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Yes We Can.’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연방 상원의원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만든 선거 구호다. 대선을 코앞에 둔 그해 10월 보수 강세 지역인 미주리주를 찾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수만여 명 대학생과 함께 이 구호를 외쳤다. 2030세대의 압도적 지지가 무엇인지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으로 구경꾼에 불과했던 나도 주변에 들뜬 얼굴을 보며 가슴이 설렜다.
오바마는 미주리주에서 0.13% 차로 패배했지만, 전체 선거인단에서 압승했다. 상대 후보였던 고(故)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은 선거 끝까지 상대방을 예우했다. “우린 할 수 있다” “우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구호는 민주주의의 최대 축제인 대선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 뒤로 나름 열혈 청년이 됐다. 선거만 되면 가슴이 설렜다. “꼭 투표해야 하느냐”는 후배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왕복 16시간을 운전해 재외국민 투표를 했다. 국내 이슈를 다룬 외신을 번역해 한국에 알렸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뽑는 게 선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투표를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대선은 좀 다르다. 가슴이 잘 뛰지 않는다. 모든 후보가 새로운 시대를 공언하지만, 설레는 건 별로 없다. 투표가 처음으로 망설여진다. 주변에선 겉만 알던 구경꾼이 속사정을 조금 아는 정치부 기자가 됐기 때문이라 한다. 나이도 먹었고 환상도 벗겨졌단 것이다. 이제 정치를 구호만으로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Yes We Can’은 여전히 가슴 뛰는 말이다.
지금 대선 현장에선 ‘주술공화국’ ‘파시스트’ ‘게이트’ ‘죽어’와 같은 막말이 일상이다. 상대 후보와 진영에 대한 저주는 선거의 공식이 됐다. 이런 적대적 환경에서 어퍼컷과 발차기란 공격적 제스쳐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8년 오바마 전 대통령과 경쟁하던 매케인 전 상원의원은 오바마가 무슬림이라 주장하는 지지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아니다, 그는 훌륭한 시민이며 지금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 후보가 됐을 뿐”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지지율이 뒤처지던 후보가 택한 건 네거티브가 아닌 존중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매케인 상원의원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읊었다. 물론 미국의 정치도 달라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탄생했고, “오바마와 매케인이 치렀던 선거를 다신 볼 수 없게 됐다”는 자조 섞인 말이 들려온다.
한국에서 대선은 겨우 5년마다 한 번 찾아온다. 이런 소중한 기회에 희망과 비전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건 후보들의 몫이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9일. ‘Yes We Can’과 같은 구호를 바라는 건 무리일까. 설레지 않는 대선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2022년 2월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