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합시다"
MBA 관련 글 이후로 새로 시작하는 시리즈 입니다. 현재의 아마존과 MBA 전 근무했던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두 기업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업 문화나 근무하는 방식 혹은 두 회사에 내재된 성장 원인들에 대하여 굉장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적은 글들이 실릴 예정 입니다.
김대리! 밥먹으러 가자
12시가 되면 들려오는 부장님의 목소리.
모니터를 끄고 겉옷을 챙겨 입다가 막내가 아직 사무실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앉아 핸드폰을 본다. 우리의 점심시간은 마치 전쟁에 나가는 한 부대와 같았다. 전우 한명이 보이지 않는다면 끝까지 기다려줬다가 다 같이 출발하고 다 같이 돌아오는 그런 전우애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메뉴를 잘 고르지 못 하는 부장님들을 대신하여 내가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고를 수 있었고, 비록 한마디 하지 않고 식사하는 분위기지만 사내 음식은 어느 외부 식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특히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의 경우 삼시세끼 모두 무료 식사가 가능한데, 한식 양식 중식등을 포함한 메뉴가 약 8개정도가 된다. 몸이 좋지 않은 날 사전 신청하면 죽을 먹을 수도 있었고, 아침에는 해장국, 복날에는 삼계탕이 나왔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이직하는 회사 역시 맛있는 식사를 주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MBA 취업 관련 통화 중 궁금한 게 없냐는 맥킨지 컨설턴트의 질문에 "너네 점심 뭐 먹어?" 라고 물어봤다.
삼성에서의 점심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마치 대학 캠퍼스처럼 넓은 야외 테라스들이 가득했는데, 특히 친한 선배들과 앉아서 수다를 떠는게 참 즐거웠던 것 같다. 아무리 회사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 시간만큼은 회사라는 생각을 떨치고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봄에는 벚꽃이 피어있었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을 찾아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으며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따듯한 차를 마셨고 겨울에는 창문넘어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면서 담소를 나눴다. 필요에 따라서 사내 병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한창 MBA GMAT 공부를 했던 시기에는 영상을 찾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가 되면 낮잠을 자기 위해서 꺼놓은 사무실의 불들이 켜지기 시작하고, 단잠에 빠져있던 부장님들 모두 일어나 티비에 나오는 스트레칭을 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점심시간은 정신없는 회사생활에 잠시 숨을 실 수 있게 해주는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
그래 이 소리다. 아마존의 점심시간.
우선 아마존은 점심시간이 없다. 배고픈 사람이 배고픈 시간에 식사를 하면 된다. 혼자 먹기 적적할 경우 친한 동료에게 "점심 약속 없으면 같이 먹을래?" 라고 사전에 물어보기도 하지만 왠만하면 개개인이 약속을 잡아서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본인의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일을 본다. 덕분에 출근 첫 날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한국 기업에서의 점심식사는 항상 팀원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사 첫날 점심시간이 되고 얼마되지 않아 사무실에 혼자 남겨졌다. 심지어 직장 상사는 한마디 없이 식사를 하러갔고, 어디서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몰랐던 나의 경우 나중에서야 회사 앞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미국회사의 문화라고 볼 수 있는데, 시간이 되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배고플 때 자율적으로 먹는 시스템이다. 사람 냄새나지 않던 이 방식에 적응을 하게되면 얼마나 편하지 모른다. 밥을 먹기 싫은 날에는 운동을 다녀와도 되고, 일이 너무 많아서 식사를 할 겨를이 없을 경우 일을 다 마무리 하고 눈치를 보지 않은 채로 시간을 내어서 식사를 하고 와도 된다.
아마존은 점심식사도 주지 않는다. 근처 푸드트럭이나 배달 서비스 혹은 직접 도시락을 챙겨와서 식사를 한다. 아이러니 한게 취업 준비 중 구글과 페이스북을 다녀오면서 테크 회사의 기대감이 굉장했는데 아마존은 그런거 1도 없다. 어느 나라 오피스를 가던지 비슷한 커피와 차 그리고 일주일에 두번정도 바나나와 사과 정도가 전부이다. 돈도 잘 버는 회사가 왜 복지가 이러지 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결정은 아마존을 이루고 있는 14개의 리더십 원칙 중 Frugality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절약, 검소라는 단어인데, 직원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은 제공하되 굳이 쓸데 없는 곳에 돈을 쓰지말고 그 돈을 제품 할인율에 투자하여 아마존을 찾는 고객들이 조금 더 싼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도록 하자 라는 신념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마존에서 굉장히 중요시 하는 원칙이고, 직원들도 이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이 별로 없다 (나는 그래도 밥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또 다른 예로 직급이 높은 분들이 해외 출장을 갈 경우, 회사는 비지니스 클래스를 끊어주지 않는다. 출장이 잦은 필자의 경우도 저렴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최고급 호텔이 아닌 그저 무난한 호텔들 위주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 심지어 분기별로 진행하는 All-hands (모든 직원들이 만나서 회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 이벤트) 에서도 회사 cost 절감에 도움을 주거나 절약 정신을 발휘하여 최대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게 door desk award를 준다. 이는 제프 베조스가 창업 초기에 문짝을 가지고 책상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것에서 유래된 상인데, 그만큼 frugality를 중요시하는 문화이다.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 집안의 분위기를 알 수 있듯이, 점심시간을 보면 회사가 어떤 느낌인지 잘 알 수 있다. 삼성의 경우 팀원들간의 화합을 중시하고 "같이 하는 문화"가 활발한 반면에 아마존의 경우 "개인주의가 더 강하고 효율성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집단"이다. 과연 어떤 문화가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