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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아 Nov 17. 2020

병원의 사생활



BBC 선정 세계 10대 극한 직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신경외과’ 4년 차인 의사의 기록이다. 이 책은 2017년 8월 글항아리에서 출판되었고, 저자는 김정욱이다. 성균관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 부속 삼성창원병원에서 신경외과 전공의로 수련 중이다. 저자는 의대 재학 시절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턴 시절의 어느 날, 응급실 진료를 보던 저자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두통 환자의 벌거벗은 발을 응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양말을 신는데, 그 환자는 맨발인 채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그런 것조차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픈 걸까’ 그의 심경을 살피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스스로가 생각해도 끔찍했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얼른 그림으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 병원 그림일기의 시작이었다.     


건강, 병원에 관한 책을 찾아보다가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신경외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의사로서 병원생활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 내용에 어울리게 그려진 그림이 눈에 띄었다. 1부 ‘벌거벗은 자와 살아남은 자’에서는 33개의 이야기가, 2부 ‘신경외과 극한의 직업으로’에서는 3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외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신경외과의가 항상 메스를 잡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머리나 척추 혈관의 문제도 신경외과 영역에 속하는데, 예전에는 두개골을 열고 수술로 치료하던 뇌동맥류를 요즘은 간단한 혈관 내 시술로 해결하곤 한다.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신경들이 뭉쳐 있기에 감히 인간이 메스를 댈 수 없어 No men's land라 불리던 뇌의 깊은 부분들을 지금은 방사선 치료나 내시경 시술로 쉽게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뇌종양 수술 후 치료와 항암치료가 끝났지만, 병원 권고 재원일인 한 달을 훌쩍 넘어도 퇴원하지 않는 정 씨 할머니와 태어난 지 10개월 된 아기가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을 한 이틀째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는 안타깝기만 했다. 의사로서의 임무는 충실히 하면서 환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따뜻하다는 걸 느꼈다.

  

수술방에 도착해서 환자를 쳐다보며 이름이 뭔지, 어디 수술받으러 왔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 순간,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겁에 질린 환자의 얼굴이 아니라 환자의 동공에 비친 저자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저자도 오래전에 수술을 한 번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두려움과 긴장을 했었고, 무기력했다. 이 환자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고, 그때 이후로는 침대를 끌고 수술방에 들어갈 때면 항상 환자의 손을 잡아줬다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환자들 모두 스스럼없이 손을 꼭 잡았다. 수술이 끝난 뒤 병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때 드갈 때 의사 선생님이 손을 꼭 잡아줘가 참말로 고마웠데이’라고 감사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환자들은 그런 의사가 믿음직스러웠을 것 같고, 환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저자가 보기 좋았다.             


어느 추석 연휴에 주말까지 쉬게 되는 장기 연휴기간에 인턴의 일은 똑같다. 엄마에게 전화드려 집에 못 간다고 말하고 병동으로 일과를 시작하러 가던 도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돈 번다고 안 가는 셈 치지만, 아픈 환자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구나. 서글퍼진 마음에 뭔가 해드릴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편의점에 들러 초코파이 몇 박스를 사서 병동으로 갔다. ‘명절인데 차례도 못 지내고 친척들도 못 만나고 속상하죠? 얼른 쾌차 하시 라고 떡 대신 준비했습니다. 아들이나 손주가 드리는 거다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얼른 나으시고요’하며 진료를 마친 환자들에게 초코파이를 내밀었다고 한다. 참 정감 있는 의사인 것 같다.    


이 책을 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지금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처럼 환자에 대한 배려가 많은 의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에필로그에 적힌 저자의 글이 마음에 들어 적어본다.    

‘내가 매일 만지는 뇌세포의 두께는 1 마이크로미터, 6세면 그 성장이 거의 완료되며, 머리를 다치거나 뇌출혈이나 뇌경색 따위를 겪지 않는다면 뇌세포는 우리가 눈감을 때 함께 삶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그 세포는 그렇게 그저 누군가의 머리 안에서 잠시 살다 가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추억을 기억중추에 저장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행동을 지시하는 제 역할을 다하고 가는 것이다. 내 손 아래 환자의 뇌세포나, 내 머릿속의 뇌세포나 몽땅 마찬가지다. 막 태어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갈 때부터 함께해온 이 녀석은 어쩌면 내가 기억해내지 못한 많은 것을 다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사랑했던 이가 나를 바라볼 때의 눈빛, 어린 나를 품에 안고 사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냄새, 서로 꼭 붙어 함께 손잡고 자라온 동생의 웃음소리, 그리고 내가 나를 믿지 못했던 순간에도 언제나 나를 믿음으로 감싸 안아주시던 엄마의 체온. 이 모든 감각을 기억한 채 이제 내 뇌세포는 운동 중추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려 한다. 그 신호가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이 정도 시간을 견뎌낸 신호라면, 이 정도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 신호라면 어디로 향하든 결국에는 가장 나다운 곳으로 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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