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글을 보던 날, 창 밖에는 비가 내렸다
월요일 아침.
뿌옇게 구름이 낀 하늘과 함께 태진은 지방 출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어제 편지 더미에서 추려낸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주었던 그 친구의 편지 뭉치를
가방에서 빼어 하나하나 읽어가기 시작했다.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우리도 먼 훗날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던 1988년,
중3이던 태진은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부유하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같이 있는 것 자체가 항상 즐거웠던 사람들이었고 그러기에 없어도 행복했다.
조00.
홀어머니와, 형, 누나와 매형 그리고 조카까지 여섯 명의 식구가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도 가장 친구들을 웃겼던 00이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친구였다.
그해 8월,
인문계 학교를 갈 수 있는 성적에도 00이는 형편상 실업계인 00 공고로 진학했다.
담임선생님은 00이가 5등으로 합격했고 장학금도 받는다고 했지만, 그는 자기도 인문계 학교를 가고싶다고 털어놓곤 했다.
풍납동에서 00동까지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고단한 현실에서도 00이는 태진과 줄기차게 편지를 주고받았다. 00의 첫 편지를 보니 같은 반이었던 88년에는 아예 집에 전화도 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참! 희소식이 하나 있다.
우리 집이 이번 주 안으로 전화를 놓게 되었다.
기뻐해다오!
(1989.5.4)
태진이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는 서울조차 태풍이나 폭우로 침수되는 지역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00이가 살던 풍납동은 한강변에 물이 넘치면 그대로 피해를 받던 대표적인 저지대로,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 주민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피신하는 모습도 뉴스에 보도되곤 했다.
1층까지도 물이 차버리는 그 풍납동의 지하 단칸방에 살던 00이네 집은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00이는 수재민에게 주는 라면을 받았고, 자신은 불행보다 다행인 것이 훨씬 많은 '행복한 놈'이라고 하던 그런 놈이었다.
편지가 늦게 가서 정말 미안하다.
핑계를 대라면 홍수 때문이라고나 해두고!
우리 집은 불행도 하고 다행도 하게
완전히 폭삭, 몽땅, 깡그리, 싹, 모두, 전부, 다 잠겼다.
다행인 것은 수해 입어서 말이야,
1) 모두 깨끗이 씻었음.
2) 모든 제품을 갈아치웠음(아고 힘들어)
3) 쌀, 연탄, 라면(3박스) 나왔음(얏호! 이젠 라면 걱정 없다)
4) 2일이나 학교 안 갔음
5) 야외용 가스버너 나왔음(말은 들어봤나 브루스타아!)
6)가시나 하나 건졌음(진짜로 물에 빠진 걸)
그리고 불행은
1) 그 탓에 척추에서 바이러스가 피부로 나와서 물집이 잡혀서 지금도 병원에 갔다 와서 약 먹고 약바름
2) 바이러스 때문에 운동을 못함
그래도 불행보단 다행인 것이 훨씬 많다.
역시 난 행복한 놈이야.
수해 때 겪었던 일을 쓴다면 편지지가 모자라서 못쓰니
나중에 만나서 간단히 얘기해 주마.
오늘 또, 네 편지를 보며 웃기도 하고 진지해지기도 하며 또한 때로는 그리워하면서 네 편지를 읽었다.
거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의 대화가
글들로 표현되어 있었다.
네 녀석도 가끔은 내 편지를 읽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 믿는다.
(1989.9.20)
00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거친 친구들이 많았다.
"야, 우리는 실습시간에 주변에 것 들면 다 흉기야...
각목, 망치, 스패너, 쇠파이프 ㅎㅎㅎ"
여전히 웃기면서도 쓴웃음을 짓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중학교 때와 달라진 환경에 분명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태진에게 편지로 힘을 주곤 했었다.
세상에서 찾을 수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나의 영원한 친구 태진이에게
...
