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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Aug 18. 2023

주름의 나이테

아름다운 주름생각


느림보. 거북이. 더딘 사람.

어쩌면 나는 느리다는 것을 동경했지만, 느린 것은 뒤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를 배우다 라는 인스타툰을 보다가 느림보마음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정희정 작가의 글쓰기 선생님이 필사를 추천한 책이다. 나도 모르게 바로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검색해 서장을 읽어 내려갔다. 서장에 적힌 문태준 시인의 글을 읽자마자 같은 한국어인데도 내가 쓰는 언어와 문태준 시인이 쓰는 언어는 아예 궤가 달랐다. 모든 문장이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마음에 닿았다.


매번 나의 마음은 바뀌어 가며 시간을 살았다. 마치 폭염의 여름이 눈보라의 겨울로 천천히 변해가듯이. 마치 푸른 포도알이 검게 무르익듯이. 눈물이 웃음을 젓게 하듯이. 웃음이 눈물을 말리듯이. 마음이 하는 이 일들을 다 받아안고 살았다. 모나면 모난 대로. 둥글면 둥근 대로. p.6

 

언어에는 상실이 일어난다. 내가 생각한 모든 느낌과 감정을 글과 말로 그린 듯이 전달하기에는 언제나 부족하다. 특히 나는 항상 내 언어에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문태준 시인의 느림보 마음에는 시인이 그려낸 마음의 모양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담겨 있었다.


될 수 있다면 하루에 한 장씩. 문태준 시인이 그려가는 마음의 수채화를 내 펜촉에 담길 원했다.

나는 세상을 수채화처럼 몽글몽글하고 따뜻하게 바라보기보단 나의 붓질은 거칠고 상처 입거나 탁한 잿빛이었다. 내가 소설로 쓰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등장인물이 상처를 입다 못해 반창고도 못 붙인 상태에서 소금을 탁탁 쳐 괴롭게 만드는 일들이 많았다. 내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잿빛이어서 파스텔톤의 이야기를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필사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한 장씩 적혀있는 모든 문장을 음미하면서 꼭꼭 씹어 삼키고, 문태준 시인이 바라본 세상에 대해 내가 느낀 것들을 하나씩 적다 보면 잿빛이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이 글들은 느림보 마음을 읽으며 친 기디 긴 밑줄 자국이다.




아름다운 주름생각을 필사하며 


내 주변엔 젊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 나이보다 어린 나이처럼 보이면 기분이 좋다. 나도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살 때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난감한 척 주머니를 더듬지만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사람들이 말했던 젊음의 상징은 두 가지. 몸매와 피부였다.


나이가 한 살씩 들어가면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족쇄처럼 딸려왔다. 내가 살이 찌면 젊은 나이에 살이 찌면 어떡하냐면서 그 나이가 가장 아름다울 때니 살을 빼라며 충고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매에 대한 자연스러운 품평은 덤이었다. 저 사람은 관리를 안 하나 봐. 왜 이렇게 살이 쪘대.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말랐어.


마치 들리지 않으면 어떤 말도 해도 된다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걸 보고 있으면 진저리가 났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익숙해졌다. 내가 저런 평가를 당하지 않으려면 살을 빼야 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구나. 머리는 여성스럽게 기르고, 피부는 깨끗해야 하는구나.


최근에 눈썹문신을 받았다. 회사에 처음 취직했을 때쯤 받았다가 살짝 연해진 것 같아 눈썹모양을 바꾸고 리터치를 받았다. 눈썹문신을 해주는 원장님은 내 얼굴 표정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눈썹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움직이시네요. 나중에 나이 들면 눈썹 위가 패일 거예요. 지금이라도 보톡스를 맞아보는 건 어때요? 눈썹 위에 근육 운동량을 잡아줘서 주름이 안 생길 거예요."


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집에 와서 고민했다. 눈썹 위에 보톡스를 맞아야 하는 건가. 보톡스 가격은 얼마지. 엄마한테 보톡스를 맞아야 하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엄마는 아직 젊으니 괜찮다면서 그건 나이 들어서 생각하라고 답했다.


