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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는 이직

옮기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겁니다

by 심야서점

저는 커리어 관리를 잘해왔다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관련하여 글을 쓰겠지만, 오히려 커리어의 방향성이 없어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직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제 경험과 고민을 후배를 포함한 다른 분들께 전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학생일 때 이런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기본적으로 이직은 직장을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칙적으로 이직은 자신의 커리어의 연장선 상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직을 해야 하는지는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겁니다. 그렇지만 피해야 할 이직의 종류는 일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피해야 하는 이직의 종류를 정리해봤습니다.


1. 사람을 피하기 위한 이직


이직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사람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중이 상사나 선배가 싫어서 이직하는 경우일 겁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이런 이직은 도피성 이직으로 굉장히 위험합니다.


당장 내 뜰에 사는 오소리 피하려고 이사를 했는데, 그곳에는 악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흔히 들리는 말로 미친놈 불변의 법칙으로 어느 조직이나 미친놈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만약 선, 후배, 동료 중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자기 자신이 미친놈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말이죠. 회사는 사람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 단지 사람이 싫다고 이직을 하면, 그곳에는 또 다른 사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절대로 피해야 할 블랙 기업이 있습니다. 그런 곳은 입사를 아예 안 해야 하고, 입사를 해도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또한, 사람 문제는 대체로 쌍방의 문제입니다. 한 사람만의 문제인 일방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는 내가 바뀌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도 있습니다. 불합리한 상황을 겪으면 그것을 당차게 말해야 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사람으로 인한 이직은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게 합니다. 감정적으로 불합리한 이직을 할 수도 있단 뜻입니다.


결국 사람으로 인한 이직은 또 다른 사람으로 인한 이직을 만들고, 프로 이직러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상사나 선배의 지적, 훈계가 과연 나를 향한 것인지, 나의 업무를 향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업무적으로 공격을 한다고 그것을 나를 향한 화살로 생각하고 피하는 프로페셔널 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정작 앞에서는 좋은 말로 구슬리다가 뒤에서 악담을 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상사가 더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2. 보상만 바라본 이직


보상은 말 그대로 무엇에 대한 반대급부입니다. 내가 제공하는 무엇에 대한 대가입니다. 만약 현재 내가 받는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곳에서 먼저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즉, 요구를 해야 한다는 거죠. 내가 한 업무 결과와 성과를 가지고 요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낮은 보상에 불평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안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이 없어도 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향적인 것이죠. 알아서 챙겨주길 바라면서 그런데 그렇게 해주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요구하고 불평해야 하나라도 더 챙겨주는 것이 회사입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이직을 결정해야 합니다. 근속기간, 연봉, 복리후생, 워라벨 등등… 단지 보상만 높은 건지 워라벨은 나쁘지 않은지, 다른 복리 부생은 부족한 게 없는지, 보상은 높은 내가 원하는 커리어에는 독이 되지는 않는지 등…


이전에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국내 기술 인력의 일부 중국 업체로의 이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경험을 탐내서 당장 보상이 크다고 이직을 했는데 몇 년 안에 쓰임을 다해서 버림받고 돌아와서는 배신자 프레임이 씌워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좁은 시각으로 이직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체 보상에 대해서 나의 역량과 비교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보상이 높은 데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면 높은 보상이 지속되기 어렵고 심지어 채용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단지 보상만 보고 이직할 경우는 그것이 유지되기 어려운 순간에 또다시 이직을 해야 합니다.


3. 재미없다고 이직, 나랑 안 맞는다고 이직


이런 이유로 이직을 한다면, 먼저 업이 안 맞는 건지, 업무가 안 맞는 건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먼저 살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신입 사원에게 이런 이직이 많이 발생하는데 당장 업무가 지루하다고 이직하는 건 쿵후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기초 체력단련이 싫다고 쿵후를 포기하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회의록이나 쓰자고 학교 다니고 어학연수 다녀온 게 아닙니다. 멋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시켜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당장 책임 있는 일을 시킬 수 있을까요? 회사는 가능하다면 신입사원을 최대한 빨리 전력으로 쓰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건, 신입사원은 어떻게 보면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자기 역할을 할 때까지 준비를 하고 학습하는 시간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 업무는 재미없다, 의미 없다고 말하며 이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일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어떤 업이든 자기 몫을 하고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생각보다 지루하고 귀찮고 무료하다 싶을 정도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오히려 기본기가 없어서 나중에 업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장 미적분을 하고 싶다고 사칙연산도 못 익힌 다면 제대로 미적분을 할 수 있을까요?


