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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Nov 18. 2018

움직임과 춤과 텍스트 사이

프로젝트 이인 <연인들은 바닥없는 호수에서 헤엄친다>

프로젝트 이인의 <연인들은 바닥없는 호수에서 헤엄친다>가 10월 20일과 21일 이틀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됐다. 프로젝트 이인은 공연예술을 공부하는 라시내, 최기섭 두 사람이 결성한 공동창작 프로젝트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서울대학교 인문소극장에서 초연했고, 올해 재공연 무대에 올려졌다. ‘연인’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남녀 두 사람이 작품을 꾸린다. 현대무용을 전공했고 공연예술 이론을 공부하는 최기섭과, 미학을 공부하며 무대에도 서고 있는 하은빈이 주인공이다.


공연을 보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를 위해 조금은 냉철한 시선으로 공연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1시간 남짓 되는 이 공연은 사실 춤 자체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담론이 많은 편이었다. 공연의 제목, 출연자와 필자의 이야기, 연습 과정이 담긴 24쪽짜리 텍스트… 프로그램북 첫 장에 적힌 길지 않은 소개와 안무 의도, 감상을 앞둔 관객에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올드팝에 맞춰 두 사람이 준비된 춤을 춘다. 이들은 나란히 간격을 두고 마주 선 채 약속된 안무를 수행한다. 스윙 리듬감에 맞춰, 입가엔 약간의 미소가 배어 있고, 때때로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마주쳐 흥을 돋운다. 이 장면은 다음에 이어질 장면과 굉장히 스타일이 달라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공연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 두 사람의 왈츠가 펼쳐지면서 두 장면이 수미상관을 이루게 된다.


볼룸 댄스 스타일의 두 가지 춤이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일종의 형식적 장치라면, 그러한 틀 안에 담긴 움직임이야말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 닿아 있을 것이다. 잠깐의 암전 뒤 남녀는 자유롭게 무대를 거닌다. 비정형적인 듯 보이지만 때때로 같은 방향을 향해 걷도록 계획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소리 없는 공간을 거니는 남자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데 반해 여자의 시선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 두 사람이 콘택트(contact)를 시도한다. 서로의 몸이 닿지 않도록 하면서, 마치 접촉즉흥을 수행하듯 연결성을 만들어 낸다.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은 다소 학구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현대무용 초기 안무가들이 만든 메소드에 충실히 어떤 ‘움직임’을 만들고자 한 시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공연 내내 머릿속에 어떤 이론들이 자주 떠올랐다. 험프리의 ‘낙화와 회복’, 그레이엄의 ‘수축과 이완’ 같은 움직임 이론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같은 프레이즈를 반복하거나 무대 위에서 탈의하는 모습은 소규모 극장에서 열리는 실험적 공연에서 자주 볼 수 있던 클리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끝을 단단히 매듭진 밧줄의 양쪽에 서서 서로의 무게를 실어봐야만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다.


오랜 시간 음악 없이 무대가 진행됐기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긴장도 한층 더해갔다. 남녀는 두어 번 옷을 갈아입고 때론 격렬한 운동선수처럼, 때론 첫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처럼 무대를 이어갔다. 이내 두 사람의 아름답고도 슬픈 왈츠가 끝이 났고, 불 꺼진 캄캄한 댄스플로어 위에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오랜 시간 굴렀다.




춤의 경계선을 헤치고


<연인들은 바닥없는 호수에서 헤엄친다>는 하은빈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까. 프로젝트 이인의 공연은 특정한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일까.


프로그램북에 밝힌 안무 의도에 따르면 이 작품은 보통의 몸을 안무의 소재로 삼아 각자의 몸이 가진 가능성을 한계까지 밀고 나가 춤에 다다르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에는 “무용은 흔히 무용수의 뛰어난 신체 능력과 기교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오늘날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무용가들은 자주 외적 요소를 끌어와 춤을 단순히 춤으로만 보이지 않도록 애쓴다. 또 한편에서는 (스스로 ‘한낱’이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종의 ‘춤’으로 불리기 위해 노력한다. 각자의 위치를 전복하고자 노력하는 다소 기이한 현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어떤 시도를 하든 결국 모든 움직임이 춤이라는 점이다.



오래전에 농당스(Non-Danse)의 개념이 출현했고, 그 뒤를 따라 등장한 수많은 작품과 이론이 정형적 의미의 춤이 이미 소멸함을 증명했다. 모든 것이 춤이 될 수 있다는, 춤의 가능성을 활짝 연 것이다. 프로시니엄 무대에 차려진 성찬 같은 무용은 이미 현대무용의 탄생으로 부정됐고, 그 현대무용은 이본 라이너로부터 부정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들이 프로그램북에 적은 ‘아름다운 몸이나 탁월한 기교는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는 오히려 지나간 춤의 역사를 되짚는 것처럼 들렸다.


두 사람의 춤은 어떤 텍스트, 어떤 설명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용기를 내 관객 앞에 나선 이의 진실한 마음, 그 마음을 온전히 담은 움직임이 춤이 아니고 무엇일까. “춤이 춤이 되기 위해” 한계를 실험하고자 하기보다 서로 공유하는 생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발현한다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순간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사진제공_프로젝트 이인 

**프로젝트 이인의 블로그 >>> https://projectyyin.blog.me

***프로젝트 이인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projectyyin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 실린 리뷰입니다.

인디언밥 홈페이지에서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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