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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Variety) vs. 범위 (Range)

선택을 제한해야 이익을 내는 회사, 선택을 다양하게 하고 싶은 고객

by 심야서점

옷가게에서 파는 옷 중에는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만, 나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어진 사이즈 중에서 작은 것을 사자니, 너무 꽉 끼는 것 같고, 큰 것을 사자니 너무 헐렁한 것 같아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이럴 땐 좀 더 다양한 사이즈를 팔면 어떨까? 내게 딱 맞는 맞춤형 옷을 팔면 어떨까? 생각하게 됩니다.


서브웨이에서 파는 샌드위치의 크기는 15cm, 30cm입니다. 이때 위와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15cm를 먹자니 부족하고, 30cm를 먹자니 배부르고 딱 중간 사이즈를 팔면 좋겠다는 생각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처럼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갖길 원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경우 다양성으로 인한 복잡성 비용을 갖게 되므로 최대한 표준화를 하여 종류를 줄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회사 입장에서도, 고객 입장에서도 서로의 니즈를 최대한 절충한 방법이 범위 (Range)입니다.

범위 내에서는 회사의 입장에서 표준화를 하고, 고객의 선택은 범위 간의 선택으로 보장하는 방식입니다.


신발을 1mm 단위까지 맞춰서 제공하면 좋겠지만, 250mm, 260mm, 270mm, 280mm, 290mm 이런 식으로 회사는 5mm 또는 10mm 구간을 정해놓고 제품을 판매하고, 소비자는 자신의 사이즈에 최대한 근접한 구간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 발 사이즈가 275mm인 경우는 270mm 또는 280mm를 신어 보고 선택하게 되겠죠.


범위 구간의 크기는 일괄적으로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많이 팔리는 구간에서는 좀 더 세분화하고, 많이 안 팔리는 구간은 좀 더 크기를 키우는 식으로 적용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250mm에서 260mm 사이의 신발이 많이 팔린다고 하면, 이 부분은 255mm 구간을 하나 더 두어서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기도 하고, 많이 안 팔리는 300mm 이상은 구간은 10mm 이상으로 넓혀서 대응하거나 아예 구간은 없애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거죠.


구간과 구간의 간격 등은 이처럼 차별화할 수 있지만, 항상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발 크기가 점차 커진다고 하면 작은 사이즈를 줄이고, 큰 사이즈 쪽으로 구간을 세분화하는 식으로 변경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범위는 다양성을 관리하는 테크닉 중 하나로 실제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기법 중 하나입니다.


또한 범위는 모듈의 과잉 스펙, 과잉 사이즈, 과잉 무게 문제를 대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모듈을 표준화하고, 공용화하다보면 불가피하게 과잉 스펙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품의 스펙 별로 요구하는 모듈의 종류를 달리 했는데, 모듈의 종류를 줄이려다 보니 제품의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는 모듈의 과잉 스펙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렇다고 낮은 스펙의 모듈로 공용화하는 것은 제품의 경쟁력 약화와 직결되므로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서 활용되는 기법도 범위입니다. 과잉 스펙 문제를 아예 없앨 순 없지만, 최대한 줄이는 거죠. 하나의 모듈로 공용화를 하는 게 아니고, 스펙에 범위를 두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모듈 성능을 1부터 10 순으로 저사양에서 고사양으로 전개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과거에는 1부터 10까지 모듈을 모두 만들어야 했다면, 1가지 모듈로 표준화를 하려면 성능이 10인 모듈로 표준화를 해야만 최소한 제품들의 성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표준화 이전에는 모듈 성능이 1로 충분했던 제품에 성능 10인 모듈을 쓰면 비용이 올라가겠죠. 원래 성능 10을 쓰던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과잉 스펙이고, 단일 제품 당 비용이 올라가게 될 겁니다.


이럴 땐 1~3, 4~6, 7~9, 10과 같은 방식으로 범위를 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모듈은 4개로 운영하지만, 처음 경우보다 과잉 스펙 정도를 한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각각 모듈의 재료비는 오르더라도, 범위별 모듈의 물량이 증가하므로 단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전체 원가를 따져보고 유리한 쪽으로 정의하면 됩니다.


여기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죠. 그러면 성능이 10인 모듈로 공용화하면 물량 증가 효과를 더 얻을 수 있는 거 아니냐? 물량 증가 효과가 크더라도, 재료비가 더 높게 책정되면 전체 제품군의 재료비가 상승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은 경우별로 계산해봐야 합니다.


만약 하나의 모듈로 공용화하고도 전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면, 굳이 범위를 따질 필요는 없겠죠.

성능만 언급했는데, 무게나 크기도 동일합니다. 여기에 범위를 적용하면 과잉이 되는 부분을 한정할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건 없습니다. 원칙을 가지고, 개별 상황을 판단하여 적절한 다양성, 적절한 범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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