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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ul 24. 2023

5화. 17년 만의 국내 친선전, 시청률에도 긴장한다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다음 뉴스펀딩에 게재한 글.


 “집중하자, 집중!”


 조소현이 외쳤다. 제법 봄 날씨였다. 한국여자축구국가대표팀은 4월 1일 파주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치렀다. 오전 체력테스트 때는 흐렸던 하늘이 오후 들어 맑게 갰다. 선수들은 큰 목소리로 서로를 독려하며 훈련에 임했다.


 하루 전 저녁 소집이었다. 앞서 센터에 머물던 남자대표팀이 뉴질랜드와의 친선전을 치르기 위해 경기장으로 떠난 뒤였다. 근처 식당에서 고기 회식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이번 일주일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간이 될 거다.”


 첫 미팅에서 윤덕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대표팀은 5일과 8일 러시아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단일 친선경기가 열리는 것은 17년 만이다.


 국내 친선경기가 성사되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막상 코 앞으로 경기가 다가오자 17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1998년 10월 24일 잠실종합운동장. 상대는 일본. 1-1 무승부. 이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16년 반 동안 여자대표팀은 국내에서 친선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 1995년생인 막내 김혜영은 기억도 할 수 없는 때에 친선경기 역사는 끊어져 있었다.


 지난 2월 대한축구협회가 친선경기 확정을 발표했을 때 선수들은 얼떨떨했다. “신기하다”, “안 믿긴다”는 게 주된 반응이었다. 1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여자축구 A매치 기간을 그냥 넘겨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했다.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남자대표팀의 A매치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경기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아니다. 여자대표팀은 부족한 A매치 경험을 키프러스나 중국 등에서 열리는 해외 친선대회에 참가하며 메워왔다. 일반 국민들이 국내에서 여자대표팀의 경기를 볼 기회는 적었고, 그만큼 관심과 흥미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7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가족들이랑 친척들, 친구들한테 아는 사람 다 데려오라고 했어요.”


 정설빈이 말했다. 역사적인 경기를 가능한 많은 이들 앞에서 펼치고 싶은 것이 선수들의 마음이다. 이번 러시아와의 친선전은 중계도 잡혔다. 첫 경기는 KBS, 다음 경기는 MBC. 무려 지상파 중계다. 전에 없던 특별 관심에 선수들은 설렘 반, 긴장 반이다.


 첫 경기는 일요일 낮, 동시간 대에 열리는 K리그와 경쟁해야 한다. 비슷한 시각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 경기가 인터넷으로 중계된다. 두 번째 경기가 평일인 수요일 4시 경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첫 경기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회다. 선수들은 시청률도 걱정이다.


 “남자축구는 몇 프로 정도 나오죠? 남자 A매치는 몰라도 남자프로축구보다는 많이 나와야 할 텐데…… 우린 국가대표팀이잖아요.”(정설빈)

 “맞아요. 우리는 이제 한 번 중계되는 건데, 많이 나와야죠. 남자축구는 매번 중계하잖아요.”(이소담)


 남자 A매치의 지상파 중계 시청률은 보통 10%대 초반. K리그의 지상파 중계 시청률은 한 자리대 초반이다. 시청률이 잘 나와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선수들도 알고 있다. 경기에 나서기 앞서 흥행을 걱정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케이블도 아니고 지상파잖아요. 많은 분들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응원이 돼요. 특히 첫 경기는 주말 낮 편성이라 더 많은 분들이 볼 테니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설빈은 지난해 9월, 지상파의 힘을 톡톡히 느꼈다. 지상파 SBS로 북한과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준결승전이 중계된 것이다. 지긴 했지만 대등하고 투혼 넘치는 경기를 보여준 여자대표팀에게는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당시 무회전 프리킥 골로 화제를 모았던 정설빈은 특히 그랬다. 연락 없던 지인들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빗발쳤고, SNS 친구신청도 감당 안될 정도로 쏟아졌다. 이번 러시아전 역시 “잘해야 해”라는 다짐을 곱씹고 있다.


 2일, 이틀째 훈련은 힘들었다. 오전에는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선수들 모두 녹초가 됐다. 점심 식사 후 잠깐의 낮잠으로 기력을 보충한 후 오후 훈련에 임했다. 날씨는 갑자기 흐려졌고 강한 바람과 내리다 그치길 반복하는 빗속에서 선수들은 뛰고 또 뛰었다.


 동기부여는 확실하다. 17년 만의 국내 친선전, 그리고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국민들에게 여자축구를 선보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월드컵에 대한 꿈. 기존 선수들과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의 경쟁. 선수들은 의욕적일 수밖에 없다.


 대표팀에 최초 발탁된 손윤희와 아직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는 강유미는 더 그렇다. 대표팀 발탁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는 손윤희와 강유미는 화천KSPO에서 뛰는 소속팀 동료다. 이번 시즌 W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대표팀에 합류했다. 이름이 비슷해 처음 발탁 소식을 들었을 땐 서로가 뽑혔다는 줄 알고 축하해주려 했다. 힘든 훈련을 마친 뒤에도 둘은 설렘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손윤희가 말했다.


 “(박)은선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러시아 선수들은 힘이 되게 좋고, 피지컬도 좋대요. 좀 난폭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체력이랑 민첩성으로 승부해야 해요. 오전에 체력 훈련을 했는데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공을 가지고 하는 체력 훈련은 처음 해봤거든요. 신기해요.”


 러시아 로시얀카에서 뛰고 있는 박은선은 상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소속팀 동료들이 러시아 대표팀에 다수 포함돼 있는 데다, 로시얀카 감독인 엘레나 포미나 감독은 러시아 대표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박은선은 동료들에게 러시아 선수들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도 장점을 살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박은선은 2003년 17세의 나이로 자신의 첫 월드컵에 뛰었다. 이젠 대표팀에서 나이 순으로 세 번째 언니일 정도로 고참이 됐다. 러시아와의 친선전과 다가올 두 번째 월드컵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져주실 때 잘해야죠. 좋은 경기, 좋은 결과로 보답한다면 친선전 기회는 앞으로 계속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5일과 8일의 단 두 경기가 아닌, 미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어깨는 무겁다. 평소 여자축구를 접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단 두 경기가 여자축구 전체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지 모른다. 정설빈이 말했다.


 “꾸준히 여자축구를 보시는 분들은 어떤 지 아실 거예요. 하지만 모르는 분들은 한 번 보는 걸로 평가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재미있게 해야 해요. 여자축구 재미있구나, 가능성이 많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요. 우리가 못하면서 보러 와달라고 이야기하면 염치없는 거잖아요.”


 염치. 염치를 생각해야 할 이들은 선수들이 아니더라도 많다. 러시아와의 친선경기 2연전이 절대 선수들의 염치가 되지 않기를 기대하고, 또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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