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 무용단체 17/18 시즌 경향 보고서
작년 말부터 준비한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극장과 춤, 동시대를 움직이는 전략들: 해외 주요 무용단체 17/18 시즌 경향 보고서’는 영미·유럽·러시아·아시아·중동 권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발레단과 현대무용단 각 10군데를 선정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를 통해 세계의 무용단체가 추구하고 있는 기획 전략을 공유하고, 국내 무용계를 형성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이 보고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년도 문예진흥기금(공연예술 창작활성화 및 관객개발을 위한 예술프로젝트 지원사업)을 지원받아 발간·제작됐습니다.
이 보고서의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지하며, 내용의 일부를 가공하거나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책자 형태의 보고서는 문화예술 주요 기관과 공간에 배포됩니다.
PDF 열람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epilogue
지난 9월, 개강 후 학교-집-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건강한(?) 생활에 몸을 비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특이한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공연예술 창작활성화 및 관객개발을 위한 예술프로젝트]라는, 정기공모에 없던 지원사업입니다. 방학 내내 수정한 학술지 논문 투고가 불발되면서 시무룩하던 차에 ‘역시 공부는 아닌 건가’ 하는 마음으로 첨부파일을 열었습니다. 지원사업을 위해 무언가 새로이 구상하기보다는 평소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것을 구체화시켜봤습니다. 한창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터라 그 결과물이 책 형태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사업 서류 쓰는 게 예상보다 어려웠지만, 이미 연초에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단 공모에 도전한 (그리고 떨어진)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공모는 크게 세 가지 항목(①창작촉진 ②관객개발 ③유통)으로 나뉩니다. 눈길이 가는 쪽은 당연히 창작촉진-비평활성화 항목이지만, 아직까지 스스로의 이력이 비평으로 지원금을 받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 개발을 위한 ‘공연예술 시장 현황 파악 및 분석을 위한 연구’ 항목에 맞게 사업계획서를 꾸렸습니다.
큰 기대가 없던 터라 사업계획서를 오래 검토하기보다는 예산 계획은 제대로 세웠는지, 내 포트폴리오는 꼼꼼하게 챙겼는지 확인했습니다. 지원 자격이 최소 3년 이상(16-18년) 유사 프로그램의 기획, 운영 실적 증빙 가능한 예술가·단체 및 기획자였으니, 3년 이상의 유사 경력을 갖고 있으며 설계한 사업 계획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 부분을 타인에게 증빙하는 과정에서 내가 재단과 극장에서 일한 시간 동안 한낱 직원의 마음으로 출퇴근했는지, 자신의 지향점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참 많이 생각한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에 공모 결과가 뜬 날, 마스킹 없이 적나라하게 적힌 이름 세 글자와 사업명 [해외 주요 무용단체 17-18 시즌 동향 보고서 발간], 지원 예정액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너무 기쁘고 신나서 방방 뛰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지원 사업은 창작부터 비평, 관객 개발, 유통, 교류까지 광범위한 범위를 포괄하는 사업이다. 주최 측이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원자들이 평소에 공연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사업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선정된 사업 중에는 이러한 취지에 맞게 새롭고 흥미로운 기획들이 꽤 보인다. (…) 이 사업이 민간이 공연 제작을 해오면서 평소 꿈꾸고 도모했던 새롭고 혁신적인 기획들을 현실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누군가에겐 별것 아닌, 숱한 지원사업 중 하나일지 몰라도 심의평 마지막 문장이 제게는 얼마나 두근두근하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다만 선정되고 나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업 기간이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라는 점이었습니다. 단 세 달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과, 악명 높은(?) e나라도움을 처음 써본다는 것. 선정자를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심의위원 한 분이 한 이야기도 꽤 오래 머리에 남았습니다. 새롭게 낸 공모라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업이 선정됐는지 궁금해하고 지켜볼 것이니 좋은 결과를 내셨으면 좋겠다는 말.
