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 적은 것, 적당한 것의 기준
예전에 “모듈러 디자인은 3S(단순화/표준화/공용화)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말이 맞는지, 틀린 지는 상황에 따라서 다릅니다.
모듈러 디자인이 다양성 관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면, 제대로 말한 겁니다. 모듈러 디자인의 시작부터 끝은 모두 다양성 관리를 기본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다양성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보고, 단순화/표준화/공용화와 동일하다고 표현한 것이라면 좀 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 명의 슈퍼스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팀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대신 다른 팀원들은 슈퍼스타에 비해서는 실력이 떨어집니다. 또 다른 팀은 내놓으라는 슈퍼스타는 없지만, 팀원들이 자기 역할을 하는 팀입니다. 백업 선수 층도 두텁습니다. 두 팀 중에 어느 팀이 시합하기 까다로울까요?
스포츠 종류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 두 번째 팀이 더 까다롭다고 대답할 겁니다.
첫 번째 팀을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슈퍼스타만 철저히 견제하면 됩니다. 혹은 굳이 견제하지 않더라도 그의 컨디션이 안 좋거나, 부상으로 빠지면 해당 팀은 급격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의 제품도 동일합니다. 소수의 히트 상품으로 시장을 지배하기엔 경쟁자, 잠재적 경쟁사, 시장의 압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최대한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고 실험하고, 개선하고, 시장을 장악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시장 장악력을 높이는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겁니다.
모듈러 디자인의 목적 중 하나는 다양성으로 인한 복잡성을 절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상품을 늘리는 게 정상인가?
당연히 정상입니다.
우선 첫 번째, 모듈러 디자인은 다양성을 내부와 외부 다양성으로 나누고, 비용을 일으키는 내부 다양성을 줄이면서, 가치를 일으키는 외부 다양성을 높이는 것을 추구합니다.
두 번째, 외부 다양성에 해당하는 모델 또한 만약 의도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익보다는 비용만 발생한다면 빨리 절감을 합니다.
세 번째, 모듈러 디자인은 시장에 효과적인 제품 라인업이 정의된 상태에서 이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겁니다.
즉, 효과성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효율성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기존 제품 시장을 하나의 신제품이 장악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맞습니다.
이 경우에는 혁신의 종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은 제품 구조와 제품 구성요소의 변화 크기에 따라서 (1) 둘 다 바뀌는 급진적 혁신, (2) 제품 구조가 바뀌는 아키텍처 혁신, (3) 제품 구성요소가 크게 바뀌는 모듈러 혁신, 제품 구조와 제품 구성요소가 소소하게 변경되는 점진적인 혁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위의 다양성 추구에 대한 언급은 주로 세 번째 모듈러 혁신과 네 번째 점진적인 혁신에 해당합니다.
즉, 제품 구조의 큰 변화 없이 구성요소의 큰 변화 또는 소소한 변화를 일으키는 제품의 변화인 경우는 최대한 다양성을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제품, 조금 더 시장이 원하는 제품, 경쟁사보다 선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제품으로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효율적으로 빠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모듈러 디자인이 적절한 방법론이 될 수 있죠.
그런데, 제품 구조, 제품 아키텍처의 변화로 인한 혁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은 모듈러 디자인으로 대응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한 해당 제품은 제품 라이프사이클 상의 초기에 해당할 테니 성장기 후반부터 성숙기 초기 단계, “지배적인 아키텍처”가 나올 시점이 적용 효과가 큰 모듈러 디자인과는 우선 결이 안 맞습니다. 모듈러 디자인을 통한 결과물은 제품 아키텍처, 제품 구조의 표준화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즉, 표준화할 만큼 성숙도가 높지 않다면 모듈러 디자인을 적용하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됩니다.
오히려 이런 제품들은 기존 주력 제품에 대비 투자 우선순위가 밀려서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실험을 하면서 필요한 역량을 파악하는 등 학습에 집중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경우에도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주력 제품 내부의 다양성이 높으면 시장 장악력이 올라가겠지만, 제품군 기준으로 보면 다양성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오히려 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처음 언급한 슈퍼스타에 의존하는 팀처럼 하나의 제품군에 의존한 팀이 되는 거죠. 미래의 루키를 키울 생각 없이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부채가 된 채 순식간에 변화에 뒤처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듈러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적용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키텍처 혁신은 제품의 구성요소의 변화는 크지 않고, 제품 아키텍처의 변화가 큰 혁신을 의미합니다. 즉, 기존 구성요소들은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기존 개발한 모듈, 또는 그것을 활용한 산출물을 다양한 실험에 투자하는 겁니다. 많은 시도와 실패로 최적 안을 찾는 것이죠.
모듈러 디자인은 외부의 다양성을 위한 효율적인 대응을 의미합니다. 효과성을 위한 다양성이 정의되면 그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 모듈러 디자인을 활용한다는 생각해야 합니다. 무조건 줄이고, 표준화하고, 공용화하고, 재사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동시에, 혁신의 이해도 필요합니다. 기존 제품군이 영원히 주력이 될 순 없습니다. 기존에 쌓아놓은 자산이 부채가 되지 않도록 다양한 실험과 적절한 투자 안배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나쁜 혁신 툴은 없습니다. 그것을 잘못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방법론과 툴에 대한 꾸준한 학습,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강한 실행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