주름이 많은 얼굴은 험상궂은 인상이 아니다. … 눈주름이 세필로 그린 듯 아름다운 얼굴은 더 많이 웃고 산 사람의 몫이다. 금 간 그릇에서 물이 조금조금씩 새어 나오듯, 눈에서 웃음이 살짝살짝 번지고 흘러나와 완성된 눈주름은 고혹적이다. 그렇게 나르고, 나무뿌리처럼 뻗어나간 눈주름을 보면 '아, 저이는 마음도 세월도 잘 만지셨구나' 저절로 부럽기도 하다. p.15


한 문장이 아니라 한 문단이 보톡스는 맞을 필요 없다고 말해줬다. 길고도 길게.

이걸 보고 내심 마음 한편에 고민하고 있던 보톡스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주변에 보톡스를 맞는 사람들이 있어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관리를 위해 아름다움을 위해 세월의 주름을 펼치고자 하는 욕구는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흥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내심 나도 모르게 수용하고 있던 외적 기준을 돌아보았다.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와 주름을 모두 핀 채로 세월을 비껴나간 얼굴, 닭가슴살을 입에서 비린내가 날 때까지 먹어서 날씬하게 만든 체형. 세상이 인정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지금 TV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과 우리네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미의 기준.


주름이 아름답다는 말은 단순한 두 단어의 조합이지만 이 기준을 모두 파괴시켰다.


바람이 적어 파고가 높지 않은 날 바닷가에 나가 보았는가. 한 겹 한 겹 접히며 들어오는 바닷물을 보았는가. 잘 웃고 살아서 만든 입가의 주름은 꼭 그런 고요한 바닷가로 밀려오는 낮고 순차적인 파도를 보는 듯하다.


나는 가끔 지나가면서 나무의 겉껍질을 쓰다듬는 걸 좋아한다. 속을 볼 수는 없지만, 겉 표면의 거칠거칠하고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을 만지고 있으면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을 쓰다듬는 것만 같아서 든든하다.


오히려 나무가 아프면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겉껍질이 떨어져 나가 반들반들한 속이 만져진다. 고사목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껍질이 탈피돼듯 한 겨울에 덜덜 떨며 서있는 아이처럼 변해간다.


나무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껍질에 수많은 주름이 아로새겨지고, 나이테가 늘어나는 것처럼 내 피부에도 내가 지은 표정들과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나는 보톡스를 맞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더 좋은 표정을 지을지를 고민했어야 한다.

감정이 모두 표정으로 드러나는 성격인 나는 어떻게 조금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볼지를 고민했어야 한다.


작가는 무릎주름도, 목주름도 모두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목은 주로 삼킨다. 밥도 울분도 삼킨다. 그러면서 목주름은 생겨난다. 곁을 보거나, 아래를 살펴 주거나, 위를 부러워하거나, 뒤를 조심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얼마나 솔직한 것인가.
주름을 펴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주름은 막을 수 없다. 우리가 해변에 서서 밀려오는 잔파도를 두 손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꾸 웃는 쪽으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그렇게 이동하면 주름도 우리를 따라올 것이다. 세월의 손 떼를 입은 주름은 항상 아름답게 반짝인다.


나는 여기에 튼살까지 덧붙여 보려 한다.


주름뿐만 아니라 내 몸에 하얗게 새겨진 튼살도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성장통들이 번개처럼 남은 것이다. 배 밑에 남겨진 튼살들은 사랑하는 아이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남긴 삶의 조각이다. 발 밑에 우리 몸을 견뎌야 했던 굳은살들이 남은 것처럼 튼살은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견뎌내면서 생겨난다. 변화는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 새하얗게 파여버린 변화의 자국은 마치 벼락 맞은 것처럼 인생을 달라지게 만든 흔적이다.


한 번 비슷하게 적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잘 적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 튼살을 보면서 인생에 벼락 맞을 기회가 로또 맞을 기회처럼 희박한데 벼락 한 번 맞았다고 생각해야겠다. 하얗게 패인 자국 자국들이 한 겹 한 겹 접히며 들어오는 바닷물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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