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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이직

어차피 이직을 해야만 한다면, 후회를 줄이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

by 심야서점

이전 글에 이어서 쓴다면 “성공하는 이직”의 글이 맞겠지만, 성공이라는 의미는 개인별로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 이직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성공적인 이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이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에 따라서 많다고도 적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인 4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그 외에 대학 시절에 1~2개월씩 프리랜서로 개발 업무를 했죠. 그 정도 되면 회사 보는 눈이 생기고 후회도 안 할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준에서 제가 겪어본 회사를 기준으로 어떻게 하면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조건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내가 목표로 하는 커리어 방향과 맞는가?


직장 생활은 결국은 나의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직이라는 결정을 한다는 건 커리어를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중요 마일스톤이 됩니다. 당연히 앞으로 나가는 방향인 것이 이상적이겠죠.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조건이 좋으니까 눈에 뻔히 보이는 커리어 방향과 맞지 않은 이직을 하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손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안 좋은 이직 형태 중 하나가 이것저것 다 건드려보는 이직입니다.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것이 관심사와 커리어입니다. 관심사와 커리어는 별개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모두 커리어와 연결될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재무 쪽 업무를 하고 있는데,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그쪽 영역으로 이직하는 건 커리어 방향과 맞지 않은 상황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과 내가 추구하는 커리어는 철저히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두 가지가 일치하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고 보통 전자가 후자를 포함하는 형태가 됩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행복하다고, 그런데 그런 일을 하는데 수입이 불규칙하다면 어떨까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내가 역량이 부족하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은 일치하진 않습니다. 또는 한번 좋아하던 일이 해야만 하는 일이 되면서 관심을 잃을 수도 있고, 좋아하지만 잘하는 일이 아니어서 업이 되길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꿈을 꾸게 하는 직장인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라면 그만큼 힘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당장은 힘들더라고 향후에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꿈꾸며 버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회사의 비전, 회사의 성장 속도, 회사의 미래 등이 나를 꿈꾸게 할 수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회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나의 꿈을 이루게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아니라면, 회사는 단지 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 회사나 내게 그만한 비극은 없습니다. 서로 이용만 하는 것으로, 한쪽은 호구의 수단으로 또 한쪽은 착취의 수단으로 서로를 바라보는데 그것이 아름답게 결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회사는 같은 방향을, 적어도 비슷한 방향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을 태우는 버스와 같습니다. 역방향으로 가길 원하거나, 그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은 당장 내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반대로, 버스 안의 승객들은 고려하지 않고 난폭 운전하거나 이리저리 방향성을 잃은 채 지멋대로인 버스는 승객들 스스로가 빨리 내려야 합니다.


예전에 매출과 이익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매출은 회사의 성장을 결정하죠. 이익은 회사의 영속성을 결정합니다. 아무리 매출이 높더라도 이익을 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아무리 이익이 높더라도 매출이 높지 않으면 회사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매출은 성장과 직결되고, 성장은 기업의 매력과 연결됩니다. 누구나 성장하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성장을 해야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성과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정체하는 조직은 보상도 정체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은 개인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성장을 함으로써 자신도 성장을 할 수 있고, 더욱더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 옮기려는 조직이 나의 꿈을 만족시켜줄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성장 지향적인 사람인데, 옮기려는 조직은 정체된 조직이라면 만족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안정 지향적인 사람인데, 옮기려는 조직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여 성장하는 조직이라면 그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을 겁니다.


세 번째,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 배울 만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가?


