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은 지나간다
* 30이 다 되어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남양주 축령산 휴양림에서(1999.7월)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태진은
내일이 주말이라는 사실에 모든 것이 여유롭기만 하다.
아내는 안방에서 드라마 시청에 여념이 없고,
고등학생 아들은 뭐가 즐거운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낄낄대는 소리가 방 너머로 들려온다.
가족이라는 이름아래 한 지붕아래 살지만 다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삶을 추구한다.
어느덧 각자의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집에서도.
태진은 술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젊은 날의 왁자지껄했던 술자리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가 언제였지...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다고 연락하고,
누군가가 술 한잔의 추억을 만들자고 하던...'
좋은 친구야!
몸 건강히 지내고, 한 번쯤은 하늘을 보며, 또 한 번쯤은 땅을 보며 살아라.
좋은 친구야!
보고 싶구나!
시간이 허락되면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으며 얘기하자!
태진아!
내가 술은 싫어하지만 너와 시간을 보내며 술 마시는 건 언제고 마다하지 않는다.
난 오랜 친구의 변한 모습은 보지 않으려 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우정이란 이름이며,
그것이 존재할 때까지 우리는 살아있을 거라고 믿는다.
(1994.3.16)
보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구나.
기억은 나지 않아도,
아마 그때는 그런 친구가
그렇게 소중한 것인지는 잘 몰랐을 것 같다.
태진아!
내가 네게 그렇게 실망을 안겨줘서 미안하다.
앞으로 잘할게!!
야!! 그래도 나 괜찮지?
하하하!
정말 고맙다 친구야!
야!!
언제 막걸리 한잔하자!
나 돈 있다!
월급날 친구가.
(1996.2.10)
아마 친구와 뭔가 부딪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친구는 둘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해서
투박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노력으로
멋쩍은 손을 내미는 것 같은 편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친구들이 바닷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이
하나씩 떠나갔다.
젊었을 때는 뼈가 부러져도 이내 잘 붙고 낫지만
나이가 들수록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것처럼
친구나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미워하고 경쟁하며 시기하는 것이 일상인 현실에서
저렇게 서로를 좋아하고 싸우면서도
손을 내밀던 시절이 그립다.
너에게 한 가지 더 바랄 것이 있다면
옛날처럼 많이 웃으라는 거다.
그 순수한 너의 웃음을
적어도 친구들에겐 보여줄 수 있겠지.
웃고 싶지 않은데 웃으라는 건 아니다.
알지?
그리고 내가 비틀거릴 때,
술 한잔하고 싶을 때 받아주라.
(1996.11.3)
우리가 지나간 사진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것은
점점 웃는 모습의 사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젊은 날 친구들과
함지박만 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모습은
이제는 이상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진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세상에 물들어가면서
누구 하나
웃음을 주는 사람도 없지만
웃으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이렇게 웃으라고,
웃는 모습이 그립다고 하는 친구는
더 없다.
야!
이 자식아!
보고 싶다!!
(1997.1.26)
그의 편지는
더 이상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PC통신의 열풍으로 사람들은 그때부터 이메일에 더 익숙해져 갔던 것 같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그 시절 치지직... 하는 접속음과 함께
우리들의 편지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던 것 같다.
물론 이후에도 이 친구를 비롯한 중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은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이지 계속 이어져갔다.
남양주 축령산의 한 휴양림에서 1박을 하기도 하고
태진이 결혼을 하고 신혼살림을 차리며 본격적인 생존을 시작하던 그때까지도...
아이가 태어나고 생활은 각박해지고
직장에서는 더 이상 신참이 아닌
승진 경쟁에 뛰어들며
편도 한 시간이 넘는 서울의 출근길이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핑계였다면 핑계였을까.
그렇게 평생 이어질 것 같던 그 친구와의 연락도
시나브로 줄어들더니,
첫 해외 근무로 한국을 떠나기 전인 2009년 7월의 어느 여름
'고단한 서울을 떠나 남양주에서 교회 선도사도 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나 같은 애들이 삐뚤어지는 일이 없도록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전화선 넘어들은 이후
그와의 연락은 마치 카세트테이프가 끊기듯 끊어졌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도 보고 싶을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iiyL996J2M
태진은 중년이 되어도 이어지는 아버지의 동창 모임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까까머리 중학생에서 다시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우리도 이제 성인인가 하면서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과 거나하게 한잔 하고,
그 친구들이 군대 가는 날 밤늦도록 술 한잔을 해주고,
다시 어설픈 사회 초년생끼리 모여
우리도 잘 살아보자 하다 결혼하고,
친구의 아내에게 '제수씨~'라고 부르는 재미도 있다가...
'야 인마 나 애 낳았어'라는 말에 같이 웃고
돌잔치에서부터 부부 모임을 하며
우리도 이렇게 어른이 되었네 하고 웃고
그렇게 살아가고 늙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A4용지에 몇 배나 되는 2절지에
빡빡하게 절절한 사연을 보내던 이도 있었고,
투박한 얼굴에 맞지 않게
'감기 걸리지 않게 이불 꼭 덮고 자라'며 편지를 보내는 친구도 있었으며
'세상에 오직 한 명 밖에 없는 너'라던 친구도 있었다.
'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거실에서 지나간 편지를 다시 읽어보는 것은
그 시절을 추억하며 다시 회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지나간 시간의 기억들을
이제는 보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그래야 새로운 편지를 또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태진은
친구들의 편지를 차곡차곡 포개어
상자각에 담아 다시 책장 밑으로 밀어 넣어본다.
그렇게 우리들의 시간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