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은 원시적인 느낌이었다. 하늘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푸르고 푸르렀다.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은 자유의 숨소리였다.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내달렸다. 구름이 걸쳐있는 듯한 언덕까지 올라가 사방이 트인 전경을 보며 감탄하고 감탄했다. 밤에는 은하수와 별똥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고 새벽녘까지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모처럼 마음먹고 감행한 몽골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으며 이후 내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 회사를 떠나기 3년전, 오병곤 p75-76 -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여행은 한 줄기 빛과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회사를 떠나는 시점에 맞춰 떠난 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평소 하지 못한 경험을 하면서 여행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삶의 방향을 정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3일간 혼자 지리산 종주를 했다. 이때가 단풍이 한창인 10월이었다. 전날 밤 기차에 몸을 싣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일출을 보며 산행을 시작했다. 한창 바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마음은 급하게 산행으로 내몰았지만,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요함은 점점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산행이 진행될수록 내 마음도 함께 가을 색채에 물드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 그때부터가 진정한 산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고 느긋하게 걸으며 순간순간을 만끽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미리 예약해 둔 대피소에서 잠을 자고 한밤중 바람 쐴 겸 나와 우연히 본 수많은 별들은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지막 날 천왕봉 일출을 보며 하산해 가족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지리산에 흠뻑 매료되었고, 평생 잊지 못할 풍광을 가슴에 품게 됐다.
나는 그 뒤로도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때마다 떠나기 전에는 어김없이 발목을 붙잡는 일들이 생겨나지만, 도착해서는 내가 일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새로운 공간에서 마음속에 잠겨 있던 감각들이 하나씩 깨어날 때쯤 나는 익숙한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작은 기쁨에 몸서리친다. 그렇게 몇 번의 여행을 통해 나는 그것이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제나 거기에 숨어 있지만, 위장되고 분열되고 함입된 채 잊혀진 자기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만나는 기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흔에 떠나는 여행에서 찾아야 할 보물이다. 자, 그럼 올해는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그 특별한 곳으로 떠나보자. 마흔의 진짜 여행은 이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