하루 삼분의 일 이상을 같이 보내는 사람들이 바로 회사 동료들일 겁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때로는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방향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지 않고, 배울 게 하나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습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봐야 하는데,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마도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런 점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인성이 좋은 사람인 것은 상당히 복 받은 겁니다. 생각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좋은 동료, 상사, 후배가 있다는 건 정말 큰 복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은 오히려 특수한 상황이라는 전제로 접근하는 데 편합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일 수 없으며, 그중에는 인격 파탄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피할 수 있을 텐데, 회사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 편이 낫습니다. 인격은 전제라면, 조직원의 역량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즉, 과연 내가 배울만 한 사람들과 일하는 건 내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수준이 나의 수준이 됩니다. 내가 속할 조직의 수준을 선택함에 있어서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과연 배울만 한 요소들이 있는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수준이 낮은데, 나의 수준이 높으니까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조직이 작고 내가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관성이 존재합니다. 관성은 조직의 규모에 비례하죠. 조직이 가진 관성은 조직의 안정성에 부여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변화에 저항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조직을 바꾸는 것보다 내가 조직에 동화되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게다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결국 동료와 같이 일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겁니다. 그들의 수준, 조직의 수준을 파악하는 건 필수입니다. 나의 성과와도 연결이 되니까요. 배울 것이 없는 조직이라면 나의 발전도 방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네 번째, 지금보다 높거나 비슷한 보상, 아니면 더 높은 기회가 있다고 판단되는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 보상이 네 번째지? 비전이 명확하고, 꿈을 꾸게 만들고, 사람들이 좋다면 어느 정도의 보상의 손해는 감내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보상을 기대하면서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니면, 공동체 속에서 같이 이겨낼 수 있는 거겠죠.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당장은 이직 시에 보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비교 대상이 존재하면 당장의 낮은 보상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보다 보상이 높거나 비슷해야 이직을 해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로 이직을 했다면 그때는 보상이 아닌 다른 것이 결핍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결핍에 채워졌을 때 다시 보상이 결핍이 될 경우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계속 신경이 쓰일 겁니다. 남들과 비교하고, 과거와 비교하고, 지금 당장 차이 나는 보상에 후회를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높여서 이직을 해야 하고, 최소한 비슷한 수준에서 보상을 결정해야 합니다.


월 200만 원을 벌던 사람이 좀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알아보니 지금보다 조금 바쁘지만 월 300만 원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찾았습니다. 현 상태에서 급여가 결핍이었던 그 사람은 과감하게 이직을 했죠. 그런데, 그곳은 일도 힘들고 야근과 특근, 주말 근무가 일상화된 곳이었습니다. 예전보다 벌이는 좋아졌지만 예전 생활이 그리워졌습니다. 결국 다시 월 200만 원인 직장, 워라벨이 좋은 곳으로 이직을 했습니다.


처음엔 마음도 여유롭고 좋았죠. 그런데, 한번 풀어진 벨트를 다시 조이기가 어려운 겁니다. 게다가 친구들과 비교도 되고, 예전 월급보다 얇아진 봉투는 왠지 스스로를 작아 보이게 만듭니다.


그런데, 커리어 전환인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커리어 전환을 하면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엔 과거의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지금 당장은 투자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이후에는 더 높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면 당장의 손해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대신 상승 속도가 이전보다 빨라야겠죠. 그런 경우는 참을 수 있을 겁니다. 당장은 보상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이후에는 보충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대학원이나 MBA 진학하는 경우가 그런 것 아닐까요? 당장 보상은 0이 됩니다. 그런데, 향후 얻을 수 있는 보상 수준이 현재보다 높기 때문에 진학을 결정하는 겁니다.


다섯 번째, 나의 라이프 사이클과 맞는가?


사람들이 많이 무시하곤 하는데, 자신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건 나와 회사 생활의 밸런스입니다. 나는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는데, 회사는 종종 주말 출근을 해야만 하는 일이거나, 야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데, 피할 수 없거나, 지방 근무는 싫은 데 지방에서 근무를 해야 하거나, 출장을 자주 가는 건 싫은 데 업 자체가 출장이 주된 업무이거나, 출퇴근 시간이 왕복 2시간 이상 걸린다거나 등등…


지금은 들어가고 싶은 회사이기에, 또는 의욕이 넘치기에 이런 것들이 눈에 안 들어오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건 회사 생활과 나의 생활 간의 괴리감입니다. 어느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삶의 만족도와 연결된다고, 회사도 결국 나의 삶입니다. 그 삶이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규모가 크냐, 작냐는 위 기준에 없죠?

위 조건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규모가 큰 기업이 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겠죠. 규모가 크니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볼 수 있고, 좀 더 큰 규모의 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더욱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안정적으로 좀 더 높은 보상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리고,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직장 생활도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겁니다. 모두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규모가 크다 보니 하기로 한 정해진 업무만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큰 것은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임을 뜻합니다. 시스템은 여러 계층, 여러 컴포넌트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 틀은 누구도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자신도 하나의 계층 내의 하나의 컴포넌트가 되는 겁니다. 그것은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재미없다고 의미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건 시스템 상에서는 무의미한 지적입니다. 그 안에서 컴포넌트로 머물 것에 그치고 안주한다면 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안에서 성장 지향적인 사람만이 살아남습니다.


규모가 크고 성장의 결실을 나누는 보상은 클 수 있죠. 시스템에 순응하는 보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스템에서 벗어났을 땐 개인이 따로 노력하지 않았다면 조직에 순응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지금,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이직을 하게 됩니다. 이직을 해야만 한다면, 후회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남들에게 좋은 직업, 좋은 직장을 선택하지 말고,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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