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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Jul 28. 2019

퇴근하면 뭐하니

"놀면 뭐하니"

무한도전의 새로운 시즌을 손꼽아 기다렸던 필자에게 김태호 PD가 <놀면 뭐하니>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한다는 소식은 굉장히 설레게 다가왔다. 최근 챙겨보는 주말 예능이 없어 (필자는 티브이를 엄청 좋아한다) 토요일마다 뭘 봐야 할지 고민했는데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잘 자리 잡아 필자의 주말을 책임져 줬으면 좋겠다. 뜬금없이 왜 갑자기 티브이 이야기를 하나 싶을 수 있겠지만, 오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주제가 떠올랐다 - 그것은 바로 퇴근 후 우리의 삶이다.


퇴근하면 뭐하니?

직장인들의 삶은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퇴근 시간은 다르지만 회사가 끝나면 우리는 삶으로 돌아가 남은 하루를 보낸다. 그게 몇 시간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학원을 다니며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고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 누군가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떨쳐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 오늘 하루를 이야기하며 그 날을 마무리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 삼성을 다니던 시절과 현재 아마존을 다니며 겪고 있는 퇴근 후 삶은 어떤지 생각해봤다. 다른 국가에서 굉장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궁금해하실 것 같아 오늘은 필자의 경험을 간단하게 공유하려 한다.



필자는 영국에서 대학원 졸업식을 한 다음 곧바로 귀국하여 입사 준비를 했다. 운 좋게도 필자는 졸업 전 오퍼를 받았고 인사팀은 해가 지나가기 전 빠른 시일 내 입사하기를 요청했다. 그리하여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귀국하여 일주일 뒤 입사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너무 급하게 일을 진행한 것 같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잠깐의 휴식 기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 (대학원 시기 방학이 없었다). 필자는 외국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한국 지리를 (특히 서울과 경기도권) 잘 알지 못했다. 앞으로 기흥캠퍼스에서 근무한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사실 그곳이 어디인지 잘 몰랐다. 숙소를 구하는 과정 중 회사에서 부동산을 연결해줬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첫 숙소를 수원에 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기흥캠퍼스가 서울과 가까운지 몰랐고 학생 때부터 짧은 이동 거리를 선호했기 때문에 크게 주저하지 않고 부동산 계약을 했다. 


그러나 2년간 그곳에서 지내면서 아는 사람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깨달았다. 학생 시절에는 어디를 가던지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직장인으로서 자리 잡는다는 것은 (가족이 없다는 가정하에) 꽤나 외로운 일이다. 특히 직장 동료를 제외하면 퇴근 후 친구와 만나 가볍게 술잔을 기울일 수 없고,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도 불편했다. 물론 집 앞에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래도 퇴근 후 집에 가다가 편맥 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워 보였다. 반대로 장점으로는 퇴근 후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잠깐이지만 (6개월) 상사분께서 칼퇴를 하라며 퇴근 시간마다 필자를 떠밀어 내보내셨는데, 그때부터 다양한 일들을 찾아봤다. 우선 잠시 배웠던 기타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집 앞에 학원이 있어 직장인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는데, 퇴근 후 저녁을 해결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어설프지만 열심히 기타 줄을 튕겼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헬스장에 부지런히 찾아가 운동과 사우나를 하며 하루의 피곤함을 날려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가 인생 제일 건강하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후 인터넷 서핑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와 예능을 보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필자는 티브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혹은 무료하게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꾸준히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고 그 결과 한동안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고 회사 동료들과 친해져서 퇴근 후 술자리를 갖으며 나름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전세 계약이 마무리되는 시점이 다가왔고 필자는 큰 고민 없이 서울로 이사했다. 아무래도 이 결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회사 통근버스가 잘 되어 있어 출퇴근 시간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버스 전용차로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통근버스는 차 막히는 시간에 수원에서 출근하는 것과 얼마 큰 차이를 내지 않았다. 두 번째로 필자가 그 당시 MBA 준비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시기였는데, 압구정동에 위치한 학원을 다니기에 수원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은 양재 부근에 원래부터 친했던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 퇴근 후에도 조금 더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동을 결정했다.


결국 뱅뱅사거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겼는데, 그곳에서의 삶은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또 달랐던 것 같다. 학원을 등록하기 전까지는 퇴근 후 친한 동네 친구들과 모여 맥주도 한잔하고 저녁도 챙겨 먹었다. 특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 친구들끼리 자주 모여 술을 마셨는데, 그때의 고민들을 서로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가족같이 지내던 동네 친구들 모두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떠났고 다들 너무 멋지게 잘 살고 있다). 특히 이때는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던 시점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보다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 필자의 회사 생활과 삶 모두 꽤나 안정적으로 들어섰는데, 오히려 그때 필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이던 삶에 익숙해져 안주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직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MBA 학원을 등록했다.


