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옌셰핑주의 비싱쇠(Visingsö) - 스웨덴 왕국의 시작점
* Visingsö 중부 마을 전경(2020.7월)
스웨덴을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방법 중 국토를 3개 지역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지금도 전체 인구의 90% 정도가 몰려있는 지역을 '예타랜드(Götaland)'라고 한다. 현재 행정구역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영남지방'이나 '호남지방'이라고 하는 개념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지역은 옌셰핑(Jönköping), 할란드(Halland), 크노르베리(Kronoberg), 칼마르(Kalmar) 등 10개 지역으로 구성되며, 일부는 과거 덴마크나 노르웨이 땅이기도 했다. 배스트라예타랜드(Västra Götaland) 주나 외스테르예타랜드(Östergötland) 주 등 현재 일부 지역에 그 이름이 남아있기는 한데, 예를 들면 예테보리가 있는 배스트라예타랜드는 '서쪽(Västra) 예타랜드'라는 뜻이고, 외스테르예타랜드주는 '동쪽(Öster) 예타랜드'라는 뜻이다. 과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신라와 백제와 같이 이 두 지역도 경쟁 관계였다고 하며 중세 후기부터 스웨덴의 일부로 인식되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럼 '예타랜드(Götaland)'란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 학설 중 하나에 따르면, 스웨덴 남부에서 활동하다 6세기 경 스톡홀름 주변인 맬라렌(Mälaren) 호수 출신인 '스베아(Svear, Swede-현재도 영어로 스웨덴인을 의미)족'에게 정복된 민족인 '기트(Geat)족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트'는 영어식 발음으로 고대 영문학에서 종종 언급되었으며, 스웨덴에서는 '예타르(Götar)'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예테(Göte)'+'borg(성(castle)의 뜻)'이 합쳐진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Göteborg)'나 스웨덴을 최대 운하인 '예타 운하(Göta kanal)'에서 보듯이 기트족의 명칭에서 유래된 이름들이 아직도 남겨져 있다.
"아, 그럼 스웨덴 동남부의 가장 큰 섬인 '고틀란드(Gotland)'하고도 관련이 있는 건가?"
"아.. 달라. 역사를 좀 더 올라가서, 일부 학설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기원한 동게르만족의 일파로 최초의 거주지가 동부 스웨덴 지역이었던 '고트족(라틴어로는 Gothi, 스웨덴어로는 Goter, 영어로는 Goths)'이라고 있다고 해. 이들 중 스칸디나비아에 남은 일파는 기트족으로 불렸고, 1세기경 일부는 바다 건너 발트 해안 등으로 남하해 로마 제국의 영토를 침략하고 일부를 점령하기에 이르러 로마 제국의 붕괴와 뒤따른 중세 시대의 도래를 촉발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
우리가 왜 '고딕(Gothic) 양식'이라고 하는 말도 이 고트족에서 나온 말이야. 르네상스 시대 이전 북유럽 성당 양식을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세련되지 못했던 고트족에 빗대어 고딕 양식이라 했거든. 하여간, 스웨덴 동남부의 '고틀란드(Gotland)'와 '예타랜드(Götaland)'는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고 봐야 해."
"하여간, 스웨덴의 고대 역사를 보다 보니 지금은 남쪽으로 보이는 옌셰핑(Jönköping) 주가 중심지역으로 보이긴 하네... '예타랜드(Götaland)'를 기준으로 보니 거의 중심 지역인데?"
"그래. 사실 지금 국토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중북부 지역은 아주 최근에나 관심이 있었지 스웨덴 역사의 출발과 중심은 이 '예타랜드(Götaland)'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거든. 특히, 이 지역의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베테른(vättern)' 호수에 있는 비싱쇠(Visingsö-스웨덴어에서 'ö'는 '섬'이란 뜻)가 그 출발점이었지."
"그래? 저 섬이? 한 번 가볼까?"
TS 팀은 이 섬으로 들어가는 왕복페리를 타고 그랜나(Gränna)항을 출발했다.
출발한 지 10분 됐을까? 그랜나(Gränna)항에서 6km 떨어진 비싱쇠(Visingsö)항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섬 중에 하나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았다.
비싱쇠 때문에 베테른 호수의 역사는 지역만의 역사가 아닌 스웨덴 전체의 역사라고 한다.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비싱쇠는 12세기 무렵 스웨덴의 왕국 형성 시기에 중심지역이었으며 최초의 왕궁도 세워진 지역이다. '스베르케르' 왕조로 불리는 이 시대 이 섬은 배스트라예타랜드와 외스테르예타랜드의 동서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호수로 둘러싸인 사실상 요새였다. 또한 위 두 예타랜드 지역과 남쪽의 스몰란드(småland) 지역은 물론 덴마크와의 무역을 연결하는 상업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비싱쇠의 남단에는 12세기 중반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왕궁터가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된 성벽이 있다.
이 섬은 13세기 중반까지 스웨덴 왕국의 중심지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핀란드 정벌 등 동쪽으로 스웨덴의 영토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1250년경 세워진 스톡홀름에게 점차 중심 역할을 빼앗겨갔으며, 14세기 초 완전히 수도 기능을 잃게 되었다. 이후로는 브라헤(Brahe) 가문 등 귀족들의 성이나 교회도 있었지만, 이후 1715~1718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된 러시아 군인들을 수용한 교도소로도 역할을 했으며 당시 수용된 포로는 1,500~1,8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성터가 바로 그것이다.
"근데, 섬이 의외로 작지 않네. 내부에는 평야도 넓은데?"
"길이 14km와 폭 3km의 이 섬에는 아직도 7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대."
"산림도 우거져서 드라이브길이 아주 죽여! "
"그래.. 비싱쇠 섬이 스웨덴의 출발점인지 처음 알았네."
"예나 지금이나 이런 큰 호수가 있다는 건 참 커다란 행운이야. 물 부족 해소는 물론, 요즘 더워서들 난리라는데 이런 호수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그럼 이 비싱쇠를 포함하고 있는 베테른(vättern) 호수에 대해서 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제주도보다 크다는데? 이름 자체도 스웨덴어로 물(vatten)에서 나왔대잖아!"
옌셰핑주 포함 4개 주에 둘러싸인 큰 호수(스웨덴에서 2번째이자 유럽에서 6번째), '베테른(vättern)'은 스웨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