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우리들만의 추억들

30년 전, 젊음날의 그들도 여전히 힘들었을까

by Tangpi

출장지에서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태진은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사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지금부터 30년 전,

젊은 날도 그랬을까?

태진은 침대에 누워

00 이의 남은 편지들을 읽어본다.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없는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약 10개월 정도다.

그중에서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면

약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그것도 제대로 다하지 않으니

쉬지 않고 2개월 정도도 공부하지 않고서

전문대에 들어가려고 하는 거다. 나는!


물론 이 정도로 공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내 실력을 잘 안다.

비록 5과목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나 진배없는 내게는

넘기 힘든 산이다.

이번 시험에서 합격한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다만 노력하고 나중에 뒤돌아서 볼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마음이

내 자신에게 만족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참, 내가 있는 곳을 얘기 안 해줬지?

여기는 '광명시 광명7동 중앙건설 중앙하이츠 아파트 공사현장'이다.

뒤에는 산이 있다.

옆에도 산이 있다.

여기 숙소에서 혼자 지낸다.

혼자 있어서 편리하고 좋은 점도 있지만

가끔은 쓸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기타를 가져다 놨다.

기타를 치면서 적막함을 달래기도 한다.

노가다판에서 혼자 자고 먹고 싸고 하니까

생각하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고 깨닫는 것도 많다.

나는 지금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것을 배우지만

결코 그것만을 배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어쩔 때에는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따듯한 집 따듯한 가정으로...

따뜻한 손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잘못된 생각임을 알고 잊어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자꾸 간다.

내게 시키는 사람도 없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오직 스스로 하는 거다.

지금은 "공부 좀 해라"라는 소리가 듣고 싶다.

그 듣기 싫던 소리가 말이다.

(1992.4.22)



내가 취업 나온 지 이제 8개월 정도 돼 가지만

느끼는 것이 참 많다.

학교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

보아도 들어도 지금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거다...

나도 조금은 기성세대로 가는 건가 보지? 솔직히 난 싫다.


태진아!

나중에 우리 나이 들어서 너랑 나랑 같이 살다 죽자.

젊었을 때 서로의 이상을 위해 인생을 살아갔으니

늙어서 그것들을 밤새며 이야기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1992.5.8)


2 920508 사회초년생-같이살다 되지자.jpg



그들의 20대 초반은 힘들었던 것 같다.

태진이나 친구 00이나.


그래, 직장 그것도 사무직도 아닌 공사판에서 일하면서

공부까지 하느라 힘들었겠지.

그가 신체적으로 힘들었다면,

태진도 대학 1학년 시절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대학 1학년, 한없이 힘들었던 시절(1992.4월)


자신도 힘든데 친구를 도와줄 수 있었을까?

실제로 도와줬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태진은

다른 친구의 편지가 섞여있음을 알고

그를 읽어본다.



화학과 2학년 생은 봄학기에 실험을 2개 수강해야 한다. 실험은 수, 금요일에 있는데 낮 1시에 시작해서 밤 9시를 넘기기 일수이다.


더군다나 결과, 예비 report 쓰느라고 화, 목요일에는 밤을 새워야 할 지경이다. 그 외에도 16학점을 더 수강하고 있고, 또 서클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으니 일주일 중에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날은 토요일 밖에 없다.


요즘 여자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서클에 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이 애가 요새 다른 녀석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걱정 마라.

(태진주: 걱정 안 하는데 ㅋ, 놀구있네)


너, 00이, **이 등등...

내 좋은 친구들, 내가 맘 편히 기댈 수 있는 좋은 놈들.

그렇지만 우린 계속 서로 노력해야 한다.

보다 성숙한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자라야 한다....

(199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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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났다.

태진은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한 00의 편지를 받고

**와 연락해서 같이 고민했던 기억을.


1989년, **이와

이미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던 **는 편지에서처럼 자신도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주말에 학교가 있던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온 시간을 쪼개어 00에게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이는 00 이의 수험생활의 큰 도움이 되었고,

내장탕집을 하던 **의 어머니는 식사까지도 챙겨주셨다. 그렇게 00 이는 공부를 이어갔다.


'문룡이'라고 별명이 붙었던 **는 참 똑똑하면서도 마음이 착한 이였다. 친구들이 집에 가면 항상 맛있는 음식을 내주시던 늘 인자하셨던 그의 어머니도 생각났다.


서른 살이 넘어 지방근무하던 태진이 **의 집에 하루 묵을 일이 있었는데, 자식처럼 반갑다면서 손을 잡아주시던 그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태진아!

나 이번에 직장을 그만두기로 오랜 생각 끝에 결정했다.....


친구야!

인생이 캄캄하게 느껴질 때 친구를 생각한다.

나의 길이 너의 길이 다르지만

왠지 나의 길이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나에게 작은 만족감을 준다...

(1992.6.25)

4 920625 사표-외로운길.jpg



내 마음속의 너는

'해맑은 웃음'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보니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또 지금 현재의 네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도 이제 '어른이라는 게 되어가는가 보다'라고 혼자서 되뇌인다.

어른이라는 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내가 자라나는 환경이 그랬고 가정환경도 그랬다.

