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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임 Aug 21. 2023

마음에도 급체가 있다

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

나는 집에 들어오면 항상 음악을 틀어놓는다. 내가 듣는 노래는 주로 가사가 없는 노래들. 뉴에이지, 클래식과 같은 노래들이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는 히데유키 하시모토의 노래 모음이다. 

이 피아니스트는 항상 건반을 꾹꾹 눌러 건반소리가 피아노 사이에 군데군데 맴돈다. 가사가 없음에도 건반을 누르는 소리로 연주에 눌러담은 마음이 느껴져온다. 다른 노래를 듣다가도 심연으로 침잠하듯 눌러오는 건반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 3개월만에 회사를 출근했다.

오늘이 출근 날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일부터였다. 

어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상하게 걱정되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새벽 2시에나 잠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묘하게 허무한 마음과 민망한 마음들이 뒤섞여 죄송하다고 말하며 내일 뵙자고 회사를 나왔다. 


아침 8시 출근, 퇴근을 하니 아침 9시다. 오펜하이머를 봐야겠다 벼르고만 있었는데, 롯데시네마가 근처에 있어 바로 보러 갔다.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총 5명. 거대한 영화관에 중앙에 홀로 앉아 프로메테우스가 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보았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이렇게 순식간에 끝날 줄이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어떻게 한 사람의 전기마저 지루할틈없이 몰아치게 만들까. 인생이 자신이 만든 핵폭탄 같았던 사람. 핵폭탄을 만듦으로써 성공한 학자의 삶을 살았지만, 마지막엔 폭탄이 지나간 자리처럼 황폐해져버린 그의 삶 속 비극.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고,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실화. 

영화를 보고 나와 잔상처럼 오펜하이머가 스쳐지나갔다. 우주와 별, 블랙홀과 폭탄. 침묵과 함성, 사막과 사랑, 취조와 인내, 카메라의 셔터소리와 억지 웃음 같은 것들이 먼지처럼 부유했다. 나도 모르게 거리를 헤매다 정신을 차리고 버스를 탄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인생이 꾹꾹 눌러담긴 한 편의 사람과 손가락에 눌러담긴 건반소리가 뒤섞여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오늘의 필사는 시원하고 푸른 한 바가지 우물물 같은 휴식이다.




마음에도 급체가 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잠을 자려고 모든 불을 끄고 누우면 머릿속에 맴맴 글자가 날아다니며 상념이 떠돈다. 단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눈꺼풀 안의 동공이 확장되고, 전두엽으로 신경이 쏠린다. 몸에 긴장을 풀고 싶지만, 거대한 단어들을 짓눌린 몸이 저항을 하듯 더 뻣뻣하게 굳어만 간다.


그런 날이 급체인걸까. 생각보다 그럼 급체를 하는 날이 많은 편인가보다.

필사를 하면서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 무엇을 먹었지, 무슨 일이 인상깊었지,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오늘 내가 글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무얼까. 필사를 빙자한 일기를 써내려간다. 그러다보면 체기가 조금 가신다. 머릿속으로 떠다니던 단어들이 손가락 끄트머리로 실체화되서 서서히 사라져 간다. 


노트북을 끄고도 상념이 가득 차있으면 머릿속 가나다라마바사를 이기지 못해 결국 불을 키고 일어나 볼펜을 잡고 마구잡이로 글자를 써내려간다. 가끔은 그게 나에 대한 실망일 때도 있고, 타인에 대한 죄책감일 때도 있다. 아니면 애증하는 마음이 뒤섞이거나 우울의 끝을 달리며 사는 것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탐색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써내려간 글들을 버릴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욕을 적는 나도, 우울해 하는 나도, 내가 못마땅한 나도, 이기적인 나도, 글 사이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글들을 버리는 것으로 마치 그런 내 모습을 버리는 것마냥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있다.


체를 하는 날이면 먹은 것을 토해내야 한다.

마음이 급체를 하는 날이면 내 마음을 토해내야 한다.

어디에다가도 토해낼 곳이 없을 때 빈 종이를 잡고 아무렇게나 써재껴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체기가 내려가 살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그곳이 어디든 내가 원한다면 돌아오지 않고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이것이 마음의 놀라운 능력이다.


마음은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나는 그걸 모른다.

마치 어렸을 때부터 말뚝박힌 사슬에 길러진 코끼리가 커서 사슬이 없어졌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미 나는 내 마음의 불안에 익숙해졌다. 

몸에는 항상성이 있어서 2개월이나 3개월동안 같은 행동을 하면 그 행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내 마음도 항상성이 있어서 즐거웠다가도 이내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돌아가기 일수였다. 사람들은 나보고 어딘가 그림자를 가지고 사는 사람같다고 했다. 가끔 그림자가 나를 지배할 때면 낮의 나와 밤의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는 어디든지 떠날 수 있지만 마음에 박힌 말뚝이 날 떠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내가 고작 하는 거라곤 불안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빈종이에 불안을 토해내는 것뿐이었다. 


마음을 지니되 네모진 돌과 같이 하세요. 돌이 뜰 가운데 놓여 있으니 비가 떨어져도 깨지 못하며, 해가 뜨겁게 비춰도 녹이지 못하며,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못하나니, 마음을 지니되 마땅히 돌과 같이 하세요.


글을 필사하면서 마음 한 켠이 위로받았다. 

너무 오랫동안 천천히 좀먹어간 우울의 틈새 사이로 산문은 자유로운 여행과 해방감을 선사시켜 주었다.

불안도 우울도 당신의 선택이라고,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한다면 돌아오지 않고 오래 머무룰 수 있다고. 오늘 밤 내가 여행할 곳은 어디일까. 모든 걸 다 버리고 머릿속으로 떠나버릴 그 곳에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네모난 돌과 같이. 비가 떨어져도 깨지 못하고, 해가 뜨겁게 비춰도 녹이지 못하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런 돌처럼 머물 것이다. 원자폭탄도 깨뜨리지 못하는 돌이 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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