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의 고향 - Vimmerby
그녀는 직장인 스톡홀름의 왕립 자동차 클럽(KAK)에서 사무실 비서로 근무하면서 번 150 크로나에 불과한 월급을 받고 가난과 배고픔에 찌든 삶을 살면서도, 아들을 보기 위해 23.8 크로나의 스톡홀름-코펜하겐행 기차의 3등석에 수시로 몸을 실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네스 박물관에 전시된 그녀의 여권의 한 페이지를 보면 1926.11월에서 1927.9월까지 무려 15회의 입출국 도장이 찍혀있어 얼마나 아들을 보고싶어 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당시 고독과 빈곤으로 점철된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탈출구로 책을 읽었다고 하며, 거기서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3년 만에 아들을 데려왔지만, 아들은 아스트리드를 거부하고 양모만 계속 찾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들을 고향의 부모에게 맡기고 일을 계속해야 했는데, 그의 아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으며 나중에 자신의 엄마가 유명 작가가 되면서 과거의 행적이 신문에서 보도되자 이에 충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젊은 날의 아스트리드는 어두운 시간의 연속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한 독서와 글쓰기는 30대 후반 아이 둘을 기르는 평범한 여성이 작가로 데뷔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10대 후반의 소녀가 20대의 엄마가 되기까지, 유명 작가가 되기 전 아스트리드의 험난한 젊은 날을 그린 영화 '아스트리드 되기(Becoming Astrid)'는 그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2018.9월 스웨덴 개봉).
https://youtu.be/ia4cgd7D90M?si=FOtY-zs1hOvJmn0F
불행으로 점철된 그녀의 젊은 날은 그녀의 직장인 왕립 자동차 클럽의 매니저 Sture Lindgren을 만나 사랑에 빠져 1931년 봄 재혼을 하면서 전환기를 맞는다. 결혼과 동시에 부모가 돌봐주던 아들 Lasse를 스톡홀름으로 데려왔으며 1934년 딸 Karin을 낳고 주부로서 행복한 삶을 시작한다.
이 딸이 바로 '삐삐'를 만들고 아스트리드를 1945년 38세의 나이에 동화작가로 데뷔시켜 준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아스트리드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남편을 죽는 날까지 정말 사랑하고 존경했다고 한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슬픔을 치유했던 아스트리드는 스스로 삐삐가 되어 거친 세상에 맞서 싸워나갔으며, 그녀의 수많은 작품 중에 불쌍한 여자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정말 글쓰기를 좋아했는지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여 글을 쓰고 아침 식사 후 점심까지 다시 글을 쓰는 생활을 반복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독서와 숲 속을 혼자 거닐었고 '고독이 최고의 영감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으며, 잠에 들 때도 내일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잠을 청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열정은 1958년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시작으로 노벨상 주관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의 황금상, 유네스코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평생 100권이 넘는 작품을 썼으며 이것이 90여 개국의 언어로 출간되어 1억 명 이상의 독자를 가진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아스트리드는 단순한 동화 작가로만 남은 것은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에도 적극 관심을 보였는데, 1970년대 집권당인 사회민주당과 조세 관련 논쟁을 벌인 것이나 아동 폭력 방지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일반인에게 복잡하고 자영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당시 조세제도를 비판을 하며 공개 서한을 보낸 재무부 장관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사민당 정권이 1976년 총선에서 연합 정권에 패배하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또한 1978년 제1회 독일 도서협회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어린이에 대한 체벌 반대와 부모의 자녀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내용의 수상 소감을 발표했는데, 이는 스웨덴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에 대한 체벌 금지 및 부모 폭력 방지법을 공포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1985년에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스웨덴 의회는 3년 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동물복지법을 제정한바, 그 별칭이 '린드그렌법(Lex Lindgren)'이었다고 한다.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과 아들을 떨어진채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아가며 가난과 배고픔이라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독서와 창작을 통해 끊임없이 생의 활력을 찾고자 노력했고, 자신이 그러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 편히 살아갈 수도 있었음에도 다시 어린이나 동물 같은 약자의 편에 서서 권위주의에 도전했던 아스트리드는 2002년 아동문학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스웨덴 정부는 2002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제정하여 어린이 문학상으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상으로 발전시켰고(상금 한화 6억 원), 스웨덴은 왕세녀 Victoria를 중심으로 2007.6.12. 그녀의 고향인 빔메르비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네스 박물관(Astrid Lindgrens Näs)'을 세워 그녀의 일생을 기록했으며, 유네스코도 2005년 아스트리드의 필사본을 비롯한 관련 기록물을 모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한편 스웨덴은 자국 화폐인 크로나에 문화 예술인의 초상을 주로 넣는데, 20 크로나 화폐에는 그녀의 얼굴이 들어가 있으며 뒷면에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빔메르비를 포함한 스몰란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 나오는 예쁜 꽃은 스몰란드의 상징 꽃 린네풀(리네아 보리알리스)이다.
그녀가 그려낸 삐삐는 스웨덴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아 스웨덴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인들에게 '삐삐'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듣고, '피피'라고 발음하거나 '피피 롱스타킹'이라고 해야 아~ 하면서 웃으면서 반가워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어."
"뭔데?"
"2002년부터 1년에 단 한 명만 선발하는 린드그렌상은 2005년 일본의 동화작가 아라이 료지(あらいりょうじ) 말고 동양에서는 수상자가 없었는데.... 2020년 67개국에서 올라온 240명의 후보를 물리치고 한국의 작가가 수상을 했다는 사실!!"
"정말? 누군데?"
"바로 ‘구름빵’을 쓴 백희나 작가야. 그 이전에도 백 작가가 발간한 13권의 그림책은 아시아 전역에서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다수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대표작 '구름빵'은 2011년 영어로 출판되었어.
스웨덴예술위원회(Swedish Arts Council) 주관으로 어린이·청소년 문학, 독서 진흥, 아동, 권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12명의 심사의원단은 “고독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녀의 영화 같은 그림책은 소재와 표정·몸짓을 놀라운 감각으로 나타냈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니어처 세계 속에서 구름빵과 달 샤베트, 동물, 목욕탕 선녀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경이로운 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만든 바, 감각적이고 아찔하면서 예리하다”라고 찬사를 보냈지."
"이야! 한국인 작가가! 정말 자랑스럽다!"
"자, 오늘 우리는 뜻밖에 수확을 얻었는데, 첫째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세계적인 동화작가로 우뚝 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은 오늘날 복지의 천국이라는 스웨덴에 있어 아동이나 동물 복지를 생각하는데 중요한 현대사의 한 페이지라는 점이야.
둘째는 이러한 아스트리드의 작품인 삐삐와 같이 스웨덴의 문화가 이미 의외로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었고, 이제는 그 삐삐의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을 우리 작가가 수상했다는 사실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야.
마지막으로 이를 연결시켜 주는 '삐삐'는 스웨덴에 진출한 한국들이 좀 더 스웨덴과 스웨덴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지.
단순히 1980년대 한국에서 방영된 어린이 드라마라는 사실을 넘어 '말괄량이 삐삐'는 아직도 한국과 스웨덴을 이어주는 존재로 살아 숨 쉬고 있어. 우리 다시 한번 불러볼까, 삐삐 주제가."
40을 넘어 50대로 향하는 그들의 눈가에 알 수없는 감정의 눈물이 고인다.
# 본문에 포함된 사진들의 상당수는 2021.7월 빔메르비(Vimmerby)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네스 박물관(Astrid Lindgrens Näs)' 방문 당시 촬영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