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 담벼락엔 유치원 꼬맹이들의 봄소풍 행렬을 보는 듯 노란 개나리꽃이 왁자지껄 소리 내어 웃고 있어요. 살랑이는 봄바람에 청치마 자락이 살짝 들춰지며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고요. 꽃집을 지나칠 때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서로 예쁘다고, 향기가 좋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 장미, 프리지어, 안개, 엘레강스를 볼 수 있지요.
며칠 전에 다섯 살짜리 꼬맹이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가게 되었어요. 아이는 활짝 열려 있는 창문에서 들어오는 봄바람을 잡으려는지 손을 내밀어 봅니다. 저 역시도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날 봄바람에서는 어디선지 모르게 라일락 향기가 실려오는 듯했습니다. 뒷좌석에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배경 뒤로 오래전 학교 정원에서의 그분과의 향기로웠던 시간들이 오버랩되었답니다.
라일락 향기가 학교 정원을 물들게 했던 오월, 20대의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순수했던 수녀님과의 만남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한여름에도 긴팔의 하얀 제복을 정갈하게 입고 너그러이 모든 걸 다 포용하는 미소가 어울린 수녀님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어떻게 변하셨는지 궁금하지만 어떻게든 연락이 닿는다면 먼저 그 수녀님을 만나 뵙고 싶어 집니다.
문득,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다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리움의 대상에게 또는 영원히 좋은 인연으로 맺으려는 사람에게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새삼 새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할 사람인 경우에 이 한마디의 말은 분명히 상대방에게 못다 한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보고 싶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먼저 구원의 말을 내뱉어 손을 내밀듯이 상대방의 가슴을 알싸하게 만드는 간절함을 품고 있기에 말입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바다의 잔잔한 물결처럼 가슴속의 애잔함과 울컥하는 마음들을 가져오지만, 이 짧은 한 마디의 말에 보고 싶어 하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된다면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보고 싶다"는 말은 상대방과의 좋은 정을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미운 정까지 함께 나누었을 경우에 가슴속 수면에 전해져 오는 파급효과의 동그라미가 클 것입니다. 그건 미운 정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서로 간의 굳건한 믿음이 뒷받침해 주었을지도 모르니까요.
봄바람이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와 간지럼을 태우는 날엔 가슴속의 그리움들이 헬륨가스를 주입한 풍선처럼 날아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