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팀원은 팀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점수는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평가를 받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성적표를 받기 시작하고, 그 성적표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게 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또다시 매년 평가를 받으며 내 성과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인생은 평가의 연속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팀장이 되었을 때 평가받는 사람이 아닌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서면 조금 묘한 감정이 듭니다. 내가 과연 누군가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 걸까? 내가 내린 평가가 그 사람의 경력이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팀장이 된 후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며 감정보다는 팩트에 근거해 평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아무리 신경 써도 평가를 받는 사람마다의 반응은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예상한 대로 행동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팀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바로 팀원도 팀장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팀장도 평가받아야 합니다, 팀원에게서
일단 팀장이 되어도 상급자로부터의 평가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하나 더 생깁니다. 바로 팀원들로부터의 평가입니다. 이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팀원들의 피드백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마존에서는 직원들이 출근해서 노트북을 켜면 ‘커넥션’이라는 설문지가 팝업됩니다. 여기엔 업무 만족도부터 시작해서 팀장과 팀에 대한 평가까지 다양한 질문이 있습니다. “내 팀장은 의사결정할 때 고객의 피드백을 충분히 반영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까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설문 결과는 익명으로 수집되며, 팀장도 매달 리포트를 받아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팀장이 누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익명성이 보장됩니다.
저도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이 설문 시스템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팀원 수가 적어서 설문 결과를 받아보더라도 대부분의 결과들이 비공개 처리가 되어 그다지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팀원이 많아지고 익명성이 충분히 보장되자, 매달 받는 리포트를 통해 정확한 피드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리포트를 열어볼 때마다 팀 내에서 개선할 점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팀원 피드백으로 개선된 사례
당시 팀 내에서 자주 나왔던 의견 중 하나는 다른 국가에서 근무하는 파트너 팀들과 협업할 때 화상회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딩시 우리 팀에서는 꼭 필요하지 않는다면 출장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팀원들이 여러 차례 오프사이트 미팅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습니다.그리하여 윗사람에게 보고를 했더니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다며 가능하다면 주기적으로 출장을 잡아보는 것을 추천해줬습니다. 물론 아무런 이유없이 놀러가는 출장이 아닌 기왕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서 회의를 진행할 것이라면 직접 보고 회의를 하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난 주 저희 팀원들은 개발팀이 인도로 출장을 가서 오프사이트를 하고 왔습니다. 새로온 팀원들도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인사도 할겸 그리고 내년에 진행할 프로젝트는 어떻게 실체화 할 것인지 조금 구체적인 회의를 하는 오프사이트 였습니다. 비록 저는 개인적인 일정으로 동행하지 못했지만, 팀원들이 출장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주 금요일 날 알려준 만족스러운 반응은 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설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저도 모르고 있었던 팀원들의 피드백을 반영함으로써 팀의 업무 효율성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팀원이 팀장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그 장점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투명하고 건강한 피드백 문화
팀원들이 익명으로 팀장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조직 내에 투명한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보통 상사가 직원을 평가할 때는 일방적으로 흐르는 피드백이 많습니다. 그러나 팀원이 익명으로 팀장을 평가할 수 있으면 수평적 소통이 이루어지며 팀장은 자신이 놓치고 있던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팀장이 지나치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간섭하는 스타일이라면 (그리고 본인을 완벽주의자라는 잘못된 언어로 포장을 합니다) 팀원들은 업무 자율성이 침해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익명이 아닌 대면 상황에서는 이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익명 설문은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팀장은 이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돌아보고 개선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장점은 익명성 덕분에 팀원들이 솔직하게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팀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은 팀장으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인 피드백을 받게 하고, 그에 따라 팀 내의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팀장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더 정확히 파악하게 하며, 보다 나은 리더로 성장하는 기반이 됩니다.
2. 팀의 효율성과 관계 개선
팀원이 팀장을 평가함으로써 팀의 업무 효율성과 관계가 개선될 수 있습니다. 팀원들의 피드백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팀 내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데 있어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가령 팀원들이 팀 간 소통 부족을 문제로 지적했다면, 이를 통해 팀장은 더 나은 소통 방식을 모색하거나 미팅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피드백을 받은 팀장이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점을 마련하면, 팀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다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이는 팀원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되어 자연스럽게 업무 효율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팀장이 팀원들의 피드백을 수용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팀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존중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팀장과 팀원 간의 신뢰를 쌓고, 보다 건강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결국, 팀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확신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이는 팀 내 전반적인 분위기와 성과를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팀원들이 제시한 부분이 처리가 되면서 커넥션 결과가 더 좋아지는 상황을 많이 봤습니다. 어떻게보면 단순히 팀장만을 위한 설문이 아닌 팀 그리고 나아가 회사를 위한 설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3. 팀장과 팀의 지속적인 성장
피드백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팀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팀장이 항상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리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더 잘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피드백은 팀장이 자신의 업무 방식을 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예를 들어 팀장이 지나치게 상세한 보고서를 요구해 팀원들이 피곤해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면, 팀장은 그 요구 사항을 조정해 팀원들이 보다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팀원들에게 더 많은 창의성과 효율성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게 됩니다.
팀장이 피드백을 수용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팀원들은 팀장이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과정은 팀 내에서 성장의 문화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도 비슷한 설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부서 팀장은 부서원들을 한 회의실로 불러서 본인이 보는 앞에서 설문을 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기겁할만한 행동인데, 그 당시에는 유별난 사람이다 하고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팀원들이 팀장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은 단순히 상하 관계를 넘어선 건강한 소통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팀원들이 팀장을 평가하는 과정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필수적입니다. 팀장은 이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팀원들과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를 성장의 도구로 삼아 팀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시작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