그 덕분에 외로워하며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도 못하는 그런 놈이었다.....


내가 언젠가 얘기했지?

난 너에게만은 항상 중3이고 싶다고.

아들이 엄마 앞에서 늘 얘기하듯이 말이다.

(19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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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지가 너무나도 고맙다.

내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고마운 글귀였다.

짤막했지만 무엇보다도 긴 인생의 소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장막이 내려지고 새로운 사회가 열리는 것 같더구나.

학원 앞부터 서있는 그 많은 학생들....

항상 멀리서만 보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내가 그 속에 껴서 공부해야 한다니 우습게도 느껴지고

또 한편으로는 짐이 하나 생긴 것처럼도 느껴진다.

(9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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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과 병행하며 공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던 00 이는 직장을 관두고 일생의 도박을 감행한다.

특별히 돈이 나올 데 없던 그에게 짧은 회사생활에서 모은 월급이

그나마 몇 개월 수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실탄이었으리라.


그때가 친구 간의 첫 위기였을 것 같다.

그도 힘들었고 태진도 힘들었으니.

생각해 보면 00 이가 더 힘들었을 텐데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누구라도 붙잡고 대판 싸우고 싶은 기분이다.

지금까진 내 잘난 맛에 살았는데

껍데기를 벗으려는 지금 난 무척 초라해 보인다.


날 어려워하지 마라.

네가 날 무척 좋아하고 아끼기 때문이란 것은 안다.

난 지금 너나 00 이에게 귀싸대기나 한 대 크게 맞고 싶은 기분이다.

얼마 안 있어 또 만나게 될 텐데... 그땐 중학교 때처럼 만나자.


00이 소식 좀 알려다오.

주소가 바뀌었는지,

아니면 편지를 못 받았는지 연락이 없구나.

(199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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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이의 대학 합격 프로젝트는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 10월에 보낸 편지를 보면 아무래도 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도 많은 시절 아니던가.

또 친구를 돕는답시고 여러 충돌도 있었겠지.


그래, 그럼에도 00 이의 소식을 묻는 것을 보면

뭔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이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거두절미하고 네가 보고 싶다.


건국 캠퍼스의 물레방아+꽃사과+복숭아+최류탄+운동장+문룡이+누나들 등은

아직도 아니 평생에까지 추억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드리라 생각된다.

언제나 널 생각해 주고,

널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199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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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아! 눈을 감았다가 다시 한번 떠 봐라.

그리고 골 때리는 00 이가 네 옆에 있다고 느껴라.

그리고, 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어라. 아무 조건 없이 말이다.

중3 때 우리가 그 창피함을 무릅쓰고 '물레방아'타며 돌던 생각을 해봐라.

너는 결코 외롭지 않다.

우리 힘을 내자!

그리고 네 입에서 멀어져 가는 미소와 웃음을 되찾자.

네 진짜 모습을 되찾자.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1992.11.10)


태진이 다녔던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는

'서울시내 평지로 된 최대의 캠퍼스'라는 건국대와 붙어있어

친구들은 점심때건 수업이 끝나서 건 건국대로 많이 놀러 갔었다.


생각해 보니 다른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다닐 동안

그들은 '일감호'같은 너른 호수가 펼쳐진 건국대 캠퍼스에서

농대 실습장의 꽃사과나 복숭아도 따먹고

중학생인 주제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위에 오백 원 주고 돌무더기도 파는 등

수없이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그중 백미는 '물레방아'의 추억이었다.


돈이 없어도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났던 그들은

당시 놀이공원에서 유명했던 '다람쥐통'처럼

어느 날 일감호 주변에 있던 물레방아의 안에 교대로 들어가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을 즐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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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중에 호수 관리 경비원 아저씨가 쫓아와 다 도망가다가

"아, 00 이는 어딨지?" 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올 때까지 계속 돌아가는 물레방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00 이는

물레방아 안에서 토할 때까지 10바퀴를 더 돌고 나와

아저씨에게 뒤지게 맞았다는...ㅎㅎ


그런 한심한 추억들이

요즘같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따지는 세상에서 더 그리운 것은 왜일까?


태진은 마지막 편지 한 장을 넘긴다.



엊그제 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했다.

11: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선 곳인지 몰라도

조금은 자랑스러움과 흥분된 감정으로 입학식을 끝냈다...


뒤에서 격려와 충고로 도와준 너와

수학을 가르쳐주면서 밥도 먹여준 **에게도 너무 고맙고

너희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친구여!

그대를 친구로서 사랑한다!

너와 소주 한잔하고 싶구나!

(19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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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행이다.

붙었었구나.


불확실한 미래와 번잡한 현실에서 고뇌하던

그들의 1992년은

00 이의 대학 합격으로 보상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뿌듯하게 서로를 도와가면서

함께 성취를 기뻐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호텔 방에

셔츠도 벗지 않고 누워있는 태진의 방은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기만 하다.


그랬던 그들의 20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버렸을까?

그리고 어느샌가 멀어져간 걸까?


이제는 편지로만 남은 그들의 추억을 뒤척이며

태진은 남은 편지를 챙겨본다.


https://youtu.be/UOH1Tb5-93M?si=YWj8MSyB6tIXJN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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