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강 Apr 03. 2019

우리 말은 이쁘게 합시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아들입니다"

최근 중국 출장을 가는 길 잠시 한국에 귀국했을 때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최근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누구보다 뛰어난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초고속 승진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왜 퇴사를 한 것일까. 민감한 문제일 수 있기에 식사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더니 그는 회사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한동안 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그게 아닌 것 같았고 얼마 후 같이 근무하던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며 믿고 따랐지만 본인이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너 진짜 죽여버린다

이는 실제로 지인이 회의 중 상사에게 들었던 말이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이런 사람과 같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지 큰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업무와 상관없는 인격모독을 지속적으로 마주했던 그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고 새로운 곳에 가서 훨씬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오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친한 형에게 연락이 왔다. 한창 결혼 준비에 정신없을 그는 최근 들어 커리어적인 고민이 많다며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그 역시 상사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본인을 바보 취급하며 항상 무시하는 상사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상사의 경우 단순히 무시하는 것을 떠나서 업무와 상관없이 능력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서슴지 않게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전 삼성인으로 특진까지 하며 잘 나갔던 그 형의 경우 현재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고 이직을 심각하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 상사 운이 좋지 않구나"라고 하며 넘어갔을 텐데, 최근 이러한 문제들을 바라보니 정말 이런 상사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출처: 매일경제> 좋은 상사? 나쁜 상사?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욕을 달고 사는 상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직속 상사 중 그런 분은 없었지만, 욕쟁이 차장님들을 몇 분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대놓고 말을 하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혼잣말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괜히 기분 나쁘게 하는 그런 스타일을 사람이었다. 혼자 욕하는 사람 옆에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안 좋아졌었는데 실제로 "죽고 싶냐"라는 험한 소리를 대놓고 들었던 지인은 어땠을까. 과연 회사에서 주는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들끼리 이런 언어를 쓰는 게 정말 맞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모습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선배들의 익숙한 모습에서 적응한 사람들일 수 있는 것이고, 원래 회사생활이 이런 거야 라며 교육받은 사람들도 있다. 필자 역시 이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막상 외국에서 근무를 하며 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필자가 경험해본 삼성의 경우 인격모독, 인권침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진지하게 다루는 조직이라고 느꼈다. 물론 10만의 직원 중 필자가 경험해본 사람들은 몇 백 명 되지 않으니 함부로 일반화하지 않겠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상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고 덕분에 인격적 모독을 들어가며 억지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조금 야비하게 혹은 간접적으로 독설을 하는 사람들은 간혹 보이기는 했으나 그저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며 다들 무시하며 일을 했었다. 물론 모든 조직이 그럴 수 없는 것이, 욕을 달고 사는 상사는 각 부서마다 찾을 수 있었고 다만 이게 가벼운 농담인지 아니면 진심을 다해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인지의 차이였다. 이렇게 입사 후 수많은 상사들을 마주했던 필자의 경우 때론 "선배" 혹은 "상사"가 조금 험한 말을 쓰는 게 당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마존에서 근무하면서 이와 같은 생각이 사라졌다. 상사가 후배에게 욕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기업의 임원이라도 직원들에게 욕을 하는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 모두들 동등한 입장으로 업무가 잘못되어 짜증을 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던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특히 선배에게 혼난다 라는 개념이 익숙했던 필자에게, 입사 초기 경험했던 다양한 상황들은 꽤나 신세계처럼 다가왔다. 예를 들어 자동화 프로젝트를 담당하다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여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에 오류가 발생한 적이 있다. 때는 해당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던 참이기에 담당 임원도 매주 회의에 참석했다. 필자가 이때까지 경험해본 사회생활에서 임원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잘못된 수치를 보고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 결과 필자는 밤을 새워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그에 맞는 수치를 찾아냈고, 회의 전 매니저에게 당당하게 이 데이터를 공유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매니저는 진지하게 "너 이거 하려고 몇 시에 잤어?"라며 질문했고, 새벽까지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퇴근 후에 일하는 거 금지야"라며 회의실에 들어갔다.


막상 임원이 들어오자 매니저는 필자가 준비해온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솔직하게 (1) 어떠한 문제가 있었고, (2) 어떠한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으며, (3) 추후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어떠한 장치를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했다. 그러자 디렉터와 임원 모두 알겠다며 이번 주 수치를 보지 말고 타 프로젝트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며 대화 화제를 바꿨다. 뭐지. 그 자리에 앉아있던 필자가 예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니었다.


일을 어떻게 하길래 보고가 이런 식이야?

혹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라는 (물론 순화하여 글을 적은 것이지만) 종류의 꾸짖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그런 것과 상관없이 대책을 보고하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추후 매니저와 대화를 하다가 이 상황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솔직하게 상사들과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인지 중요해. 이는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 중 하나인 Earn trust에 연결이 되는 것인데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 이를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닌 오히려 모든 걸 오픈함으로써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기 않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 설명해주는 거야. 이를 통해서 서로의 신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혹시라도 상사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 부탁을 하는 것도 좋아. 그렇게 함께 문제를 더 빠르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라며 설명해줬다. 물론 "너 오늘은 새벽까지 일 안 할 거지?"라며 작은 놀림과 함께 말이다.


