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의 추억-16년 만에 이어진 PC통신의 편지(2)
*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학생백일장 수상-태진, 응진, 상희, 00, 병찬(1982.6월)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이 있다.
늘 그리워하면서 산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 그런 애가 있었지 하는
그런 사람.
태진에게 00 이는 그런 존재였다.
워낙 키 차이가 커서
단짝처럼 붙어지내는 것도 아니고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니었지만
아 저 애는 참 좋은 애 같애
라고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친구말이다.
그의 마음속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잊힐 듯했는데
낯선 존댓말의 편지가 아닌
그런 추억을 가졌던 그에게서
인터넷선을 타고 답장이 왔다.
초등학교 때 학기가 바뀔 때면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애들이 있었다. 그땐 몰랐는데 한강 쪽으로 남하했던 걸 보면 아마도 부모님들이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 같다. 짝이었던 상희도 3학년 때 전학을 갔는데 "너 어느 학교로 가니?" 물으니까 "응, '언북국민학교'라고 해."라고 하길래, 어이구 잘 사는 애인줄 알았는데 이름도 촌스러운 '언북'이 뭐냐 북한도 아니고라면서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참고로 언북초등학교는 청담동에 있다).
00 이도 1984년 4학년을 마치고 집이 자양동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전학을 갔다. 몇 번 편지를 주고받다 연락이 끊기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그는 잊힌 이름이 되어버렸다. 아이러브스쿨은 그렇게 잊혔던 그 애가 중학교를 마치고 같은 재단의 여고를 3년 동안 다녔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당시 별명이 '미친개'였던 학생주임이 교문 앞에서 선도부 형들과 빨간 바지를 입고(지금 생각해 보면 ㅁㅊㄱ가 맞는 듯... 선생님이 무슨 빨간 바지야) 서슬 퍼렇게 서있었지만, 같은 교문을 들락날락했기에 어쩌면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 몇백 명이 다녔던 학교에서 그렇게 모른 채 지나간 것이다. 우리 인생에 그런 인연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의 답장을 받고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아 그때 그 애가 있었지.
20000814친구에게.hwp
(중략)
기억을 더듬고 보니 정말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가 그 00 여고에 다녔다니.. 등산하면서 한 번도 못 봤을까?...
(주: 학교가 산에 위치해서 등굣길이 거의 45도에 가까운 경사를 자랑했다)
고2 때까지 만해도 나의 꿈은 역사학자가 되는 거였어. 대학에 가서 역사를 공부하며 우리나라와 세계를 돌아보고 트로이의 유적을 찾아낸, 꿈에서 현실을 찾아내었던 서양의 한 역사가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그 결과를 만화로 만들어 이원복교수 같은 사람도 되고 싶었고 고2 때 환상적인 강의로 역사에 심취하게 했던 국사선생님의 영향도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로 꿈은 멀어져 갔지만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선다면 나도 사학을 공부하고 싶었어. 그나저나 그대로 꿈을 키워갔다면 만났을지도 몰랐겠다.
너무 만날 기회가 많았던 걸까.
왜 영화를 보면 관객이 안타깝게 주인공들이 지나가듯이....
고등학교 때 아니면 대학 때 알게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지금 너무 늙은 게 아닐까?
뭐 지금이라도 연락된 게 어디야....
그나저나 너 대단하구나. 웹마스터에 인터넷 기획컨설턴트.. 내 학교 때 여자애가 반장 하는 건 네가 유일했는데 역시 큰 인물이 되었구나. 그 분야에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아 그리고 아나운서에도 도전했었다는데 그것도 너한테 어울렸을 것 같다. 하지만 됐으면 TV 보다가 까무러 쳤을 거야.
지금 난 여자친구라고 할 사람은 다섯 정도.
대학시절 동기 여자애들 다섯이 다인데, 언젠가 동기애들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그래도 나이 먹어서 친구라고 말할 여자사람이 있는 게 참 좋은 게 아닌가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살면서 처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있었네.
네 답장을 본 건 새벽 파출소 순시를 돌고 사무실에 와서 혹시나 하고 접속해 본 거였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지더라. 나를 아직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고.. 한편으론 그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종의 정화의 시간을 갖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보낸 답장은
일주일이 넘도록 답이 없었다.
'아 그런 애가 있었지'로 끝나는 것이었을까.
부활의 어느 노래 가사같던 1주일이 지나갔다.
같은 생각을 하며 어딘가에 있을 너의 숨소리가 내겐
언젠가 들리겠지
예상할 수 없는 시간의 알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오늘도 비가 내려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내려와 지금
뒤돌아 보면 누군가
돌아오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난 빠져들곤 해.
- 부활 : 추억이면 (Unplugged)
https://youtu.be/dvhCP8Mr0yQ?si=r1QWryVUa7INnV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