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국산신약, 퍼스트인클래스가 없다”
“국산 신약 36개 면모 살펴보니···
'퍼스트인클래스'가 없다”
얼마 전에 나왔던 기사의 제목입니다. 제 친구가 이걸 보더니 저한테 묻더군요. “야, 태진아. 약에도 '일등석(퍼스트클래스)', '일반석' 이런 게 있냐?” 그 질문을 듣고 허허허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신약을 개발할 때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 “베스트인클래스(Best-in-class)” 이런 표현들을 많이 씁니다. ‘퍼스트인클래스’는 “최초”라는 의미이고, ‘베스트인클래스’는 “최고”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약이 최초다’ 혹은 ‘최고다’라고 말할 때 쓰는 표현인 것이지요.
신약개발에서 “최초” 혹은 “최고”를 강조하는 이유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되는데 이 타이틀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볼까요?
다들 ‘비아그라’라는 약 아시지요? 맞습니다.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 구세주와 같은 바로 그 약입니다. 비아그라는 대표적인 ‘퍼스트인클래스(최초)’ 약입니다.
비아그라의 작용원리는 이렇습니다. (혹시 이거 19금인가요?) 발기가 되려면 음경 안의 혈관이 충분히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속의 혈관이 확장되려면 cGMP라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이 cGMP를 분해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바로 ‘PDE5 (phosphodiesterase 5)’라는 이름의 효소입니다.
한마디로 PDE5라는 효소가 너무 열심히 일하면 몸 속의 cGMP가 다 분해되어 버려서 혈관이 충분히 확장되지 않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발기에 지장이 생기게 되지요. 비아그라는 이 PDE5라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합니다. 그러면 cGMP가 분해되지 않고 몸속의 혈관을 맘껏(?) 확장시킬 수 있게 되겠지요.
1998년에 허가된 비아그라는 이런 원리로 개발된 “최초”의 약, 즉 퍼스트인클래스 신약이었습니다. 이 약이 나오고 나서 전 세계가 난리가 났었지요. 덕분에 이 약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누적 매출은 33조 원에 달했구요.
비아그라가 개발되어서 세계적인 초대박을 터뜨리자 다른 많은 회사들이 똑같은 원리로 작용하는 약들을 앞다퉈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에 허가된 Eli Lilly의 ‘시알리스(Cialis)’와 Bayer의 ‘레비트라(Levitra)’가 대표적입니다.
사실 저는 Eli Lilly에 2000년대 중반에 입사해서 본사로 발령받기 전에 1년간 영업사원 경험을 쌓았는데요, 그때 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지역에서 영업했던 제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시알리스였습니다. 당시 우리 팀의 슬로건이 “Beat Viagra! (비아그라 타도!)”였던 것이 기억나네요. 매일 아침 전화로 영업회의를 하고 나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미국인 동료들과 함께 힘차게 “Beat Viagra!”를 외치곤 했었던 기록이 새롭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비아그라를 타도하기 위해서 강조했던 것은 비아그라가 “최초”일지는 모르지만, “최고”는 시알리스라는 것이었습니다. 시알리스와 비아그라는 동일한 작용원리를 가지는 같은 계열(class)의 약이지만, 약효나 안전성, 편의성 등의 측면에서 분명한 차별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시알리스는 비아그라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매출면에서는 거의 비아그라에 필적할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누적매출이 약 27조 원에 이르렀으니까요.
앞서 인용한 기사에서도 언급하듯이 한국의 제약바이오 회사들 중에는 ‘퍼스트인클래스(최초)’보다는 ‘베스트인클래스(최고)’ 신약에 도전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퍼스트인클래스’는 아직 아무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시도하는 것인 만큼 불확실성이 높고 시행착오도 많고 실패할 확률도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고”에 도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진정으로 자타공인 “최고”의 약이라면 시알리스의 경우처럼 “최초”에 못지않은 성공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최고”라 할지라도, 이미 해당 시장에 비슷한 약들이 몇 개 나와 있다면 후발주자로서 그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극도로 힘들다는 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발기부전치료제를 다시 예로 들자면 발기부전 치료제의 시장점유율은 비아그라 40-50%, 시알리스 30-40%, 레비트라 10-20%로 3개 회사가 거의 다 차지했었습니다. 참고로 세계 4번째 5번째 발기부전 치료제는 한국회사들이 개발했었습니다만 이 약들은 상업적으로 비아그라나 시알리스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블록버스터 신약이 되려면 약 자체도 훌륭해야 하지만, 영업 마케팅 능력도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들에서 글로벌 빅파마가 얼마나 천문학적인 돈을 R&D에 쏟아붓는지를 설명드렸는데, 사실 이들 회사는 영업 마케팅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붓습니다. 그것도 약이 완성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아주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 “최초”의 신약이 개발되고 후발제품도 이미 4-5개 이상 나왔다면, 저는 그 시장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후발주자가 뚫고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항암제 중에 'PD-1/PD-L1'이라는 몸속 시스템을 활용한 면역항암제들이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약들이 바로 이 계열의 약들입니다. 미국에서 폐암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허가받은 PD-1/PD-L1 치료제는 지금까지 6개가 있는데,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1등부터 순서대로 56% (1위), 28% (2위), 8% (3위), 7% (4위), 0.4% (5위), 0.3% (6위)입니다.