사업계획서에 쓴 연구 설계 과정은 세 분께 자문을 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조사 설계를 완료한 시점이 12월이었고, 이에 따라 자료 조사와 원고 작성을 두 달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사와 분석은 선정한 단체의 기초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통시적으로 살펴본 후에 개별 단체를 세부 분석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매일매일 분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보니 (그리고 기억력도 안 좋은지라) 자꾸만 분석틀을 잊어버리게 되고, 앞선 내용을 끊임없이 뒤적이느라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제가 수집한 자료와 친구의 도움을 받은 부분이 구성이나 분량이 판이했기 때문에 분석 단계에서 기초 자료부터 다시 긁어야 하는 경우도 숱했고요. 처음이니 어쩌면 시행착오가 많은 것이 당연한지 모릅니다.
좌절하는 순간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페이지가 막히면 혼내면서라도 도와주던 선배도, 깔 때 까도 해결책을 제시해주던 편집장도 없는 게 새삼 어려움으로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아직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기엔 깜냥이 부족한 건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원고를 쓰다 막힐 때마다 편집장이 있더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상상을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어려움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e나라도움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1월부터 본격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포기할까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결과물을 못 내거나 애매하게 종료하느니 차라리 포기 절차를 밟는 게 깔끔할 것 같았습니다. (이 지원금을 받으면서 앞으로 최초예술지원을 못 받게 됐는데, 포기하면 그 가능성이라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지배적이었고요.) 결정적으로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e나라도움 시스템에서 사업을 중단하는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고, 이 사업을 담당하는 예술위 직원이 창작산실로 바빠서 도통 연락이 어려운 덕분입니다. 울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봄 학기 시작 전에 끝내는 것이 목표였으나 당연히(?) 불가능했고, 결과 보고서를 제때 제출하고 예산 집행은 그전에 마무리한다는 약속을 하고 사업을 3월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올초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보고서를 쓰는 생활이 돼버렸습니다. 더 미룰 수 없기 때문에 막바지에는 하루에 끝내야 할 원고량을 달력에 적어 ‘셀프 마감 독촉’을 만들었습니다. 쓰는 게 너무 어렵고 힘든데 잠들 수 없어서 책상에 앉은 채 울 때면 얼마나 서럽던지요.
보고서이니 내용을 체계적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것만 아니라,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보다는 그저 ‘예뻐야 한다’는 마음이었고요. (한글과 영문이 병기되니 폰트가 조화로웠으면 좋겠고, 공연 사진이 드라마틱하게 배치됐으면 한다는 정도랄까요.) 이 애매하고도 까다로운(?) 조건은 능력자 아트디렉터의 손에서 완전하게 구현됐습니다. 사업계획서를 낼 때만 해도 이렇게 실장님과 밀착해서 작업할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책을 받아보고 멋지다고 감탄해주셔서 너무나 뿌듯한 마음입니다.
책이 나왔고, 배포도 마쳤지만, 그리고 공식적으로 사업실적보고서를 내고 4월 30일까지 정보공시를 끝내겠지만 아직 이 사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비록 기간 내에 수행하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브런치 채널을 통해 재편집한 콘텐츠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다면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짧은 논문을 완성할 계획도 있습니다. (네, 물론 실현 가능성이…) 마감을 할 때는 ‘책만 나오면 된다’, ‘다시는 이렇게 힘든 사업 계획 안 낸다’는 생각이었습니다만, 사람의 욕심이 무서운 것이 기회가 닿아 보고서를 시리즈로 이어갈 수 있다면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힘들었지만 마감과 의무가 없더라면 절대 실현하지 못했을 기획입니다. 사업계획서와 포트폴리오만 보고 제게 지원을 결정한 예술위에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 중에 ‘받는 사람만 받는 지원금 대상에 네 이름이 있어 무척 놀랐고, 말은 못 했지만 조용히 응원했다’는 말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서른 전에 또 이런 기회가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