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전환 (Career Transition)
내 첫 직장은 대기업의 연구소였다. 입사한 지 몇 년쯤 되었을 때, 회사 안에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선후배들이 하나둘 사표를 내더니, 앞다투어 벤처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길을 택하는 동료들을 보며 의아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 말,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나 역시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번엔 반대의 장면을 보았다. 유능한 직원들이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떠나려 했고, 그들이 향한 곳은 대부분 대기업이었던 것이다.
대기업에서 벤처로, 혹은 벤처에서 대기업으로 옮겨간 옛 동료와 후배들 중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원하는 바를 이루었고, 또 누군가는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아픈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이직을 고민할 때 저마다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지금 이 자리에 남아있는 게 나을까,
아니면 떠나는 게 나을까?”
이직은 언제나 흔들림과 희망,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고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떠나는 것이 옳을까?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직을 결심하기 전에 마음속에서 이미 여러 번 신호를 보낸다. 다만, 그 신호를 애써 무시하거나 뒤로 미뤄둘 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출근길이 두렵다. 아침마다 이유 없는 피로감이 몰려오고, 회사 문 앞에서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2. 상사의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난다. 회의 초대 메일에 상사 이름이 보이는 순간, 일의 내용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3. 배우는 게 없다고 느낀다. ‘여기서 1년 더 버티면 나는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질문에 선뜻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4. 가치가 어긋난다. 회사의 목표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점점 멀어지면서, 일이 의미 없는 반복처럼 느껴진다.
이 신호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이미 마음은 회사를 떠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직의 이유는 대부분 두 가지로 수렴한다.
1. 도망(Escape) —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2. 도전(Pursuit) — 새로운 기회와 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서.
유의해야 할 것은, ‘도망’의 동기로 회사를 떠나면 다음 회사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반대로, ‘도전’의 동기로 떠난 사람은 힘들어도 버티며 성장할 확률이 높다. 떠남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도망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나쁜 환경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내 성장을 만든 시간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작정 도망가기보다는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이 자리에 머무는 것이 장기적으로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라고 판단한 경우들이다.
남기로 하건 떠나기로 하건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이 습관적이거나 수동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는다면 이유와 전략이 있어야 하고, 떠난다면 그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이직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오직 이직의 이유와 방향이 그 결정을 가치 있게 만들 뿐이다.
나는 이직을 주식 투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인 감정으로 사고팔다 보면 손해만 보고, 장기적인 전략과 분석이 있을 때 수익을 낸다. 이직도 마찬가지다. 순간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서둘러 떠나면 후회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커리어 방향과 성장 곡선에 맞춰 움직인다면 이직은 최고의 투자가 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떠날 때’를 잘 고른 사람이 장기적으로 커리어 만족도도 높다. 결국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이직 자체’가 아니라 ‘시기와 이유를 읽는 눈’이다.
버티는 것과 떠나는 것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이직은 도망일 수도, 도전일 수도 있다. 상관없다. 그 선택의 주도권을 스스로 꼭 쥐고, 아래 질문들에 답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나는 지금 무엇에서 도망치려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가?”
“이 결정은 지금의 나를 위한 것인가?”
“이 결정은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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