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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희 Jun 30. 2016

도시와 예술

파리·베네치아·세비야·뉴욕·베이징·서울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올여름 새로운 도시로 떠나기 전 예술가들이 작품 속에 그려낸 도시의 풍경을 미리 살펴보는 건 어떨까. 이제, 아주 예술적인 여름휴가를 떠날 시간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공원’ ⓒLaurent Philippe/Opéra National de Paris


프랑스 파리

아름다운 남녀의 만남, 앙줄랭 프렐조카주 ‘공원’

파리의 중심을 가르며 흐르는 센 강 주변에 위치한 튈르리 정원과 뤽상브르 공원은 파리의 낭만을 대표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남녀를 보며 모티프를 얻은 앙줄랭 프렐조카주는 처음 만난 남성과 여성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감정을 담은 ‘공원(Le Parc)’을 안무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담담하지만 감성적으로 흐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곡과 프렐조카주 특유의 추상적인 안무, 고전의 느낌을 주는 바로크 시대의 의상, 그리고 프랑스식 공원의 풍경이 더해져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남녀 사이의 감정 변화를 세 개의 파트로 구분한 이 작품의 절정은 남자를 찾아온 여인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는 마지막 파드되다. 입을 맞춘 채 여성을 들어 올려 몇 바퀴를 빙빙 도는 장면에는 프랑스 연인의 에로티시즘이 충만하다.


함부르크 발레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Holger Badekow


이탈리아 베네치아

영감의 도시에서 벌어진 존 노이마이어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각색한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에서 주인공 아셴바흐의 직업은 창작의 동기가 고갈되어 고뇌하는 안무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부진한 작업을 뒤로하고 어딘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찰나 두 명의 곤돌라 뱃사공이 등장하는데, 이들에 이끌려 이동한 곳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베네치아는 실제로도 바그너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고 작품 활동에 몰두했던 도시라는 점이다. 작품에 대해 “토마스 만의 소설을 자유롭게 다룬 죽음의 춤”이라고 밝힌 노이마이어는 무채색의 무대를 배치해 베네치아가 주는 암울한 분위기를 드러냈다.


롤랑 프티의 ‘카르멘’ ⓒJulien Benhamou


스페인 세비야

치명적 매력의 팜파탈, 롤랑 프티 ‘카르멘’

정열의 도시 세비야 최고의 팜파탈은 누가 뭐래도 카르멘일 것이다. 롤랑 프티의 ‘카르멘’은 원작의 부수적인 이야기를 정리하고 돈 호세와 카르멘에게 집중한다. 붉은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 위 검은색의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스페인 남부의 강렬한 분위기를 살렸다. 여기에 원색을 사용한 소품들은 화려한 집시의 모습을 장식했다. 이 작품의 특색은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데, 사랑을 잃은 카르멘이 돈 호세에게 달려가 스스로 칼에 찔려 쓰러진다. 그 어떤 ‘카르멘’보다도 강한 스페인 여인의 면모다.


라 스칼라 발레의 ‘보석’ ⓒBrescia Amisano


미국 뉴욕

반짝이는 아름다움, 조지 발란신 ‘보석’

미국에 입성한 조지 발란신에게 뉴욕의 ‘빛을 받아 번쩍이는 수많은 빌딩들’은 러시아에선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감의 요소였다. 뉴욕 한복판에서 마주친 반 클리프 앤 아펠 보석상을 보며 얻은 감흥을 ‘보석(Jewels)’에 담아냈다. 여기에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빛나는 순간과 서구의 문화는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보석’은 그가 홀린 듯 바라봤던 루비·에메랄드·다이아몬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발란신 스타일의 동작들은 거칠고 과장되며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 미국식 유머를 보여준다. 줄거리 없이 오직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완성된 ‘보석’은 자유분방한 미국 문화와 반짝이는 이미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중국국가발레단의 ‘홍등’


중국 베이징

강렬한 색채로 칠해진 중국국가발레단 ‘홍등’

영화 ‘홍등’(1991)을 바탕으로 중국국가발레단을 통해 재구성된 동명의 발레 작품은 1920년대 중국의 봉건제도로 인해 희생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맡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음악감독을 맡았던 천치강이 발레를 위한 곡을 새로 썼으며, 제롬 카플랑이 의상을 맡는 등 ‘중국의 발레’를 완성하고자 총력을 쏟아부었다. 붉은색을 비롯해 작품에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강렬한 색채는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드러내며, 고도로 훈련되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복제된 인형 같은 무용수들은 감탄을 넘어 비장미마저 느껴지게 한다. 발레에 기반을 두고 전통무용·경극·그림자극 등 전통예술을 접목해 중국적 색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러프 컷’ (사진제공=LG아트센터)


대한민국 서울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바라본 피나 바우슈 ‘러프 컷’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무용과 연극의 요소를 결합한 ‘탄츠테아터’를 통해 20세기 현대무용의 장을 새롭게 연 피나 바우슈는 1979년 첫 내한을 계기로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관찰해왔다. 2005년 6월, 그녀가 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린 ‘러프 컷(Rough Cut)’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서울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의 1차 편집본을 뜻하는 이 제목에는 무엇이든 빠르게 진행하는 한국인과 다양성·가능성을 지닌 한국 사회의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어우러진 한국음악이 외래문화와 전통이 혼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작품에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장면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등장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서슴없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사우나의 풍경, 김장철 품앗이 문화, “안녕하십니까”라며 인사를 반복하는 클럽 웨이터의 모습, 굿판에 펼쳐진 원색적인 꽃들, 사람들로 가득한 백화점 풍경 등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서울의 일상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차례로 펼쳐진다.

페터 팝스트가 디자인한 무대에는 한국의 산수가 펼쳐진다. 거대한 암벽을 배경으로 들판과 파도가 투사되며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진다. 사람들로 가득한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와 화려한 네온사인은 또 다른 우리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가 진지한 통찰보다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점에 대해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피나 바우슈라는 위대한 안무가가 서울의 모습을 그려낸 것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냈다.


*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SPECIAL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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