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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의숲 Nov 23. 2023

고부갈등에 관하여

-경계의 침범, 그 치열한 싸움


우리나라는 유난히 고부갈등이 많은 편이다. '시'자만 들어도 죽겠다는 며느리들이 많고, 실제로 그럴만한 이야기들도 많다. 물론 시어머니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봐도 며느리가 별로 예뻐 보이지 않을만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 고부갈등 문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부부갈등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번은 깊게 들여다봐야할 문제이다. 우리나라에 왜 이런 고부갈등 문제가 유독 많을까. 또는, 우리집은 왜 이런 문제를 겪고 있을까. 


우리나라 시어머니들이 유난히 유별나서들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며느리들이 유독 못되서일까? 


나는 최근 일어나는 고부갈등, 그 문제의 본질이 '서로의 경계가 불분명한데서 오는 갈등' 이라고 본다. 


경계의 침범, 그 미묘하지만 불편한 불쾌감.


많은 경우, 거기서부터 고부갈등이 시작된다.


경계를 침범당하면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이 '화' 다. 왜 화가 나는지는 잘 모르지만 짜증나고 화가 난다면 나의 경계를 누군가 밟고 있거나 침범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당신이 참을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가 명확하고 그 경계와 거리를 지켜야 사람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사실. 이 경계가 확고하지 않고 무너지게 되면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긴다. 


경계를 침범당하면 화가 난다


결혼을 하면서 기존 원가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울타리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독립' 이자 새로운 경계점을 만드는 순간이 된다. 물리적 독립은 정신적인 독립을 수반하여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근대와 현대 관념에서부터 서로의 경계 긋기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결혼은 했으나 물리적으로 같이 사는 경우 당연히 경계를 확고히 하기 어렵고, 서로의 역할 설정과 거리찾기에 더 많은 힘이 들게 된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은, 나의 경계를 어느정도 침범당하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보다 많은 것을 감내하고 참아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의 고부갈등 문제는 분가해 엄연히 두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 같은데, 이는 서로의 물리적 경계 설정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오늘날 많은 며느리들은 '시집 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한다'. 근대처럼 내 성을 버리고 그 집의 여자로 들어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사랑하는 한 남자와 일생을 함께하는 것이다. 


반면 많은 시어머니들은 '시집을 갔다'. 당신들도 끊임없이 침범을 당했던 삶을 살았던 만큼 그것이 당연하다 여긴다. 내 아들은 내가 키워서 독립시킨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내 휘하에 들어오는 것이다. 


내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 나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면 화가 난다. 


서로의 경계설정이 충분히 합의되고 확고하지 않을 경우, 보통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독립했다 생각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들은 끊임없이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침범을 행한다. 관심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간섭이다. 그녀들의 부엌에 대해서, 그녀들의 양육방식에 대해서, 돈 문제, 그녀들의 남편을 먹이는 밥상에까지 관여하고 참여하고 싶어하고, 혹여나 내 방법과 다른 것은 가르쳐서 바꾸어놓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며느리들은 슬슬 '화'가 난다. 그리고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도록 내버려두는 남편에게도 '화'가 난다. 시어머니와 직접적으로 싸우기 힘든 상황에서 그 감정은 남편과의 부부갈등으로 번지기 쉽다. 내 바운더리를 지켜주지 못한데서 오는 '화'와 괘씸죄까지 얹어서. 


여기서 이 문제가 경계설정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단순히 자신의 아내 또는 어머니를 이해심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문제라 '여자들이란'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거나, 그녀들의 문제로 넘겨놓고 방관함으로써 회피하고자 한다. 심지어는 어머니 또는 아내의 편을 들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경계설정의 의미를 모르는 남자는 어리둥절 왜 그녀들이 싸우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문제가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이 지점이다. 이 경계를 확고히 해야 하는 것은 원가정과 새로운 가정 사이의 경계를 밟고 있는 '남자' 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머님이랑 나랑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꺼야? 


여자들의 이 질문이 유치해 보이겠다 생각하겠지만, 심오한 질문을 담고 있다. 또한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선택하여 답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어머님(시어머니) 은 자신이 부여받은 운명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여받은 관계다. 반면 아내는 '선택'에 의한 관계다. 자신이 선택했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관계다. 이 유치한 질문을 하는 여자는 남자에게 '책임'에 관한 질문 (결혼에서 필수적인) 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내 아내를 먼저 구해야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구하시겠지


아버지가 건장히 살아계신 경우라도 이런 답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는 우리나라의 많은 아들들이 그 어미들의 삶과 사랑을 떠받들어 책임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부가 새로운 가정의 경계를 세우면서 이 지점에 대해 명확히 합의하지 않으면, 잡음이 계속 생기기 쉽다. 이 과정이 참 쉽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여자가 평생 연애해야 하는 이유,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야 하는 이유는 .. 살아서 삶을 만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하나 자식을 건강하게 독립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늙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 죽을때까지 같이 살고 싶고 가장 멋진 남자가 자신의 아들이 되어서는 정말 곤란하다. 불편한 말이겠지만, 남편이 아닌 자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인 엄마들이 며느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로 거듭날 확률이 참 너무나도 높다.


(물론, 이는 아주 보편화된 예를 단순화시킨 예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바뀐 경우도 종종 있고,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또는 올케 , 친정부모 등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경계설정은 '선긋기' 라서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명확히 알고 지켜내는 것은, 보다 안전하게 마음껏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필수 조건이 된다. 경계가 무너진 상태 또는 그 지점조차 자각하지 못한채 베푸는 인정 또는 자비심으로 잘못 포장된 허락은 사랑 또는 자비가 아니라 '착취'다. 이 점에 대해서 이해를 한다면 좀 더 풀기 쉬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 '고부갈등'이다. (결혼 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보길 정말 권한다. 결혼 전에 명확히 세워야 고생을 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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