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할래, 커리어 변경할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두 번째 책 <아마존의 팀장 수업>을 출간하고 업무에 집중하느라 글을 자주 적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바쁜 게 끝나고 다음 주면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갑니다 (평양냉면 먹을 생각에 설레네요). 오늘 적을 내용은 아마존에서 근무를 하며 가장 신기했던 문화인 커리어 플래닝에 대해서 적어볼까 합니다. 꿈을 설계한다는 말은 뭔가 낭만적이면서도 거창한 느낌이 납니다. 누구나 꿈꾸는 커리어가 있을 것이고 이를 설계해 이뤄나가는 것만큼 직장인에게 성취감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커리어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오늘은 제가 어떻게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고 어떤 조언을 해줬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다뤄볼까 합니다.
아마존 리더십 원칙 중 Hire and develop the best라는 원칙이 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리더는 모든 승진 평가 혹은 채용을 할 때 높은 기준을 갖는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리더들은 능력이 뛰어난 자들을 알아보고 그들이 더 뛰어난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코칭을 하는 일에 진지하게 임한다. 이러한 원칙을 잘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매니저와 함께하는 커리어 플랜 미팅이다. 정해진 미팅의 수는 없지만 필요에 따라 매월 혹은 분기마다 본인의 매니저와 만나 커리어 상담을 한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커리어 상담을 한다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학교를 다닐 때 커리어 코치 혹은 커리어 센터가 있어서 관련 상담을 나눈 적은 있지만, 매니저에게 커리어 상담을 한다니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미팅을 하기 전 팀원은 본인의 커리어 목표를 적는다. 단순히 언제 승진하고 싶다 라는 글이 아닌 본인이 꿈꿔왔던 커리어에 대해 솔직하게 적는다.
커리어 플랜에는 정답이 없다. 사람마다 다른 계획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떤 누군가는 빠른 승진을 원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어떤 누군가는 창업을 계획하고 있을 수 있다. 만약 창업이 목표라면 빠른 승진을 하는 것보다 부서별 업무를 파악하고 경험을 쌓는 게 더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이렇게 커리어 플랜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니저는 커리어 상담사가 되어 팀원의 목표에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첫 커리어 상담을 받을 당시 나는 3년 뒤 내 모습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 목표는 좋은 제품들을 개발 및 론칭하고 복잡한 프로젝트들을 맡아 해내는 아마존에서 인정하는 프로덕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매니저는 단기 목표가 명확해서 좋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매니저는 "네가 이루고자 하는 장기적인 꿈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가 있어. 누군가는 회사의 사장이 되기를 원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항상 꿈꿔왔던 다른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네 미래의 목표가 꼭 아마존에서 이루는 게 아니더라도 괜찮아. 하지만 적어도 아마존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는 그 목표에 맞게 너를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며 의견을 전했다. 굉장히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회사에서의 커리어란 일을 잘하고 좋은 성과를 내면 승진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 역시 본인의 커리어를 발판 삼을 수 있는 곳이라며, 경험하고 싶은 것이나 배울 점에 대해서 고민해보라는 것은 내 커리어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
실제로 주변 동료들만 해도 정말 다양한 커리어 플랜을 갖고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떤 누군가는 본인이 왜 승진해야 하는지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이 승진하기 위해서 매니저와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떠한 피드백을 받았는지 말해줬다. 흔히 영어로 커리어 사다리를 오른다고 표현을 하는데 이처럼 한 조직 내에서 빠르게 승진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내 주변 MBA 출신들은 승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반대로 다른 동료는 현재 본인의 플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했다. 이제 막 쌍둥이 아빠가 된 동료는 승진을 조금 늦추더라도 육아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말 필요한 정도만큼의 업무를 하고 그 외 시간은 전부 가족과 함께 보냈다. 반대로 다른 친구는 창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아마존을 입사한 이유도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배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왔다고 한다. 지금 우리 팀으로 오게 된 이유도 개발자들과 협업하면서 새로운 제품들을 론칭하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다음에는 승진이 아닌 다른 부서 (예를 들어 마케팅 부서)를 경험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커리어 플래닝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아마존 리더십 원칙이 직장생활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실제로 본인이 더 뛰어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리더로 만드는 일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팀원을 코칭하여 리더로 만드는 일은 아마존 매니저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업무다. 본인 담당 업무에 할애하는 시간만큼 매니저들은 팀원들을 코칭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두 번째로 자유로운 사내 로테이션 문화가 커리어 플래닝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본인이 원한다면 (그리고 해당 부서에서도 동의를 한다면) 아마조니언들은 다양한 국가 간 이동 혹은 부서 간 이동을 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니저들은 본인 팀원과 평생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누군가는 굳이 노력을 해서 이 사람을 키워놓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느냐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리더십 원칙을 굳게 믿는 아마조니언들은 내가 열심히 누군가를 키워놓은 것만큼 다음 우리 부서에 오는 아마조니언 역시 훌륭한 코칭을 받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이는 꽤나 잘 돌아가는 선순환의 모습이다.
커리어 플래닝의 예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먼저 장기적인 목표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나는 10년 내 한국에 있는 인터넷 회사 사장이 될 것이다. 혹은 나는 10년 내 아마존 코리아의 대표가 될 것이다 라는 목표를 적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목표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나는 현재 수석 제품 담당자로서 팀원들을 이끌며 아마존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 그런 다음 현재 나의 모습에서 커리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을 매니저와 상담한다. 아무래도 매니저는 더 많은 경험이 있다 보니까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다. 또한 본인이 그 길을 가보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 길을 가본 사람을 같이 찾아봐주고 그 사람을 멘토로 지정해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서포트해준다. 예를 들어서 인터넷 회사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한 전문성뿐만 아니라 파이낸스 적인 부분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3년 후 커리어 체인지를 하여 "카테고리 리더"가 되는 것은 어떨까 라는 의견을 줄 수 있다. 카테고리 리더란 아마존 내에 판매되는 한 카테고리를 총 담당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런 식으로 중장기 적인 커리어 계획을 매니저와 같이 세워나가는 작업, 이게 아마존의 커리어 플래닝이다.
최근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MZ세대는 달라. 얼마 전에는 어떤 업무를 줬더니 나중에 나를 따로 불러내서 자기가 너무 이 일이 하기 싫어서 그러는데 동기부여를 해달라고 하더라".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이라는 게 항상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회사로 큰 성공을 이루는 창업가들이 자주 하는 말처럼 일이란 정말 하기 싫고 지루한 90%를 하고 중요한 10%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또 한편으로 팀장의 역할 중 팀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추후 매니저와도 이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팀장은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 하지만 꼭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팀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사람이 커리어 플랜 내 맞는 위치에 있고 그에 맞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따로 동기부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너는 잘할 수 있어"가 아닌 그 사람이 생각하는 커리어가 무엇이고 이에 맞는 일을 주고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