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영화를 보며 호불호가 있을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대중은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 것인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할 때는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손쉽게 판단하고 만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세상이고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조차 귀찮은데, 영화까지 기어이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투덜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거미집은 조금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배우들의 과장된 대사나 표정이 재밌기는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라는 리뷰가,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다. 별다른 이슈가 없이 조용히 사라진 것을 보니 그런 것 같다. 정확한 손익분기점이야 알 수 없지만, 출연 배우들의 화려한 라인업을 본다면 아마도 손해를 보지 않았을까? 또 어쩌면 감독과의 의리로 배우들이 적은 개런티로 출연을 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손익분기점을 넘겼으면 다행이지만, 뭐 그거야 난 알 수 없으니까.
하여튼, 그럼에도 나는 무척 흥미롭게 봤다. 웃긴 부분도 많았고 실제로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호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도망갈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사연으로 얽히고 그와 중에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고 또 누군가는 이를 방해하려 하는 좌충우돌이 즐거웠다. 갖가지 인간군상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감독의 의도였다면 성공이다. 비록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당장이라도 전복될 것 같은 배와 그 속에서 저마다의 복잡한 이해와 갈등이 뒤엉킨 사람들이 팝콘이 튀듯 저마다의 일들을 벌인다. 그 ‘엉망진창’ 속에서 영화 속 ‘감독’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 좌초될 위기의 배를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사고뭉치들이 늘 그렇듯 감독을 애태우고, 그걸 또 억지로 잡아끌고 가야 하는 감독의 외로움과 절실함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문제는 정작 배의 선장인 감독 역시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없고 왠지 항해도 그닥 능숙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제작사의 숨은 실세 전여빈이 돋보였다. 감독의 멱살은 물론 좌충우돌 선원들을 뒷덜미를 잡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라니! 지금이야 무서운 숙모의 기세에 눌려 있지만 반드시 크게 될 장군감임이 틀림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리더의 능력만큼이나 이를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물론 그런 조력자를 알아보고 자신의 사람으로 쓰는 안목과 결단력이야 말로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마치 삼국지의 유비가 관우와 장비, 제갈공명을 알아보고 자신의 최측근으로 두고 쓰는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그 조력자가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는 것도 모자라 온전히 나를 믿고 따라준다면 이건 거의 당첨된 1등 로또와 다름없다. 그만큼이나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또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점이다.
혹시나 싶어 나를 돌아보니, 뛰어난 리더도 아닐뿐더러 뛰어난 조력자는 더욱 아닌 듯싶다. 내가 성공한 것도 아니고 나와 함께하는 누구도 크게 성공시키지 못한 것 같으니 말이다. 느닷없이 반성을 하게 만드는 이 영화의 감독이 조력자의 중요함을 얘기하려던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괜스레 쭈그러진다.
영화는 영화 속 감독의 비밀이 드러나고 동시에 이런저런 비밀까지 밝혀지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여기에 과장된, 향수를 일으키는 촬영 방식과 편집이 더해져 재미를 더한다. 어쩌면 이건, 오래된 친구와 만나 술 한잔을 기울이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었던 감독의 속마음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혼자만의 추억은 혼자만 즐겁다는 게 문제다. 어쨌든, 대중은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즐거웠다. 피식피식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