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몸이 기억하는 것들

아직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은 몸에 저장된다

by 실루엣


아니, 그런데 요가는 스트레칭 아니야?

왜 그렇게 자꾸 다리를 찢고

극한 자세인 이상한 포즈를 만드는거야?


내가 요가를 하다 못해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했더니

친구가 정말 궁금하다며 물었다.


다리 찢고, 뒤로 활처럼 휘고, 머리로 서고, 온몸을 비트는 것들 말이야, 대체 그런 것들은 왜 하는 거야?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지 싶어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건 단순히 몸을 늘리거나 구부리는 게 아니야.

물론 인간의 한계에 도달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 몸 구석구석에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숨어 있고, 그 에너지들까지 꺼내 순환시키는 목적이 더 클걸?


실제 요가에서는 깊은 슬픔과 트라우마적 감정이

우리 척추안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련자들이 등을 깊게 젖히는 후굴(後屈)을 할 때,
숨겨두었던 과거의 강렬한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유 없는 눈물과 슬픔이 봉인해제되는 것이다.


골반은 또 다른 감정의 창고다.
말하지 못한 분노, 끝내 풀지 못한 두려움,

억눌린 욕망이 이곳에 웅크리고 있다.


특히 장요근은 ‘도망치거나 싸우라’는 신호를 받는 즉시 긴장하는 근육이다. 이 근육이 굳어 있다는 건, 내 몸이 여전히 과거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관절을 여는 동작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단순히 근육이 늘어난 탓이 아니라,

오래된 감정이 풀려나는 과정이다.



심리학에도 이런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욕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할 수 없어 참던 여자가,

결국 목 근육이 굳어 말을 할 수 없게 된 사례 같은 것들.

또 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그리움에 잠식되었던 한 어머니는,

시신경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시력을 잃어버렸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신경성 위염이나 장염을 일으키기도 하며, 심한 경우 자율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학적으로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아도,

감정의 압박이 장기를 통해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심리적 고통이 몸의 감각 기관을 차단해버린 전형적인 사례들을 심리학에서는 ‘전환장애(Conversion Disorder)‘라고 부른다.


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팔이나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거나,
간질처럼 보이지만 뇌파에는 이상이 없는 발작을 겪기도 한다. 신경학적 손상은 없는데도 걷지 못하거나, 손발의 감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환 장애는,

감정이 제대로 소화되거나 처리되지 못했을 때,

그 힘이 신체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마음의 언어가 사라졌을 때 몸이 대신 그 말을 하는 것이다.


감정과 근육의 긴장은 서로 얽혀 있다.

심리치료사 알렉산더 로웬은

“억눌린 감정은 근육의 긴장으로 남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의 굽은 어깨와 뻣뻣한 목을 보며 알게 됐다.
말하지 못한 분노, 끝내 삼켜버린 눈물들이

내 몸에 끈질기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트라우마 권위자 베셀 반 데어 콜크도

『The Body Keeps the Score —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 제목으로 같은 말을 했다.

머리로는 “잊었다”고 말해도, 몸은 결코 잊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막히고, 이유 없이 심장이 뛰는 순간들. 그건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증언이었다.


신경학자 스티븐 포지스의 ‘폴리베이걸 이론’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율신경계는 위협을 경험하면 그 패턴을 몸에 각인시킨다.
그래서 지금은 안전한데도, 손끝이 차갑게 얼고,

숨이 짧아지고, 가슴이 쪼여오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못한 과거가 내 몸 어딘가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부른다.

생각과 감정은 몸과 분리된 게 아니라,

몸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몸이 굳으면 마음도 굳고, 몸이 열리면 마음도 열린다.


나는 요가를 하며 그 사실을 체감한다.
다리를 찢는 동작 속에서 닫아걸었던 공간이 열린다.
뒤로 활처럼 휘는 자세 속에서

굳게 닫힌 가슴이 세상 쪽으로 열린다.
몸이 열리면, 마음도 따라 열린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요가는 결국 몸으로 하는 심리치료야.
몸이 부드럽게 풀리면, 마음도 풀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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