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연결고리(Weak Ties)의 강한 힘
약한 연결고리(Weak Ties)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 또는 베스트 프렌드(이런 관계를 강한 연결고리라고 합니다)처럼 완전하게 가깝지는 않지만 친구, 지인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적당히 알고 지내는 관계를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약한 연결고리인 사람들은 나와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고, 시간이 흘러 어색하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어내곤 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런 약한 연결고리 관계의 연이 끊겨 아쉬워하는 경우를 꽤 많이 접했었습니다. 억지로 끊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하지만, 저는 반대로 이런 약한 연결고리 관계를 더 소중히 여깁니다.
약한 연결고리가 가진 강한 힘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약한 연결고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되는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보통 가족이나 정말 친한 친구들, 친한 동료 대부분은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성격, 생각 등이 비슷합니다. 친해질 수밖에 없는 좋은 환경이죠.
하지만, 약한 연결고리인 사람들은 저와 정반대 거나,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약 비슷한 시각이었다면 강한 연결고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들은 다른 시각으로 제가 편협한 생각을 하거나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히려 이런 점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소방관으로 일하는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불길 속 생명의 소중함과 누군가 희생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고,
요리 컨설팅을 하는 친구를 만나면, 먹는 즐거움을 위해 재료부터 완성까지 부단히도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직장인의 특성상 주로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내가 필요한 사람의 전부라 생각하며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전부인 듯 생각하게 되는 시기가 옵니다.
이렇게 제가 저의 본업에 몰두한 나머지 세상의 다른 분야에 신경 쓰지 못할 때, 한 번씩 깨우쳐주는 멘토가 약한 연결고리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뒤로 약한 연결고리가 소중한 인연이고 서로가 서로를 멘토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단 다른 업계뿐만 아니라 동종업계 약한 고리 관계의 사람들도 같은 맥락의 영감을 주었습니다.
같은 IT 직종이지만 산업군이 서로 다른 몇 개(금융, 게임, IT서비스, 제조 등)의 무리에 속해 있는데, 만날 때 듣는 얘기는 서로 너무 다른 환경, 다른 스킬을 사용하기에 제 견문이 넓어지는 영감을 얻곤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눈과 귀가 열리는 경험을 선사해주곤 합니다.
약한 연결고리를 계속 유지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강한 연결고리인 사람은 저와 상황이 비슷하기에
큰 고민이 생겼을 때, 제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도움 정도만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한 연결고리인 사람들은 제가 예상치 못한 도움과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제가 이직을 고민할 때 강한 연결고리인 사람들은 단지 저를 믿는다는 응원이었지만,
약한 연결고리인 지인들에게 얘기를 하면 생각지 못한 관련 산업군의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거나,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반대의 입장에서 저 역시 별로 친하지 않은 분들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말해주며, 약한 고리인 사람과 또 다른 약한 고리인 사람을 연결시켜 준 적이 있었습니다.
강한 연결고리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사회생활에는 수많은 시련이 있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약한 연결고리인 주변인들이 더 큰 도움을 줄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20~30대 직장인 대부분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은 없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평생 한다는 보장이 없다.
예전처럼 평생 한 가지 일만 한다는 건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세상이 급격히 변하는 데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약한 연결고리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산업군을 바꾸게 된다면 도움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저만 해도 은행의 IT 업무를 하다 보니 금융과 IT분야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금융산업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적절하게 도와줄 수 있는 배경지식/능력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본인 분야와 연관된 부분이 있을 거고, 약한 연결고리인 사람이 있다면 전직 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이렇게 세상이 바뀔 때 채용 트렌드도 같이 바뀌고 있습니다. 수시채용/추천제도 가 넘쳐나는 시대로 바뀐 것이지요.
이미 미국은 몇 년 전부터 이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고, 약한 연결로 사람을 채용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미국에서 인턴 하던 시절 채용된 대부분의 직원들은 누군가와 약한 연결고리로 연결되어 인터뷰를 보고 들어온 케이스였습니다.
예전처럼 공고를 통한 게 아니라, 지인의 지인 이런 형태로 타고 올라가서 채용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또는 링크드인 이웃을 많이 활용하더라고요.)
한 번은 궁금해서 왜 그런지 물어보았는데 믿을(?) 수 있어서 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보다 어느 정도 실력과 평판을 확인할 수 있고, 회사가 인력을 뽑는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공채의 경우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고, 효율이 떨어집니다.)
이렇게 수시채용 / 추천제도에서는 약한 연결고리 관계가 빛을 바랍니다.
지인의 지인은 먼 관계지만, 수시채용에 있어서는 쌩판 모르는 남보다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 위치로 변하게 해 줍니다.
코로나로 인한 공채의 종말에 따라 약한 연결고리가 확 부각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제 약한 연결을 더 중요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약한 연결의 강한 힘은 한 번쯤 고민해 볼 말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껏 올라오기까지 강한 연결만 가지고 올라 온건 아닐 테니까요.
천천히 생각해보니 약한 연결고리 관계에서 괜찮은 도움을 얻었던 기억을 많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저는 약한 연결고리의 힘에 매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한 연결고리를 무리하게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냥 저와 인연이 생긴 관계에 진심으로 대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뿐이지요.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로 인해 약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인터넷/온라인 소통도 좋지만 가끔씩은 만나서 소통을 해야 약한 연결고리에 진심을 다하기에 조금 아쉬운 상황입니다만,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하기에, 아쉬운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약한 연결고리는 약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