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검찰관>과 <4&9>
세계 무용계의 주목을 받는 두 단체가 내한한다. 캐나다 출신의 크리스털 파이트는 유수의 무용 단체에서 러브콜이 쇄도하는 안무가로, 동시대 컨템퍼러리 댄스 가운데서도 단연 독특하고 매력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중국의 젊은 안무가 타오 예는 중국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한 동양적인 미감, 명상하는 듯한 미니멀한 안무 스타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비슷한 기간에 동양과 서양의,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다.
키드 피벗 <검찰관> | LG아트센터
특정한 의미를 담거나 플롯을 표현하기 위한 춤은 진정한 의미의 춤이 아니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모든 예술 장르에 시대사조가 존재하듯, 무용 역시 스토리 중심의 클래식 발레에서 다양성과 실험을 보여주는 컨템퍼러리 댄스로 중심이 옮겨왔다. 그런 면에서 안무가 크리스털 파이트(Crystal Pite)와 키드 피벗(Kidd Pivot)의 행보는 조금 독특한 지점이 엿보인다. 미니멀리즘이 아닌 맥시멀리즘을 지향하며, 일종의 무용극과 같은 종합예술 형태의 작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털 파이트는 움직임을 기반으로 음악과 텍스트, 조명·무대 등 풍부한 비주얼을 융합한 새로운 차원의 무대를 구상한다. 대사와 춤은 조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무대의 악보가 되고, 음향과 조명, 무대장치와 어우러져 극적인 표현을 한껏 폭발시킨다. 무용수들의 풍부한 표정은 작품의 의미와 표현을 극대화하고, 적재적소에 빛을 발하는 스트로보 조명은 무대 위 해프닝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 낸다. 연극적 요소와 최적의 조화를 이루는 작품 스타일은 그녀가 오늘날 세계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안무가로 꼽히는 이유가 됐다. 현대 예술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직설적이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마력을 지녔다.
내한 예정인 <검찰관>(2019)은 키드 피벗의 최근작으로,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의 동명 희곡(1836)을 바탕으로 한다. 어느 작은 마을을 찾아온 하급 관리를 검찰관으로 착각하면서 벌어진 소동을 통해 부패가 만연하던 당시 러시아 관료 사회를 풍자한다. 크리스털 파이트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극작가 조너선 영(Jonathon Young)이 무용에 맞게 대본을 새로 썼고, 키드 피벗의 구성원들이 음악과 무대·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극작가와 전문 배우들이 녹음한 대사가 내레이션으로 사용된다. 불안정한 사회를 은유하는 불빛 아래 관료주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복장의 무용수들, 여기에 일그러지고 한껏 과장된 표정이 키치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중 핵심은 가장 클래식하고, 심지어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는 점이다.
편안한 안락의자에 기댄 채 등 뒤로 관객을 바라보는 검찰관의 표정에 숨겨진 의미가 궁금하다.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정교한 무대 뒤에 안무가는 어떤 섬뜩한 메시지를 감춰두었을까?
타오 댄스 시어터 <4&9>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동양의 컨템퍼러리 댄스를 논할 때 가장 먼저 손에 꼽는 곳은 중화권 최초의 현대무용단으로 기록되는 클라우드 게이트 댄스 시어터다. 그러나 1973년 창단 이래 꾸준히 안무작을 발표하며 창립자이자 창작자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온 린화이민(Lin Hwai-min)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단체의 위상이 흔들리는 실정이다. 대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를 비롯, 홍콩·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무용 단체가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 현대무용단으로는 처음으로 링컨 센터·테아트르 드 라 빌 등 세계 주요 극장에 초청됐고, 최근 10년간 100개가 넘는 페스티벌 무대를 누빈 타오 댄스 시어터(TAO Dance Theater)의 성장세가 놀랍다.
1985년생의 젊은 안무가 타오 예(Tao Ye)는 중국에서 나고 중화권 현대무용단에서 이력을 쌓다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단체를 ‘TAO Body Theater’라 지칭할 정도로 인간의 기원이 되는 ‘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 순간 변화하는 몸이야말로 출생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인간의 생애와 그에 연결된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타오 예는 2008년 창단 이래 <重3(Weight×3)>(2008), <2>(2011), <4>(2012), <5>(2013), <6>(2014), <7>(2014), <8>(2015), <9>(2017)로 이어지는 ‘숫자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이 작품들은 주로 더블 빌 구성으로 공연되는데, 이번 내한 공연에는 2012년 작 <4>와 최근작 <9>를 엮어 무대에 올린다.
유연한 곡선이 특징인 그의 안무에는 동양적 사상이 녹아들어 있다. 특별한 세트도, 장치도 없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작품 스타일대로 무용수들의 순수한 움직임만이 무대를 채운다. 반복적인 전자음이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간결한 멜로디가 주요한 음악으로 사용되는데, 종종 이러한 음악마저 제거해 무용수의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무채색의, 넉넉하고 둥근 소매와 바짓단은 움직임을 돋보이도록 하는 유일한 장식이다.
타오 댄스 시어터의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부산국제무용제에서 <重3>과 <4>, 2016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1주년 기념 무대에서 <6>과 <8>을 공연했다. 하나씩 더해가는 숫자처럼 무섭게 진화하고 있는 중국 현대무용의 현재를 만날 수 있을 것.
글 김태희_객원 편집위원. 무용평론가
사진 제공 Kidd Pivot, TAO Dance Theater
*서울문화재단 월간 [문화+서울] 2020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