상위 1, 2위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상위 4위까지가 세계시장의 99%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이후에 진입하는 약들은 사실상 남은 1%도 안 되는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저는 한국 제약 바이오 회사들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많은 한국 회사들이 “최초”보다는 “최고”의 신약에 도전합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안착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분야에 도전할 경우 설령 연구개발까지 성공한다고 해도, 그 약이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열심히 신약개발해서 ‘과학적으로는 성공’하더라도, ‘상업적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말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상 많은 제약 바이오 회사들의 회사소개 발표를 듣곤 합니다. 그런데 여러 회사들의 열띤 발표를 듣다 보면 종종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가 해당 분야의 ‘시장의 크기 (Market Size)’에 대해 설명하는 장표를 보게 될 때입니다.
아마 발표하는 분은 ‘이 분야는 엄청난 매출이 일어나고 있는 제품들이 많은 엄청나게 큰 시장이다’는 것을 장점으로 강조하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의 관점에서는 이미 엄청난 거대품목들이 여러 개 안착해서 시장이 그렇게 큰 것이라면 그 분야에 이제야 후발주자로 들어가겠다는 것은 오히려 피해야 할 일 같거든요.
직전 글에서는 한국의 제약 바이오 회사가 글로벌 빅파마로 도약하기 위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한국회사가 신약으로 빅파마가 되고 싶다면 이미 성공한 제품들이 다수 있는 분야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최고”를 노리는 것보다, 아직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분야에서 “최초”를 노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방법으로 단시간에 세계 20위권의 '빅파마(Big Pharma)'로 도약한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코로나 백신때문에 유명해진 모더나(Moderna)입니다. 모더나는 ‘mRNA’라는 우리 몸속의 구성성분을 약으로 개발하는 데 도전해서 세계 “최초”로 성공했고 그 덕분에 설립한 지 단 10년 만에 세계적인 '빅파마(Big Pharma)'가 된 것이지요.
찾아보면 한국에서도 “최초”에 도전하는 바이오 회사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에 도전하는 경우, 아직 형성된 "시장"이랄게 없는 것이 당연함에도 이것을 단점으로 보는 분들에게 외면받곤 합니다. 또 "최초"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외면받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보면 좀 안타깝습니다. 새로운 분야의 '최초'에 도전하는 회사들이 좀 더 주목받고 응원도 받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글로벌 빅파마의 영업, 마케팅에 얽힌 이야기를 더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p.s. 와이프에게 글을 보여주고 일반인의 관점에서 너무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한테는 어렵지 않다네요. 다만 평소에 하도 나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서당개 3년‘의 경지에 올라 그런건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쉽게 쓰는 건 역시 어렵군요. ㅠㅠ
<세줄 요약>
- 신약 중에서 특정한 원리를 적용한 최초의 약을 "퍼스트인클래스 (First-in-class)", 해당 원리를 적용한 약들 중에 최고의 약을 "베스트인클래스 (Best-in-class)"라고 부른다.
- 특정 분야에서 '퍼스트인클래스(최초)'의 약이 나오고, ('최초'는 아니지만 '최고'라며 차별화를 시도하는) 후발주자도 4-5개 나오고 나면 그 분야에서 더 이상의 후발주자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 한국의 제약바이오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퍼스트인클래스(최초)'에 도전하는 회사들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Reference>
1. 국산 신약 36개 면모 살펴보니···'퍼스트인클래스'가 없다 | 시사저널 e (2023)
2. 주요국 신약 개발현황 비교 및 시사점 | 전국경제인연합회 (2022)
3. Cialis vs. Viagra: Which One Is Best for You in 2023? | Healthlin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