많은 경력직이 이직 후에 이런 과정을 부족하거나 그 과정을 거칠 시간이나 여유를 주지 않기에 적응을 못하고 낙오합니다. 예를 들어서 총을 쏘고 전투를 하고 싶다면 자세를 배우고 총기를 다루는 기본을 익히고 총기를 손질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지루하다고 그걸 무시하면 제대로 전투를 하기 전에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당장 책임을 지고 멋나는 일을 하고 싶겠지만, 그건 회사나 개인 입장에서 모두 손해입니다. 회사에서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 써먹을 용도로 사람을 다루는 격입니다. 교육하지 않고, 기본기를 무시하고 사람을 써먹는 회사는 어차피 한번 쓰고 쓸게 없으면 버리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즉 소모재처럼… 아니면, 사람을 키울 정도로 여유가 없거나…


개인 입장에서는 자기가 노력해서 기본기를 갖추지 않으면 기초 다져지지 않은 사상누각이 됩니다. 그리고 기초는 자신이 신입인 시절에만 다질 수 있습니다. 연차가 쌓이고 경력직이 되면 기본기를 쌓을 여유도 그것을 기다려줄 회사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가는 곳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직업이 아니라 직장을 위한 이직


규모가 큰 회사에서 편하고 안정적이고 높은 보상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모두 그렇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나 매력적인 직장은 나에 대한 필요성이 그곳에서의 그만큼 낮아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회사 규모에 반비례하는 확률을 갖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회사는 그렇게 규모를 키울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 회사는 특정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봐야 합니다.


“난 오랫동안 큰 조직에서 안정적으로 살아남겠다. 아니면 정상까지 오르겠다. “,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배우겠다”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좋은 직장이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좋은 직업이 없듯이 영원히 좋은 직장은 없습니다.


좋은 직장이 더 이상 좋은 직장이 아닐 때 가장 위험한 건 경쟁력 없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당신입니다.


내 직장은 커리어의 완성이 아니라 한 단계 입니다. 그곳을 영원한 직장으로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 기대는 어긋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을 피하라는 말이냐, 아닙니다. 대기업은 시스템 자체를, 업무 프로세스를,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겪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안정적이니까 복리후생이 좋으니까, 브랜드가 좋으니까 규모가 큰 기업을 들어가는 건 스스로 잉여가 될 것을 약속을 하는 겁니다.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이 필요 없습니다.


5. 지금까지 쌓아놓은 자산을 리셋하는 이직


커리어는 모래성을 쌓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쌓어둔 자산을 활용해서 또 성을 쌓고 또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산을 다 무시하고 커리어와 무관한 이직은 옆에 모래성을 다시 쌓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내가 젊고 사회 초년생이라면 그런 이직도 가능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죠. 젊음이 또 다른 시작을 가능케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넓고 낮게 쌓은 모래성은 절대로 튼튼하고 높게 쌓을 수 없습니다.


전진이 아니라 횡보, 퇴보하는 이직입니다.


실제로 가장 좋은 것은 내가 공부하고, 배우고 일한 경험이 연결되고 자산화될 수 있는 이직이 좋습니다. 그 자산들이 자신을 경쟁력 있는 인재로 만들어줄 겁니다.


6. 현 상황을 모면하려는 이직


어떻게 보면 1번과 연결되는 이직입니다. 회사 생활은 항상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이 있는 건 당연하고,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도 겪을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이겨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발전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당장의 어려움은 언젠가는 끝납니다. 당장의 어려움이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 회피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 정답지가 항상 이직은 아닙니다.


이직은 꽤 고심해서 결정해야 하는 답안입니다. 그것을 현 상황을 모면하는 정도로 꺼내는 것은 과하지 않을까요?

회피는 습관이 됩니다. 태도는 고착화됩니다.


현재가 괴로워서 피하고자 한 선택이 정답 일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직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7. 마무리가 좋지 않은 이직


지금과 같이 정보를 얻기 쉬워진 시기에 인사 부서의 레퍼런스 체크는 기본입니다. 내가 뽑으려는 사람이 제대로 회사에 융화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이전 직장에서 체크하는 건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아무리 역량이 좋더라도 조직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버스에 안태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최근에는 과거만큼 해외 학위에 대한 우대를 해주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학력이 좋아도 조직에 위해를 가할 정도로 팀 스피릿이 없다면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팀워크가 엉망인 초 일류 학력을 가진 인재보다 팀워크가 좋은 보통 학력의 인재 다수가 더욱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끝맺음이 좋지 않은 이직, 이용할 것만 이용하는 등의 체리피킹 같은 행동, 무책임한 행동은 커리어 내내 남아있습니다. 만약에 운이 좋아서 체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자세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 한 반복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 직장에 대한 예의 없는 행동을 하고 끝맺음이 좋지 않은 이직, 이용할 것만 이용하는 체리피킹 같은 행동, 어차피 떠날 거니까 너희 마음대로 해라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은 커리어 내내 남아있습니다. 레퍼런스 체크에서 거르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은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어느 조직에서든 철퇴를 맞게 됩니다.




취업을 할 때는 이것저것 조사하고 노력하는데, 정작 회사를 그만둘 때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취업을 잘하는 만큼이나 회사를 잘 그만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취업한다는 건 어딘가를 떠나서 어딘가로 합류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떠나온 조직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이직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맨 앞에 언급했듯이 저는 이직을 잘해온 편이 아닙니다. 초기에는 감정적으로 이직을 결정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쌓아온 후회와 생각을 이 글에 담았습니다. 읽으신 분은 커리어 관리에 성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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