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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is over? 끝난 게 아니라..

끝났다는 말 앞에서, 멈춰선 당신에게

by 정태인

출산율보다 희망률

요즘 이런 말이 자주 들립니다.

“이 나라는 끝났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경제는 둔화되고,

젊은 세대는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낳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회가 다시 움직이게 될까?”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정말 문제는 출산율일까요?


그보다 먼저, 우리가 진짜 마주해야 할 건

‘희망률’ 아닐까요?


희망이 사라진 자리

사람들은 왜 결혼을 미루고,

왜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집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일자리가 불안정해서?

물론 그것도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일까?”

“나는 있어도 괜찮은 사람일까?”


이 질문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면,

사람은 미래를 꿈꾸지 못합니다.


한 젊은 부부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둘 다 일하느라 너무 바빠.”

“애 낳으면 그냥 파산이야.”

“나중에 여유 생기면 생각해볼까?”

그러다 어느새 서로 입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계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용기의 문제 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내가 이 세상에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그런 감각을 우리에게 주고 있을까요?


연결의 단절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에게 무관심해졌을까요?

서로를 경쟁자로만 바라보며,

남보다 앞서야 살아남는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비교하고,

깎아내리고.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불러올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

잘 살아가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매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필요한 사람일까?

나는 이 사회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일까?


아이를 낳는다는 건 삶의 확장입니다.

미래를 향한 선언입니다.

그 선택은,

이 세상이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믿음에서만 시작됩니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을 만들어 줄 구조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줄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서로의 실패에 비난부터 던지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집니다.


말이 사라지면, 신뢰도 함께 사라집니다.

신뢰가 사라진 곳에 미래는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출산율이라는 숫자 아래 숨어버린

희망의 공백을 스스로 놓치고 있었던 겁니다.


희망률이라는 새로운 지표

그래서 저는 출산율보다 먼저

희망률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률.

그건 이 사회가 나에게 전해주는 말입니다.


“너는 여기 있어도 돼.”

“너는 괜찮아.”

“너라서 고마워.”


성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라서.

살아 있어 줘서 고마운 사람.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사람.


희망률이 높은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를 경쟁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비교하는 대신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작은 모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밥을 먹으며,

얼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사회.

다름을 견디는 힘이 있는 사회.

생각이 다르더라도

“아, 그렇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

이 말을 나눌 수 있는 사회.


온기로 번식하는 사람들

희망은 복지 정책이나

지원금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희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에서 자랍니다.

존재 자체를 인정받을 때,

사람은 다시 꿈을 꾸게 됩니다.


사람은 제도로 번식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온기로 번식합니다.


아이를 낳는 건 계산의 결과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그래도

괜찮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

이 나라는 끝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끝난 게 아닙니다.

다만 비어 있는 겁니다.

희망이 비어 있는 겁니다.


그 빈자리를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로

조금씩 채워갈 수 있다면,

그게 이 사회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댓글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남겨주세요.


“수고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

“네가 있어서 고마워.”


그 말 한 줄이

이 사회의 희망률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그리고 이 사회의 내일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출산율보다 희망률.

숫자보다 온기.

경쟁보다 연결.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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