그들이 잘못해도 그들이 사고를 쳐도 무죄였다. 그들이 말하면 다 들어줬다. 친했기에. 아마 지금도 몇몇 회사들 중에서는 그런 이들이 없을 리는 없다.
부모님 시절에는 후배가 사고 치면 선배가 술을 사다 주면서 마음에 응어리를 푸는 그런 낭만적인 시대는 지금은 없다. 누구 하나는 묵묵히 들어주고 뒤에서 풀어주던 동료가 있던 시절은 이제 없다. 지금은 정치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였다. 공과 사를 행하는 윗사람은 없다. 그들은 모두 정치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는 자기들한테 아부를 떠는 이들을 더 챙기는 이들이었다. 즉 라인을 챙기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있던 아니 쫓겨났던 회사에서는 그랬다.
정말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이 되었고 별 볼 일 없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그 사건을 만든 장본인은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다. 아니 외면했다.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들이 살려고 모든 사건을 침묵했고 쫓겨난 후 그 장본인은 저리 말했다. 퇴직금을 많이 받지 않았냐고, 그때 받아야 하는 거라고. 어이가 없었다.
그 후였다 보다. 그 후 난 정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회사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느 회사든 짧게 1년도 못 넘기고 퇴사하고 입사하고를 반복했다. 병원도 여러 번 다녔다. 그럼에도 응어리는 지지 않았다. 아니 더 억울했다. 왜 내가 더 피해를 봐야 하는 걸까? 우리나라는 대체로 피해자 대신 가해자들이 더 잘 먹고 잘 산다.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은 그 고통과 기억에서 살아나기 힘든데 가해자들은 그 기억을 잊고 두 다리 쭉 뻗고 잔다니. 진짜로 불공평했다. 내 6년은 누구한테 따져야 할까?
그럼에도 살아간다. 살아가야 하기에. 난 오늘도 살아간다. 그리고 살아갈 것이고 꼭 물어볼 것이다. 뭐가 그리 잘못했냐고, 뭐가 그리 잘났기에 그리 행동을 했냐고...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