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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Aug 21. 2019

시간을 공유하는 문화

"제 스케줄 확인 후 미팅 잡아주세요"

지난주 잠시 회사 업무를 내려놓고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행선지는 룩셈부르크에서 비행기 기준 약 2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보석 같은 섬 몰타였다. 몰타는 예전부터 꼭 한번 다녀오고 싶었던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휴가 시즌에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여행을 다녀왔다. 연초 가족여행을 마지막으로 따로 휴가를 내지 않았던 필자였기에 매니저와 디렉터 역시 어서 가서 좀 쉬고 오라고 말해줬고, 그와 함께 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중 매니저는 아래와 같은 말을 전했다.


회사 시스템에는 나중에 올려도 되니까 먼저 네 캘린더부터 업데이트해줘.
그래야 네가 없는 기간에 미팅을 안 잡을 테니까.

아마존에서 근무를 하면서 경험한 새로운 문화 중 (글 쓰는 문화와 함께) 캘린더를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최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부서 내 공유 캘린더를 사용하는 기업들도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필자는 처음 경험했고 또한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잠시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소중하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임원들의 시간이 참 소중히 다뤄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스케줄은 담당 비서 분들이 따로 관리하여 일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잡기 위하여 끊임없이 조율된다. 정말 바쁘신 분의 경우 하루를 몇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업무를 진행하시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들이 관리하는 수많은 부서들과 어깨 위에 놓인 무거운 책임감은 아직 필자가 이해할 수 없기에, 필자 역시 그들과의 미팅을 준비할 때 문서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정해진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는 개개인의 생산성에 값어치를 측정해 월급을 준다 (혹은 직급에 연결시켜 월급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월급이 적은 부하 직원들의 시간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회사의 측면에서 봤을 때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시간이 더 소중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최부장이 월급을 더 적게 받는 김대리의 한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입사 후 매니저에게 주문받은 첫 번째 일은 타 부서 인원들과 1:1 미팅을 잡는 것이었다. 앞으로 같이 일해야 하는 주요 인원들의 목록을 받고 연락하여 그들의 업무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근무했을 때는 주로 상사가 직접 "우리 팀에 새로운 막내가 들어왔습니다"라며 인사를 시켜줬는데, 아마존에 입사해보니 "네가 알아서 연락해라"라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우선 필자는 개개인에게 메일을 보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무슨 부서로 발령받은 누구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업무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잠시 통화를 하고 싶어 연락을 드립니다. 통화하기 편한 시간을 알려주신다면 그 시간에 맞추어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꽤나 정중한 메일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자 몇몇의 사람들은 답변을 해줬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은 전혀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메일을 열심히 적고 있던 모습을 본 매니저는 "아마존에서는 굳이 먼저 메일을 보낼 필요는 없어. 그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비어있는 시간에 바로 미팅 인바이트 (meeting invite)을 보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물론 그 미팅 인바이트에 미팅의 목적은 확실하게 적어줘야 하겠지만 말이야"라고 설명해줬다. 


동방예의지국에서 근무했던 필자는 무작정 회의 요청을 보낸다는 것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캘린더 문화에 익숙해지자 굳이 상대방에게 연락하여 그들의 스케줄을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덕분에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하게 해당 인원의 공유된 스케줄을 확인하고 비어있는 시간에 회의 요청 메일을 보내면 된다. 물론 무작정 "회의합시다"라고 보내면 바로 거절 메일을 받을 수 있음으로 해당 메일에는 회의의 목적과 배경을 적어줘야 한다. 아직도 회의 정보가 담겨있지 않은 회의 요청 메일을 받고 있는데, 이제는 필자 역시 거절을 클릭하는데 어색하지 않다. 반대로 회의를 요청했는데 상대방이 거절하는 경우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상대방 역시 회의를 참석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혹시라도 부득이한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다면 사유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제시하면 된다. 이와 같이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과 함께 점차 자연스러운 또 다른 문화가 되었던 것 같다.



