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가 게으르면 벌어지는 일

컨설턴트의 게으름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by 심야서점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다른 컨설팅 펌이 과거에 수행했던 산출물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고객이 의도적으로 공유합니다.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거나, “여기까지는 이미 진행됐다”는 일종의 압박을 주기 위한 목적입니다.

또는 동일한 조직 내에서 여러 컨설팅이 동시에 진행되기도 합니다.

각기 다른 영역,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결과 역시 각자의 논리에 따라 도출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한쪽의 결과가

다른 쪽의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동업자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서로의 결과를 존중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프로젝트처럼 상대방의 결과물이 충분한 고민 없이 ‘내리고 싶은 결론’으로 마무리된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때는 부득이하게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결론”


예를 들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제품의 품질 수준이 떨어진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컨설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결론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품질 점검 활동이 철저하지 않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


겉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연구소의 품질 점검 활동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굳이 큰 비용을 들여 컨설턴트를 부를 필요가 있을까요?


이 정도의 결론이라면 내부에서도 충분히 도출할 수 있습니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왜 품질 점검 활동이 부족할까?

연구소 인원들은 왜 그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을까?

어떤 구조적, 제도적, 업무적 제약이 존재하기에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걸까?


제품의 품질을 일부러 낮추고 싶은 조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질이 떨어진다면, 그 이면에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합니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바로 그 이유를 파고드는 것입니다.

현상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것입니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다루는 것입니다.


문제를 ‘본 것’과 ‘이해한 것’은 다르다


하지만 일부 컨설팅은 그 과정을 건너뜁니다.


몇 차례의 인터뷰,

겉으로 훑어본 몇 개의 자료,

그리고 과거 프로젝트 경험에서 비롯된 선입견.

이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그럴듯한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그 결론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쉽게 도출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결국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문제로 정의하게 만들고, 이미 정해진 답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경우를 보면,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게으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고객이 가지고 있다”의 진짜 의미


컨설팅에는 자주 인용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고객이 가지고 있다.”


이 문장은 자주 오해됩니다.

고객이 말하는 문제가 곧 본질적인 문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고객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정답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이 문장의 진짜 의미는 이렇습니다.

고객이 가진 맥락, 경험, 데이터, 조직의 현실 속에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가 이미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그 단서를 수집하고, 재구성하고,

문제를 다시 정의한 뒤,

그에 맞는 최적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문제 정의를 건너뛰는 순간, 컨설팅은 의미를 잃는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고객이 처음 제시한 문제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가장 손쉬운 답을 내놓는다면,

그건 컨설팅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그저 ‘정리된 의견’일 뿐입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노력


제가 경험한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당 영역에 대한 깊은 전문 지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터뷰에서 충분한 힌트를 얻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업무 절차만 들여다봤다면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어쩌면 한쪽의 이야기만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봤을 수도 있습니다.


컨설턴트가 항상 올바른 문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정답만을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가 실패로 평가받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은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는 것,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을 확인하지 않는 것,

노력 부족으로 중요한 단서를 놓치는 것.

이런 상황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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