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의 추억-16년 만에 이어진 PC통신의 편지(1)
*서울 00 국민학교 졸업앨범(1986.2월)
"아니, 그래서 출장 내내 그 편지들을 읽은 거야? 웬 갬성? 아니 청승이네."
아내가 소파에서 편지를 보며 생각하던 태진에게 다가와 웃긴다면서 말을 건다.
"아니 뭐 이쯤 된 나이에 다 그런 거지 뭐."
"근데 우짜노, 그때 이후로 뭐 편지 쓴 거 있나?"
"뭘~ PC통신 시작하면서 거의 안썼지비."
"그래~ 나도 쓴 기억이 별로 없는데..."
"나하고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넌 그냥 인문학적 소양이 없을 뿐이지."
"머라캤노?"
"아휴 됐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태진이 컴퓨터를 켰다.
그래...
대학시절 당시 3대 PC통신사였던 '나우누리'의 회원이었던 태진은
치지지직 치지지직 삐익~ 하면서 연결이 되었던 PC통신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PCMCIA 카드 형식의 56K 모뎀을 사다 끼고 초특급(?)으로 날아가는 접속 속도에 감탄하던 시절.
편지를 부치고 편지를 기다리는 설렘은, 전자우편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와 함께 사라져 갔다.
1990년대는 그렇게 모든 것이 빨리 변해갔다.
텍스트 기반의 PC는 윈도우라는 GUI 환경의 도래와 함께 획기적으로 변해갔고
이렇게 빨리 발전하다가 세상이 망하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과 함께
2000년이 되면 심판의 날도 온다는 둥....
하지만, 이런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게 해주는 계기를 낳았으니
바로 '아이러브 스쿨'이라는 동창회 사이트였다.
자신의 출신학교를 넣고 등록을 하면 동창들을 만날 수 있는 데다 친구도 찾을 수도 있었으니, 그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야 그거 해봤어?'부터 시작해서 국민학교 때 좋아했던 아무개가 사이트에 나왔다는 둥 동창모임을 했는데 완전 'TV는 사랑을 싣고'였다는 등 화제의 중심에 '아이러브 스쿨'이 있었다.
태진도 99년도에 초등학교 친구(물론 남자 ㅠㅠ)가 연락이 와서 거의 20년 만에 만난 적도 있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우리 반 애들은 어떻게 됐지? 하면서 접속했었던 기억도 있다.
당시 90년대 말 IMF로 가뜩이나 어두웠던 시절 사회 초년병이었던 그들에게 아이러브스쿨은 지난 추억을 되살려주며 반가움과 열심히 살아갈 힘을 가져다주던 그런 존재였다.
'근데 그때 '친구 찾기'가 있었는데...'
태진은 문득 그때 누군가를 찾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하드디스크를 뒤져보면 그때 혹시 누구에게 보냈었던 것이 남아있을지도 몰라.
한동안 뒤적였던 편지상자를 제켜두고 책장 깊숙이 두었던 하드디스크(HDD) 보관상자를 꺼낸다.
오래된 PC를 버리면서 HDD는 아까워 케이스를 사다가 만들어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연결해 본다.
폴더 '2000'.
수없이 많은 TXT 파일 사이로 캡처 파일이 하나 보인다.
'20000807 iloveschool'
푸핫!
얼마나 좋았으면 캡처까지 해놨을까.
그래 '00은'
'아이러브스쿨'에서 태진이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서울이지만 등굣길이 1시간에 달했던 시골 같던 방화동에서 중곡동로 전학 갈 때 우느라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던 친구들, 또 서동요처럼 그가 좋아해서 ‘지연이는 태진이를 좋아한다’고 그가 소문 퍼트리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여자애. 그를 번쩍 안아 뽀뽀를 퍼붓던 국민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무슨 정치인들처럼 몰려다녔던 친구들.. 많은 사람들을 그리움 속에 가두어두고 살지만 언젠가 연락이 되면 참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00 이도 참 보고 싶던 친구 중 하나였다.
중곡동으로 전학을 와서 다녔던 용마국민학교에서 2,3,4학년을 계속 같은 반이었던 그는 키는 제일 커서 맨 뒤에 앉았었지만 친하게 지냈었고, 그때까지 그의 사진첩에 있는 친구 중에 여자애 사진으로는 제일 많았던 친구였다. 기억에는 아버지도 교수님이고 집도 어느 정도 잘 사는 친구임에도 늘 '착하고 좋은 친구'로 기억이 남아있었다. 키도 크고 이쁘장하게 생겼는데도 설렘보다는 좋은 친구였던 00이.
하여간 여자애의 생일 초대로도 처음 갔었던 애도 그였고, 자양동으로 전학 가고 편지도 보내주었던 그. 거기에 들어있던 세장의 사진. 사진첩을 펼칠 만큼 여유를 가져본지도 오래되었지만 가끔 얘는 지금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그가 보내준 편지에 '의사가 되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기에, 답장이랍시고 ‘나도 의사가 될 건데, 그럼 내가 하는 병원에 와서 일하면 되겠구나’라고 편지를 보냈다가 이후로 끊어졌다. 그렇게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인이 되면서 그의 존재는 잊혀갔다.
마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소년이 서울로 돌아가는 소녀를 보내듯이.
밑을 보니 태진이 답장을 쓴 파일도 그대로 있다.
(중략) 홍 00이란 애 기억나니.
얘도 국민학교 2․3학년 때 우리 반 애였는데. 아이러브 스쿨에 들어가 국민학교 때 애들 3명에게 쪽지를 보냈거든. 그런데 이 녀석이 저번주에 전화를 걸어왔어.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지 16년 만에였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별로 바뀌지는 않은 거 같았고, 한 번 만나자고 해서 만났어. 서로 보고 무척 낄낄댔다. 하나도 안 변했다고. 그 녀석 들창코야 그대로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가 봐도 얼굴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대로라고 하더구나.
서로 옛날에 아무개 아무개 하며 길게 얘기면서 서로의 기억을 더듬고 나니 내가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그리고 우리 한번 2-13반 모임이나 만들어 볼까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너에 대해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가봤더니, 학교는 신자양인지, 신양인지, 신자인자 찾아보았고 생일이 겨울방학 개학하고 간 2월인 거 같아서 찾았는데 다행히도 이름이 딱 하나 뜨더라. 혹시나 해서 그냥 메일만 보냈는데 이번 주 당직서고 나서 잠깐 도서관에 들렀다 메일 검색하는데 답장이 온 걸보고 무척 반가웠다.
이제는 많이 변했겠지. 나도 어느 날 문득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내 모습에 놀랄 때도 많으니까. 정말 의사가 되었을지도 아니면 한 가정을 꾸린 아이의 엄마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연락하고 좋아하는 것이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를 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란 말처럼 역설적으로 언제나 그리움 속에 두는 것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을 만족할 것 같다. 앞으로도 생각나면 계속 연락이 됐으면 좋겠고.
2000. 8. 12. 23:26
그 친구도 반가웠을까.
다음 날 밤 나는 그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나기'의 소년은
16년 만에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