직장인이 퇴근 후 학원까지 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는 직장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경험해보는 입장에서 그들은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퇴근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다시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늦은 시각까지 무언가에 집중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큰 동기를 얻었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는 동안 필자의 퇴근 후 삶은 크게 변했는데, 우선 학원을 다니기에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극단적으로는 한 달 이상 따로 약속을 잡지 않고 공부에만 매진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목표를 갖고 달려가던지 언제나 숨을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갖고 있는 게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다. 때로는 지금의 일이 단거리 경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나 바라본다면 도착 지점은 생각보다 멀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던지 잠시 숨을 돌릴 틈을 항상 지녔으면 한다. 그 시절 퇴근 후 필자는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역으로 갔다. 약 3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나면 저녁 11시가 훌쩍 넘는데, 집으로 돌아와 다시 복습 및 연습 문제를 풀다 보면 금방 새벽 1-2시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내일 출근하지 말고 오늘 밤새도록 공부하면 좋겠다"라는 약간 이상한 생각을 자주 하고는 했던 것 같다. 물론 학원을 다닌다는 이유로 회사 일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곤해도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했었고 그 결과 그해 평가 점수가 가장 높았었다. 필자는 이런 생활을 약 4개월 정도 했고, 운이 좋게도 원하는 점수가 빨리 나와 금방 학원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MBA 학교별 입학설명회를 참석해 졸업생들의 실제 경험담을 들어보기도 했고, 뱅뱅사거리 스타벅스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면서 에세이를 적기도 했다. 시험이라는 압박이 없어지자 주말만큼은 쉬자고 생각하여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근교로 여행을 가서 맛있는 것들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면서 MBA 준비를 하다 보니 회사 일이나 준비하는 일들 모두 능률이 올라갔던 것 같다



그 후 필자는 원하던 학교에 가서 MBA를 마쳤고 지금은 상상도 못 했던 룩셈부르크라는 유럽의 작은 국가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퇴근하고 뭐할까? 어떻게 보면 수원에서 살던 시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극단적인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 없는 국가에 와서 터를 잡았고, 가족 중심인 룩셈부르크에서 외국인 싱글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무료하고 때론 외롭다. 우선 필자는 퇴근 후 열심히 마트로 달려간다. 유럽의 특성상 마트들은 저녁 8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그렇기에 혹시 회의가 늦어지면, "미안하지만 곧 슈퍼 문이 닫아서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자"라고 하고 바로 퇴근한다. 그리하여 장을 보고 거의 모든 저녁을 만들어서 먹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 년 반 중 거의 90프로의 식사를 모두 집에서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먹게 되어서 좋지만 회사 일이 힘든 날이면 귀찮아서 라면으로 허기를 때운 날들도 많이 있다. 식사 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티브이를 보는데 할애했다 (세 번째로 말하지만 필자는 티브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대학시절 시험 기간에도 월화드라마 공중파 3사 드라마를 다 챙겨봤던 필자였기 때문에 티브이를 보며 적적한 시간들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필자 역시 티브이를 보는 것에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그 후 뭘 할까 라는 것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봤다.


저녁에는 꾸준히 운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쉽지만 필자네 동네에는 헬스장이 없다. 조금 멀지만 다른 곳에 가서 운동을 할지 고민했는데, 비효율적인 이동 시간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이 아니라면 조깅을 하고 있다. 공기가 맑다는 장점이 있어서 동네를 하염없이 달리다 보면 분명 거기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 평소 5km 정도를 달리고 돌아와 집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짧은 시기에 살을 뺄 수 있다는 (맨날 먹고 티브이만 보다 보니 살이 쪘기에) 타바타 운동을 즐겨하는데 아무리 그렇게 운동을 해도 저녁 9시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후 뭘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한 끝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MBA나 아마존 취업 관련하여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메일로 답장을 드렸는데, 비슷한 내용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져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수다를 좋아하지만 같이 떠들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이러한 일들을 글로 적는 조금 서글픈 상황이 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기가 지나 주변 친구들도 생겼다. 퇴근 후 같이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 친구들도 꽤나 생겼고 주말에는 동료의 집에 초대받아 바비큐를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점차 이 곳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고 "퇴근하면 뭐하지"라는 고민들과 함께 시도해봤던 다양한 것들이 새로운 도전이 되어 퇴근 후 삶을 조금 더 활기차게 만들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적다 보니 출판 제의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다. 어설프고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들을 읽고 도움이 되었다니 나름 기분이 좋기도 하다. 시간이 날 때는 MBA를 준비하고 있거나 아마존 입사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과 통화를 하면서 인터뷰 연습도 도와드리고 있다. 지금까지 인터뷰 연습을 도와드린 분들 중 2명이 입사에 성공했는데, 필자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뿌듯한 경험들이다. 때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한다. 평소 게임을 즐겨하지 않지만 어렸을 적 최애 게임이 최근 모바일로 나와서 때로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휴식과 새로운 도전을 적절히 섞어가며 퇴근 후의 삶을 이어가다 보니 아무리 외로운 곳이라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있는 것 같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면 사내의 위치가 변할 수 있다. 허나 퇴근 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학원을 다니고 성장을 위해서 밤새 고민하라는 게 아니다. 직장인들은 충분한 휴식을 갖음과 동시에 본인이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워라밸은 단순히 퇴근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이는 첫걸음이지만). 어떤 시간에 퇴근하던지 삶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보자.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다 내려놓고 놀아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피시방을 가고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만화방에 가자. 고민들을 털어내고 싶은 날이면 친구들과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때론 새로운 설명회에 참석하여 또 다른 자극을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유럽 사람들은 자주 "회사가 삶이 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하루의 1/3 이상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회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퇴근 후 삶 역시 소중히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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