이 녀석이 날 위해서 이런 만화를 그렸구나 하면
왠지 뿌듯하고 이야깃거리는 항상 새롭다.
... 너의 어려운 사정과 생활 가히 알만하다. 부디 2년 간만 참고 견뎌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네가 바라던 곳에 우뚝 섰을 때 날 버리지 마라.
난 그런 생각도 가끔 한다..
내가 좀 바보 같지.
그때 우리 둘이서 마음껏 웃자꾸나.
(1990.5.9)
체구가 작아 초반에 괴롭힘을 종종 당했다던 00이는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운동을 시작했는데
적성에도 맞았는지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운동으로 풀면서
지역 본선에도 나갈 만큼 체격도 우람해지고
거친 학교생활에서 살아남을 만큼 변해갔다.
"지난주에 어떤 놈이 점심시간 전에 내 도시락 반찬 뺏어먹으려고 훔쳐갔다가 김치밖에 없다고 놀리지 뭐냐?
그래서 내가 교실 앞으로 나가서 교탁을 번쩍 들어서 그놈을 찍어버렸어.
그다음부턴 애들이 나 안 건드린다 ㅎㅎ"
그러나 이후 중3 친구들이 만났을 때 00이는 그맘때 남자아이들이 그러듯이
자신이 학교에서 힘깨나 쓴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조금씩 변해갔고
오토바이도 타기 시작했다.
만남을 이어가던 중학교 친구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에 조금씩 위축되어 갔다.
어찌 보면 00이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잘못된 방법으로 분출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경계선에 있었다.
어느 날 태진은 그에게
친구들에게 힘자랑하려면 니 학교에 가서나 하지 친구들 앞에서 깡패들처럼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00가 힘을 썼다면 태진은 한 주먹에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겉모습만 예전과 달라졌던 00이는
자신은 친구들에게 깡패같이 되고 싶지 않고 만날 때만큼은 예전처럼 만나고 싶고 미안하다면서
그 두꺼운 팔뚝에 어울리지 않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편지 말미에 친구의 이름을 수없이 쓰고 시 같은 것도 써서 보냈었던
우락부락한 얼굴에 우람한 체격이었던 00이.
지금 생각해 보니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는 환경이었지만
맘속으로는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00이의 절규였던 것 같다.
난 너 같은 친구가 있어서 언제나 행복하다.
그리고 절대로 남한테 꿀릴 일이 없다.
나에게는 목숨까지도 바꿀 그런 친구가 있노라고...
난 항상 내 목숨을 각오한다.
태진아!
그리고 날 부를 때 조 00이라 부르지 마라.
앞에 '조'가 붙으면 왠지 네가 날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말이다.
(1990.8.23)
하여튼 지금 내게 온 고민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올 때 떠오르는 것이 너의 그 웃는 얼굴이었다.
너의 그 웃는 얼굴.
니 얼굴말이야!
(1990.11.13)
우리가 졸업하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이 지났구나.
그런데도 이내 마음은 그렇게 오래된 거 같지 않다.
안 그러냐?
네놈은 어떠냐?
박태진,
조00,
박태진,
박태진,
박태진,
박태진,
박태진,
박태진,
박태진
(1991.4.3)
너를 생각할 때마다
그 지나온 추억들이 허공에서 미소 지을 때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한 순간에 짧은 우정이
지날수록 두터워지는 쌓이는 낙엽처럼
추억의 얼굴을 담고 아른거리며 눈앞을 스쳐갈 때
나는 그것이 우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너라는 사람을 알았을 때 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너라는 사람과 같이 걸을 때
존재의 의미로밖에 지나지 않았았다.
그러나 너라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지낼 때
그 의미는 마음의 울렁거림과 함께 존재했다.
이제 다시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됨에 따라
심장의 고동은 커지고 벌어지는 입술사이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바로 너라는 걸....
그게 바로 너라는 걸....