캘린더를 사용할 경우, 본인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막내 사원도 바쁘다. 그들도 그들만의 업무가 있고, 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야근을 해야 한다. 요즘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어 야근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52시간 내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직급과 상관없이 개인들의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캘린더 시스템은 개인의 업무 시간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하여 업무 효율성을 높여준다. 예를 들어 혼자 집중하며 서류를 작성해야 할 경우, 본인 캘린더에 "ABC 관련 서류 작업"이라는 시간을 잡으면 된다. 그럴 경우 적어도 그 시간에는 회의 요청이 오지 않음으로 본인의 자리에서 앉아 (혹은 팀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집중하여 개인 업무를 하면 된다. 이와 같은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윗사람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겠다. 그들 역시 부하 직원의 캘린더에 선약이 있을 경우 이를 무시하고 업무를 맡기거나 회의를 잡아서는 안된다. 급한 업무가 생겨 부득이하게 부탁할 수는 있겠지만, 굳이 당장 마무리할 필요가 없는 업무 거나 당장 물어볼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면 따로 회의시간을 잡아 한번에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런 업무 방식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언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린더 시스템에 동의하고 서로 지키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윗사람들 역시 이 업무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바쁠 때 "부장님이 모이래"라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쌓인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한 시간이 소중한 이 시기에 회의실에 모여 다음 분기 아이템을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부장님이 보고하셔야 할 내용들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역시 중요한 업무이지만 만약 직원들의 우선순위 중 아래에 위치한다면 (아직 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날 회의를 잡아 서로 집중하여 회의를 한다면 되려 생산성이 더 높지 않을까? 물론 아마존에서도 급한 업무의 경우 양해를 구하고 부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경우 직원들은 "이런 식으로 업무 하는 건 조금 아닌 것 같다"라며 서슴없이 말한다. 당연히 캘린더를 사용하면서 오는 단점들도 있다. 이 업무 방식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우선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것이라고 믿어줘야 할 것이고 직원들은 생산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범위에서 스케줄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업무보다는 땡땡이를 치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생산성이 되려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캘린더 시스템을 도입할 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개개인의 역할과 책임 (Roles and responsibilities)이다. 시간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주되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그들의 생산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직원들이 땡땡이를 치거나 출근을 늦게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국 회사가 봐야 할 것은 그들이 회사에서 보낸 시간이 아닌 정해진 업무를 얼마나 효율적이고 훌륭하게 해냈는지만 보면 되는 것이다.



캘린더엔 업무 관련 일정만 적는 것이 아니다. 혹시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해야 할 경우, 휴가를 가야 할 경우, 혹은 재택근무를 할 경우 직원들은 모두 캘린더에 업데이트 해놓는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 동문회가 있을 경우, 저녁 6시 이후부터 "개인적인 약속"이라는 형식으로 본인의 시간을 잡는다. 이렇게 회사 동료 전체에게 공유되는 캘린더에 선약을 잡아 그 시간 이후 회의 요청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예전 삼성에서 근무했을 당시, 중요한 선약이 있을 때 필자는 아침 회의에서 아주 큰 소리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저 오늘 중요한 약속 있어서 6시에 퇴근합니다.
혹시라도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오전 내로 알려주세요.

이는 같이 근무한 지 오래된 동료들이라 사전에 말한다면 이해해줬는데, 아무래도 신입사원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캘린더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공유한다면 조금 덜 부담스럽게 선약들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40시간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일 정해진 시간 없이 일주일 동안 40시간만 채우면 되는 방식이다. 이는 필자 역시 삼성에서 근무하던 당시 시험 도입된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잠시나마 경험해봤다. 평소 잠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필자에게 피곤한 날에는 조금 더 깊은 잠을 자고 조금 늦게나마 출근한 것이 실제로 업무 효율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허나 단점으로는 팀원들에게 언제 늦게 출근할 것이고 언제 일찍 퇴근할 것인지 공유한다는 게 불편한 일이었다. 매번 메일을 보내서 "내일은 늦게 출근하겠습니다"라고 언급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비록 팀원들에게는 언급을 했지만 타 부서는 알고 있지 않아서 "오전에 찾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메일이 받고는 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유연근무제와 같이 직원들에게 자율적으로 업무시간을 설정할 수 있게 문화를 구축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캘린더를 같이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또 다른 단점도 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업무를 진행해야 하지만 필요 인원의 캘린더가 다른 선약으로 가득할 경우 업무의 추진력을 잃을 수도 있다. 아마존에서는 이럴 경우 escalation을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먼저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래도 그들의 시간을 얻어내지 못할 경우에는 상대방의 상사와 본인의 상사를 연결시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때론 escalation 방식이 더 부담스럽거나 번거로워 어쩔 수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 얻게 되는 시간의 자율성은 워낙 값지기에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시간은 금이다.

각자의 생산성은 다를 수 있겠지만 지나가는 시간 앞에 우리는 모두 공평하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간을 조금 더 존중해줄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적용하여 각자의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뿐만 아니라 회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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