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를 키우는 아이의 질문

by 실루엣

5년여 전, 장래 희망에 대한 글 쓰는 숙제를 하면서 막내아이가 내게 물었다.


난 커서 화가가 될 거야.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 엄마가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난 아이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육아를 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공부하던 심리학도 중단된 채 아이 셋을 키우는데 몰두하던 그 당시,

아이의 이 천진난만한 질문은 참 신선하고 고마웠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아무도 '나의 성장'에 대해 관심 있어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외로워하던 찰나, 아이가 엄마의 성장과 미래에 대해 물어봐준 것이었다.


글쎄, 엄마는 나중에 더 커서 뭐가 되면 좋을까?

생각해 봐야겠다.


고맙다고 웃고 넘겼지만, 아이의 그 질문 덕분에,

나는 나의 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과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요?”


예전 심리상담센터에서 레지던트로 일할 때였는데,
상담 사례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을 때, 교수님께서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으셨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 같나요?”


잠시 망설이다 내가 대답했다.
“존중과 공감이요.”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다시 물으셨다.
“그건 어떻게 얻을 수 있죠?”

“정확하고 깊은 이해를 통해서요.”


내 대답을 들으시고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어 물으셨다.
“그럼, 서로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는 뭘 해야 가능하죠?”


“대화요.”


그제야 교수님이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네, 바로 그거예요. 대화하세요.”


그때 알았다.

대화는 단순한 말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 순간의 울림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존재를 만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도 인간의 진심을 알고 싶어서였고,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것도 진실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갈증에서였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글쓰기 또한 독자와 나누는 가장 진솔한 대화라는 것을.


내 안에서 일어난 말이 문장을 타고 누군가에게 닿을 때,

우리는 서로의 존재가 변화하는 공명을 경험한다.


결국 우리가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는 ‘나의 삶’ 뿐이고,

그래서 내가 걸어온 길, 공부한 것들, 깨달은 것들을 꺼내어 대화하는 글을 써보기로 한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영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잠시 미소 짓게 하는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누군가의 행복에 잠시나마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니.


나는 이제 웃으며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커서 행복의 공명을 꿈꾸는 심리학자, 그리고 글로 공명을 일으키는 작가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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