<출처: KBS 뉴스>


모든 것들을 오픈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사회생활에서 임원보고나 높은 상사들에게 보고하는 경우 대부분 좋은 성과들만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를 야기할 것 같은 내용들은 포함시키지 않았고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언급되지 않기 바라는 경우도 많이 봤다. 특히 본인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들만 가득 채움으로써,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원 중 한 사람이 "근데 그때 그 문제는 어떻게 됐지?"라는 질문과 함께 추궁을 하기 시작하면 회의실에는 한 여름에도 싸늘함이 느껴졌다. 준비되지 않은 내용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사람과 이를 더 끝까지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긴장감에 많은 사람들이 애꿎은 시계만 살펴보고 있다. 결국 회의가 끝날 때 자세한 내용은 다뤄지지 못하게 되고 다음 회의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며 회의들은 마무리되었다. 이런 모습들이 과연 누군가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 되는 부분을 감추는 부하직원일까 아니면 문제 되는 일들이 생겼을 때 화를 내며 추궁하는 임원의 문제였을까.


당시 필자의 경우 무서웠던 임원들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물론 무조건 화내고 욕하는 임원들은 나쁘다). 수많은 프로젝트와 직원들을 담당해야 하는 임원들의 입장에서, 모든 부서에서 하고 있는 업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임원보고 혹은 부장들과의 미팅을 통해서 현 업무 상황을 보고 받는 것이다. 관리해야 할 부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는 그들은 직원들의 보고에 따라서 어떠한 문제들은 평생 모를 수도 있다. 물론 임원들에게 보고되지 않은 일들 중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들이 다반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추후 한꺼번에 임원들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봤기에 임원들이 조금 더 날을 세워 직원들을 관리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허나 이는 악순환을 만드는데 직원들은 무서운 임원들의 모습을 피하기 위해 "정돈된 보고"만 하고 임원은 그 사이에 숨어있는 문제아들을 찾기 위해 싸운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우리 임원이 얼마나 무서운데.
혹시라도 문제 생긴 거 알면 우리 가만두지 않을걸

외국인 임원이니 잘 해주는 것일거야 라고도 생각할 것인데 우리 임원들도 화낼 때는 굉장히 잘 낸다. 물론 욕을 하지 않지만 보고의 방식에 문제가 있을 때 그들의 논리를 앞세워 꾸짖는다. <나라면 이런 방식으로 했을 것이야. 왜냐하면 XYZ이기 때문이야>, <무슨 설명을 하는 것인지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는 생각해봤나. 내 경험에 따르면 ABC가 어떠한 이유로 맞는 것 같은데>라는 식으로 단순히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마찬가지로 발표하는 사람도 논리를 앞에 둔다. 단순히 <죄송합니다. 이번 일정을 맞추지 못했습니다>가 아닌 <이번 일정을 못 맞췄습니다. 그 이유는 abc인데 이 것을 제대로 파악 못 했던 저희의 잘못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fgh를 했고 현재 결과는 이렇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QWE와 같은 방식을 도입할 예정입니다>라는 식으로 확실히 이번 문제를 바라보며 근본적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고 이를 통해서 배운 교훈들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는 어떤 것인지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실수를 교훈으로 삼고 더 나은 대책 마련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공유함으로 서로 간의 신뢰를 더 쌓는 것이다. 


대화라는 게 종이 한 장의 차이지만 참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위 이야기들은 임원들과의 대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후배가 있는 모든 상사들 역시 본인의 말이 얼마나 논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단순히 내가 오랜 회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없애야 한지는 오래되었다. 후배에게 인정받고 더 당당히 본인의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논리가 밑바탕 되어야 한다. 필자의 임원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아무리 회사를 오래 다녔어도 이 제품에 대한 내용은 너희가 나보다 잘 알잖아. 그러니 내가 해주는 조언들은 귀담아듣되, 결정은 너네가 잘해. 너희가 잘 할거야". 이와 같이 모든 내용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는 임원의 입장에서 우리를 추궁할 필요가 없기에 모든 업무를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키즈현대>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뉴스에서 학교 폭력, 왕따 등 청소년들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 어른들은 "애들이 커서 뭐가 되려고"라며 혀를 끌끌 차고는 한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이러한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른들이 상사 혹은 선배라는 이유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간접적 폭력을 하고 있다. 회사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런 관계는 중요한 인재를 다른 기업으로 빼앗기게 되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고, 개인의 측면에서는 사회생활에 의한 스트레스로 일상이 무너질 수도 있다. 욕설보단 논리로 내가 선배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 이 한 끗 차이가 서로의 신뢰를 바꾼다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