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태언의 테크앤로 Aug 15. 2016

사물인터넷 법체계, 기다림·자율·책임의 균형미학을 갖자

좀 두고 지켜보고 나서 규제하자고!

http://techm.kr/bbs/board.php?bo_table=article&wr_id=130

사물인터넷 법체계, 기다림·자율·책임의 균형미학을…


사물인터넷(IoT)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모든 것의 인터넷’ 정도가 될 것이다. 인터넷과 인간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간과 기술의 공생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러한 공생관계는 조화롭고도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며, 때론 엄청난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술진보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 등 자연법칙의 제약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돼 온 역사라 할 만하다. 이러한 해방의 역사는 오늘날 급진전된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의해 가속화 되고 있으며, 인간은 자연적 제약을 넘어 무지와 단절, 소외, 사회적 제약마저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화하게 됐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풍족해졌으며, 인류지식과 인식의 지평은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그렇다고 기술의 진보가 모든 지역과 계층, 세대의 인류를 행복하게 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부는 일자리를 잃었고, 워드프로세서의 등장으로 타자수 역시 전문성을 잃었으며, 우버(Uber)의 등장으로 택시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사이버공간의 기록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기에 네티즌들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연결되고 있어 이른바 ‘잊힐 권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보사회의 심각한 역기능으로 대두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망각의 존재인 인간이 정보기술의 힘을 빌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존재가 돼가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현실을 인류역사 진보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기술진보의 이득이 훨씬 크므로 부작용은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누군가는 부작용이 인간존엄을 저해한다면 이득이 아무리 크더라도 기술진보의 본질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입장에 설 것이다. 기술의 진보 역시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항상 양면적 속성에서 비롯된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보사회의 법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기술의 진보를 고양하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전통적 기본권을 지켜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룰 것인가?

법은 경험에 기반한 합리성이라는 원칙을 본질로 하므로 결국 법은 보수성을 본질로 사회를 규율하므로 ‘점진적 개혁’을 넘어설 수 없다. 한편, 기술은 현재의 확립된 이론을 깨거나 뛰어넘음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이른바 ‘파괴적 혁신’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그 본질은 진보성에 있다. 새로운 기술을 채택한 세력은 기득권을 흔들고 기득권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법을 동원해 온 역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법이 기술을 선택해 지배권을 공고히 하기도 하고 기술이 법을 무찔러 온 역사가 인류사회의 지배와 혁명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전쟁의 시대에는 파괴적 혁신을 잘 달성하는 경제가 지배적 승자가 된다. 이같은 현실에서 법과 기술을 우리가 어떻게 다룰지는 중요한 문제다. 필자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드러나는 충돌적 현상을 선제적으로 간섭하거나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보다는 기득권층과 충돌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측면을 충분히 경험하고 사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자율적 조정이 작동하지 않음이 명백해 질 때 국회나 정부가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법 정책이 운용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전략이 바람직하다.


첫째, 사전규제보다는 동반규제 내지 사후규제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 이러한 관점은 급속한 기술진보로 인해 미래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고도의 정보사회에서 특히 유효하다. 예컨대 과거 여러 가지 정보통신과 관련한 법률들은 산업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출발했으나 정보의 이전 제한과 보안의 강화 등 각종 규제사항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강자들은 국경, 시간, 디바이스의 한계를 초월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컴퓨팅의 기술적 방식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예상해 내놓는 규제책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 산업의 발전은 민간의 창의성과 역동성에 맡기고 컴퓨팅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정적 기능들은 기존의 법을 개선하면서 천천히 사후적으로 규제해나가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투명성 제고를 통해 자율규제 유도하는 방법.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의 산업적 활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반면, IoT시대 개인정보의 남용이 범람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로 프라이버시 보호 또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개되거나 동의 받은 개인정보의 산업적 이용을 강조하면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고, 사생활 보호를 강조하면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이 어려워지는 난처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 관련법은 비교법적으로도 대단히 엄격하고도 강한 규제를 법정하고 있어 빅데이터 경제시대에 맞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산업계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규제완화 방안으로서 자율규제를 유도하되 사후 책임을 엄격히 묻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기업은 지금보다 좀 더 용이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되, 그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 이용자의 자기정보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추후 이러한 자기정보통제권이 침해될 경우 간편하고도 신속한 소송을 통해 구제하는 등 엄격한 제재를 사후 신속하게 시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우려도 극복하면서 개인정보의 산업적 이용의 길도 열어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권침해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구제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법.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전개되는 사이버상의 각종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스마트 디바이스의 급속한 보급과 소셜네트워크(SNS)의 확산에 따라, 이러한 침해는 급속하고도 광범위하게 이뤄져, 이에 대한 적절한 구제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인터넷 기업이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와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하고, 분쟁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준사법 기관을 설립 운영해 기존 사법구제절차를 충분히 보완해주는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의 혁신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속도가 눈부신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사이에 글로벌 소프트회사의 독점력은 극도로 강화돼 넷스케이프와 리얼플레이어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음악 P2P 업체는 번성하고 음반회사와 작곡자들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한편, 정부 주도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인터넷 실명제로 국내 토종기업은 어려움을 겪었고, 구글의 유튜브와 페이스북은 외국 IT기업의 무덤으로 인식되던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너무 느린 법의 개입도 문제이지만 섣부르게 기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렸던 산업사회의 경우, 기술과 사회진보의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고, 이른바 테크노크라트로 불리는 지배엘리트가 독점적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상당 부분 효과적이기도 해서 기술에 대한 국가 리더십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일궈냈는데 바로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인터넷산업의 눈부신 발전의 배경에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의 이른 도입과 국민PC의 보급운동이 있으며,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집행한 것은 다름 아닌 정보통신부를 주축으로 한 한국정부였다.

이러한 산업사회의 성공신화가 정보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리라는 믿음은 과욕인 동시에 오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 예측은 고사하고, 현재 상황의 정확한 파악마저 힘든 대규모 정보의 홍수 시대와 1인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을 획일적이고도 경직된 법규범으로 사전적으로 규제하려는 시도는 그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유동적인 상황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도록 법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기다리되,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기존의 제도를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다림과 자율, 그리고 엄격한 책임의 균형미학이 법의 운용철학이 돼야 한다.

<본 기사는 TECH M 제20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빅데이터 효용 높이고 부작용 줄일 해법 찾아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