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서
Q : 여행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딘가요?
A : 여행으로 다녀온 곳은 어디든 기억에 잘 남는 것 같아요. 전부 저마다 매력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항상 가장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부터 떠올라요. 아무래도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으니까요. 지금의 저는 부다페스트를 꼽고 싶네요.
Q : 부다페스트는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 부다페스트는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하잖아요. 정말 그렇더라고요. 다뉴브강 양쪽으로 펼쳐진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오래된 건물과 다리의 불빛이 강물에 비쳐 반짝이는데, 너무 낭만적이어서 강가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쳐다봤어요.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 귓가에 자동 재생 되는… 사실 생각나는 리스트 작품이 그것밖에 없었어요(웃음). 근데 사실 세상에 도시 경관이 빼어난 곳은 부다페스트 말고도 많잖아요. 예쁘고 멋진 곳은 정말 정말 많은데 뭐랄까? 마음이 가닿는다고 할까? 마음이 딱 접촉되는 곳은 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부다페스트가 그랬거든요.
Q : 어떤 점에서요?
A : ‘Terror Háza’라는 박물관에 다녀왔어요. 우리말로 하면 ‘공포의 집‘이라는 뜻인데, 헝가리의 역사적 상처를 다루고 있는 곳이에요. 헝가리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전체주의 정권과 공산주의 정권에 연달아 지배를 당했잖아요. 이 박물관 건물이 실제로 당시 나치 본부였고 공산주의 테러 조직의 거주지로 쓰이기도 했다고 해요. 그래서 지하에 감옥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큐레이션이 훌륭해서 번역기를 써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알 수 있잖아요. 비슷하게 아픈 역사를 지나왔으니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꼭… 한국으로 치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갔을 때의 느낌이랄까요? 불안하고, 불쾌하고… 목이 꽉 막히고 막 속이 울렁거릴 만큼 괴로운 느낌. 박물관 내부는 사진을 못 찍게 돼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기억에 깊게 새겨진 것 같아요.
Q : 다크 투어를 한 거네요?
A : 그걸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셈이 됐죠. 부다페스트에는 ‘공포의 집’ 말고도 그 시기와 관련된 기념물들이 많더라고요. 모르면 몰라도 알고 나니까 그런 것들이 지나쳐지지가 않았어요. 어떤… 의지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때의 참상을 기억하고자 하는, 그때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을 추모하고자 하는. 그게 좋았어요. 슬프지만, 화나지만, 그걸 끌어안고, 견디고, 싸우고, 어쨌든 나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Q : 거기서 마음이 확 가닿았군요?
A : 네. 그런 곳을 사랑하게 돼요. 결국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장소든 사람이든 무엇이든 말이에요, 그림자를 마주할 때인 것 같아요. 예쁘고 멋진 것 말고요. 어쩌면 어둡고 쓸쓸한 것. 반짝이는 것 뒤에 있는 것. 빛과 어둠은 필연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부다페스트가 야경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이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