(1991.4.26)
태진이 고3의 가을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입시의 막바지를 달리던 1991년의 늦가을,
00이는 여느 실업계 학생들처럼 실습을 나갔다.
이제 스무 살도 안된 솜털이 보송보송한 고등학생에게 건설현장은 그가 처음 맞이한 사회생활이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태진에 비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그의 편지에는 유머가 묻어 나온다.
오늘이 벌서 11월 하고도 14일이다.
네놈 시험일자가 약 30일 남짓 남았다고 예상된다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형님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대인관계 등 조금씩 눈을 떠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눈을 뜬다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점점 사회에 물들어 간다는 것이기도 하지.
어떨 때는 지금 이대로 나이를 안 먹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간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식당이랍시고 비닐하우스로 얼렁뚱땅 만든 식당이 있는데
노가다에서는 함바라고 부른다.
그 함바 집은 벌레들이 나오기로 자자한데 오늘은 좀 특별한 게 나왔다.
사실 어제도 내 국에서
파리 두 마리가 쌍쌍파티를 하다 죽었는지 같이 죽어있었다.
파리가 우러난 국이라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오늘은 별의별 생각이 다 나서 그동안 네놈에게 온 편지를 읽으며
때로는 심각하고 때로는 웃기는 얘기를 보면서
기분을 달래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특히 4절지에 보내온 편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편지를 읽으면 네놈이 꼭 내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이 고달프거나 힘들 때 언제나 휴식처럼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1991.11.14)
하지만, 00이의 첫 사회생활은 두 달 만에 마무리됐다.
만 스무살도 안된 그가 매일 마주쳐야했던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
무엇보다 출퇴근 길에 수없이 보았던 동년배들을 보면서
00이는 수많은 생각을 했었으리라.
그의 편지에서 고단함이 묻어 나온다.
11월 1일부터 안산 시화공단에 있는 대우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일을 했다가
12월 24일부로 퇴사하였다....
자취를 하면서 2달간 살며 느낀 것이 참으로 많았다.
친구들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등등
많은 걸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취방에서 6시에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여
9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10시 30분쯤 되었다.
3개월간 현장실습이랍시고 현장근무를 했다....
(1991.12.25)
그리고 다시 졸업과 취직을 이어나가던 00이는
태진이 대학을 입학하던 1992년 3월 말 절박한 심정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그의 글에는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태진아!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가 어려운 고비에 처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네가 날 도와줘야겠다.
난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전문대'다.
고졸만으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도 않을뿐더러 난 가고 싶다.
아니! 가야 한다. 가고야 말겠다.
친구로서 부탁한다. 따끔한 질책보다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다.
날 도와다오! 도와줄 줄 믿는다.
문제는 국, 영, 수, 국사, 윤리다.
나는 이제 그것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제일 약한 것이 '수학'이다.
나는 군대를 갔다 와서라도 꼭 '전문대'는 나오고 말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을 관두지는 않는다.
지금 다니는 일은 일대로 다니면서 공부할 거다.
3수, 4수 아니 5수라도 해서 간다.
내가 특별히 물어볼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것 같다.
이해해 줘라! 물론 어려운 일이란 걸 알지만 열심히 해볼란다.
가족들, 친구들 몰래 할 거다.
그래서 더더욱이 네게 부탁하는 일이니
제발 가벼이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2.3.29)
그때 태진이 친구들로부터 주로 받았던 편지들은
대학 신입생들의 자유와 설렘으로 가득한 편지들이었는데
그 편지를 받고 엄청 당황했었던 기억이 들었다.
더구나 기숙사 생활을 하던 태진은 자유로이 나갈 수도 없었던 시절.
'그때 어떻게 했었지...?'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보슬보슬 비는 내리고
어느덧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서둘러 편지 뭉치를 가방에 넣은 태진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하다.
'그래서 얘 하고 연락이 끊겼었나....'
https://youtu.be/5Qs31SutNAE?si=lBaKIR4pLva5u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