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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녁 식사 도중에 어머니께서 젓가락을 조심스레 놓으시며 한숨 가득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네 친구나 주변 사람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사는데 왜 너는 혼자서 네 마음대로 인생을 허비하며 아직 그러고 사느냐고 하셨다. 그렇게 비수처럼 날라 온 구박과 함께 명절의 조상님보다 먼저 제사상에 오른다. 아무런 대꾸와 반응 없이 식사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는데 그런 나의 모습이 답답하셨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말씀하시기를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던 네가 왜 이렇게 ‘타락’해 버렸냐고 걱정스러운 푸념을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뜬금없이 토해낸 ‘타락’이라는 단어가 너무 웃겨서 밥알이 입 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뒹굴며 웃었다. 종교 활동을 하지 않는 분이기에 그 단어는 너무나 생경한 운율로 전달되었고 당신이 우려하시는 지금의 내 삶과 ‘타락’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감의 괴리가 폭소를 불러일으켰다. 근래에 힘드신 일이 많았는데 혹시 이상한 종교에 빠지신 게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잠시 보다가 다시 ‘타락’이라는 단어의 극적인 환기에 눈물 나도록 웃고 말았다. 바보같이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며 ‘내 아들놈이 분명 타락했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어머니, 저는 타락한 게 아니라 조금 자유롭고 유연하게 사는 것뿐이에요. 남들과 같지 않다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나름의 인생을 즐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깔끔하고 넓은 집, 윤기 흐르는 차, 안정적인 직장, 알콩달콩한 가정은 비록 성취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착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루하루 제 몫을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소박하고 볼품없이 보이는 삶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니 현재 제 삶은 극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