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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울기a Apr 13. 2024

물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해

차장님의 조언 EP09

팀장님께서 해외출장을 가셔서 공석인 상황.

다른 차장님A는 외부행사에 참석 후 복귀하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팀원들만 있는 그룹 채팅방을 개설한 뒤 “먼저 퇴근합니다” 라고 메시지를 보냄.






차장님


넌 이런 거 배우면 안 된다.

이건 굉장히 잘못된 거야. 지금 엄연한 근무시간인데 퇴근하겠다는 거잖아. 팀장님만 빼놓고 채팅방을 개설한 것 자체가 이 상황이 지금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잖아. 차라리 장과장처럼 연차를 쓰던가.

“먼저 퇴근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것도 아니고, 먼저 퇴근한다고 하는데, 여기다 대고 뭐라 할 말이 있겠냐.     

예를 들어 애매한 시간에 행사가 끝나서 회사로 돌아오면 퇴근 시간이랑 비슷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늦게 도착할 것 같은데, 시간이 애매하니 먼저 집에 가봐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물어볼 수는 있겠지. 왜냐하면 모두가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잖아. 그런 상황도 아니면서 내가 오늘 먼저 퇴근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마음대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


설마 다 알면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랬겠냐. 아마 지금 이게 잘못됐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거야. 왜냐하면 이제 우리 나이, 우리 직급 정도 되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거든.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짬도 좀 찼고, 직급도 낮은 편이 아니고, 나이도 많잖아.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너 이거 잘못 됐어” 하고 말해줄 사람이 없는 거야. 그러니 혼자 판단하기로는 어차피 팀장님도 계시지 않으니까 그냥 집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굳이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네가 보고 배울까봐 그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주변에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빠르고 쉽게 물들 수밖에 없거든. 지금이야 똑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내가 나무라고 바로잡아주면 되겠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면 어느 순간 금세 동화될 거야.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 몸에 배기고, 점점 짬이 차면 이제는 아무도 터치하지 않게 되는 거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뒤돌아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런 나를 발견하고 바꾸려고 해도 마음처럼 되질 않아.






사람은 간사해서 편한 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생물이야. 누구나 그래. 아무리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더라도 압박이 없고 분위기도 편하면 거기에 맞게 적응하게 돼. 그래서 처음에는 맞게 가더라도 잠깐 흔들리면 금세 잘못된 방향으로 빠질 수도 있어. 설사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것들이라도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야.


해외법인으로 파견 갔던 B라는 친구가 있어. 신입 때부터 쭉 봐왔었는데, 진짜 성실하고 사람 참 괜찮거든. 잠깐만 얘기해봐도 착하고 올바르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사람이야. 내가 잠깐 해외법인으로 파견 갈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만났었거든. 같이 2주일 정도 빡세게 일하고 귀국할 때까지 하루 이틀 정도 쉬는 일정이었어. 이제 해야 할 일이 다 끝났으니까, 프로젝트 같이했던 사람들이랑 다 같이 회식하는데, 몇몇 사람들이 엄청 취해서 유흥업소에 가자고 하는 거야. 그때 B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라고. 그리고는 어떤 덩치 큰 남자가 식당으로 왔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법인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더라고. 이미 몇 번 해본 것 같아. 그 남자랑 서로 아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너 굉장히 능숙하다?” 하니까, "여기 있으면 그렇게 돼요" 라고 능글맞게 얘기하더라. 그렇게 다들 떠나고 나서, 따라가지 않은 사람들끼리 한 잔 더 하는데 뭔가 허탈하더라고. 


얘도 처음에는 안 그랬겠지. 그런데 나처럼 잠깐 법인에 들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외부 관계사들은 또 얼마나 많이 접대를 하겠어. 그러니까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한 거야. 물론 B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여전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 다만 환경이 바뀌면, 사람은 거기에 맞게 물들 수밖에 없어. 순간이야.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흐트러지진 않았는지, 생각하는 대로 살고있는 건지 항상 경계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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