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멋지구나. 너는 소질이 있어"
이번 매거진 <끄적끄적>은 지나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적고자 만든 가벼운 글들입니다.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에 대해서 적는 글들이기에 매거진 내 스토리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SKY 캐슬>. 명문대를 가기 위하여 치열한 국내 입시 과정을 다루는 이 드라마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내 경험은 어땠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오늘의 이야기는 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내 공부의 시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필자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기 전 태국에 있는 영국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던 어린아이는 2살 많은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던 그 나날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태국에서의 생활은 내 삶을 통째로 변화시킨 시발점이었다. 학교는 너무 커서 자주 길을 잃었고, 날씨는 굉장히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교실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영국 학교의 커리큘럼은 필자를 항상 이상한 반에 앉아 있게 만들었다. 기숙사는 5명이서 같이 방을 나눠 썼는데 불을 꺼야 하는 Light-out 시간이 되면 방 안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했다. 무섭거나 두렵지는 없었지만 그냥 답답했었다. 학교를 다니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친구는 있었지만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약간의 적응을 했었다. 다른 친구들 눈치를 보며 클래스룸을 찾아다녔고, 어설프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과 농담도 했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놀 수 있었고 큰 학교에서 더 이상 길을 잃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국내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수학을 배우고 있었기에 다른 수업은 따라가지 못하더라고 수학은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었다. 암산이나 직육면체 부피를 구하는 문제가 있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대답하던 그런 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기숙사로 돌아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숙제 시간 (Prep time)을 갖었다. 저학년이기에 대부분 단어 외우기 혹은 포스터 그리기와 같은 단순한 숙제들이 많았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정말 열심히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어가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숙제들이어서 그랬는지 그 시간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하루는 수업 중 선생님이 포스터를 돌려주시면서 처음으로 칭찬해준 적이 있다.
와 이 포스터 진짜 멋진데, 너 화학에 재능이 있는 거 같아.
Keep up the good work.
Acid and base에 관련된 이 포스터에 A+라는 점수가 적혀 있었고, 아이들 앞에서 들었던 화학 선생님의 칭찬은 마른땅에 비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경우 그저 흘러가듯이 했던 말이겠지만 그 날 전해 들었던 작은 칭찬은 나를 변화시켰다. 영어를 못 하여 답답한 생활을 하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더니 어린 나이에 그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그 이후 화학 클래스가 있을 경우 준비를 철저히 했었고 화학 숙제는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몇 번을 다시 작성했었다. 그의 칭찬을 다시 한번 듣고 싶었고, 그 과정 중 내 머릿속에 나는 "화학에 소질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화학을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고, 영어는 못 했지만 친구들이 숙제 시간마다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때부터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얻었고, 다른 과목도 이와 같은 노력을 쏟으며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지리"나 "역사"의 경우 단어의 뜻을 외워야 하는 단어 시험들이 많았다. 단어를 알아듣지도 못 했지만, 그 단어를 설명하는 문장들 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필자의 경우, Light-out 후에는 손전등을 켜가면서 암기를 했었다. 예를 들어 Environment의 정의가 "the surroundings or conditions in which a person, animal, or plant lives or operates"이라면 "the S.U.R.R.O.U.N.D.I.N.G.S..."라는 식으로 문장의 알파벳 순서를 외워버렸다. 어린 나이에 참 독하게 공부했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높은 성적을 받고 싶은 게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첫 학기가 끝나고, 방과 후 교감 선생님이 찾아와 위 학년으로 월반하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화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시험기간에는 선생님 대신하여 시험 준비하는 세션을 열었고, 졸업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데도 떨리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교 전공을 고르는데 큰 고민 없이 화학 공학이라는 과목을 선택했었다. 첫 칭찬을 받았던 그 날의 감정이 내 인생을 결정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이나 해봤을까. 결과적으로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화학공학 학사를 Dean's list로 졸업했고 만 22살 케임브리지 화학공학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이는 필자의 능력 대비 과분한 성과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시작에는 화학 선생님의 작은 칭찬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특출 나지 않았던 나에게 선생님의 칭찬은 나를 "화학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마다 다양한 동기를 얻지만 많은 시작은 "작은 칭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 중학생인 예빈이는 혜나의 칭찬 가득한 과외를 듣고 기초반에서 개념반으로 월반하게 되었다. 매일 같이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니던 이 어린아이는 본인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더니 공부에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드라마라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대학시절, 필자는 영국에서 중학생 과외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학생 어머님이 학생의 초등학교 동생이 다음 주 시험이 있다며 하루만 과외를 부탁하셨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이 아이는 장난을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였다. 교과서를 보면 하품을 하고 다른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던 아이였다. 어린 친구를 가르치는 게 처음이라 당황을 했지만,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시험 단어를 맞추는 Hangman이라는 게임을 시작했다. 공부 대신 게임을 한다고 생각한 이 아이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모든 내용들을 빠르게 습득했다. 문제를 맞힐 때마다 끊임없이 칭찬해줬고, 기분이 좋아진 이 아이는 2시간의 수업이 끝난 후에도 더 하자며 보챘었다. 결과적으로 그 학생은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했고, 학생 어머님은 너무 감사하다며 연락을 주셨다. 공부가 놀이가 되고, 잘 논다는 칭찬을 받자 이 아이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칭찬의 힘은 강력하다.
물론 칭찬이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칭찬해준 사람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사람은 삐딱해질 수도 있다. 본인이 실패했다는 경험 때문에 그 후의 일들에 대하여 자신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칭찬할 경우 기대 가득한 목적을 주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너는 정말 대단해. 너는 무조건 서울 의대 들어갈 거야"가 아닌 "너 오늘 정말 잘했어"라는 작은 칭찬이면 충분하다.
세상에는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한번 보면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한다는 Photographic memory를 갖은 친구들도 있었고, 사람들이 며칠간 힘들게 풀어낸 과제를 앉아서 1시간 만에 풀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다시 돌이켜보니 그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자발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각자 본인만의 이유를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졸업 후에도 본인의 꿈을 위해서 멈추지 않았고, 현재 사회에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자발적인 노력을 할 수 있게 하는 동기부여. 필자의 경우 그 날 선생님의 작은 칭찬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