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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Oct 27. 2019

UX 디자이너와 일한다는 것

"본능적으로 느껴졌어"

드디어 일 년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론칭했습니다. 최근 일과 출장이 많아서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 좀 숨을 돌릴 수 있어 다시 열심히 글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찍은 사진과 같은 날 찍은 것 같지만 - 이번 추석에 가서 찍어온 여전히 아름다운 스페인 광장


사용자 경험. UX라는 이 단어는 필자가 대학생 시절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핸드폰이라면 모토로라의 레이저폰, 엘지의 초콜릿폰, 조금 힙한 사람은 삼성 아르마니 핸드폰을 썼었고, 국내에서는 김연아 선수의 햅틱이 우리들의 마음을 강타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작지 않은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도 반대편 주머니에는 항상 아이팟이 들어있었는데, 지금의 애플에 큰 기여한 아이팟은 그 당시 젊은이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특히 아이팟에는 클릭 휠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원 모양의 컨트롤러가 있었는데, 이 장치는 빠른 속도로 수천 개의 곡들 중 듣고 싶어 하는 노래를 찾을 수 있게 해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기발한 아이디어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제품을 론칭했다. 그는 발표회에서 "사용자 경험"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며 터치를 하여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획기적인지 설명했다. 밀어서 잠금화면을 해제하거나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벌리면서 확대하는,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직관적인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필자 역시 점차 느끼기 시작했고 이 작은 경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이번 해 에어팟을 사용하면서 또다시 애플의 "고객 만족" 정신과 뛰어난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들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학원을 마치고 필자는 부품과 관련된 제품을 연구하는 업무를 했기에 사용자 경험에 대하여 직접적인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제품의 스펙을 디자인하긴 했지만).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마존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업무를 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존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UX 디자이너와 처음 일하게 되었다. 그는 아마존에서 근무한 지 12년이 넘는 베테랑이었고, 근속 연수가 10년 넘은 사람들이 받는다는 빨간 배지를 갖고 있어서 처음 만났을 때 사실 꽤나 긴장했다 (그러나 아마존에서 근속연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급이 있지만 논리가 있다면 누구나 동등한 입장에서 말하면 된다). 그는 실리콘 밸리에서 유명한 디자인 컨설팅 회사 근무 경험 역시 있었기에 처음 그와 어떻게 일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었다. 


사용자 경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UX 디자이너라면 
그냥 그의 말을 따르면 되지 않나?

입사 초기 그의 무수한 아이디어를 듣고 위와 같은 생각을 자주 했다사용자 경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초짜가 과연 이 베테랑의 의견에 반대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왜 UX 디자이너와 PM이 같이 협업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그는 항상 훌륭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했고 그 생각들을 시각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을 글로 적어 설명해주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상 페이지 (mock-up)를 만들어냈다. 특히 그는 간결하고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페이지들을 잘 만들어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그들 중 "아름답기만 한" 아이디어들도 보이기도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입사 초기 만들었던 페이지의 경우 세금 및 법률 관련 내용들을 한 페이지에 쉽게 녹여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런데 그의 간소화된 페이지에는 사용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들을 넣을 공간이 없었다. 링크를 제공해 다른 페이지에서 추가 정보를 제공하자는 그였지만 고객 경험을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PM이 무작정 그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페이지의 간소화와 사용자들에게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 사이에 서서 밸런스를 잡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 


제품과 관련하여 전체적 그림을 바라봐야 하는 PM은 모든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예산 혹은 정해진 리소스가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자분들의 시간을 "금"같이 보는데 그들의 시간을 프로젝트의 자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마존에서 자원을 이야기한다면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존의 리더십 중 하나인 Frugality (검소함)이다. "제한적 자원은 상상력을 자극한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적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성취하는 것 역시 아마존이 추구하는 리더의 중요한 능력이다. 필자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존에서 모든 프로젝트에는 꼭 필요한 리소스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것들이 무조건 필요하고 (must-have) 어떤 것들은 있으면 좋은지 (good to have)에 대해서 끝없이 서로 질문하고 다듬는다. 그리고 아쉽지만 UX 디자이너의 멋진 아이디어들 중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걷어내는 게 내 역할이었다.


회의에서 그는 무궁무진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털어놓았고, 그의 넓은 상상력 덕분에 회의가 산으로 간 적도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역할은 대화를 끊고 주제를 원상 복귀시키며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때론 토크쇼 MC가 된 기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들을 통해서 조금 더 능숙하게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물론 위 세 가지 내용들은 조금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PM과 UX 디자이너로 같이 협업하는 게 고객들을 위한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끝없는 토론을 했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때론 반대되는 의견도 있었지만 데이터와 논리를 앞세워 서로를 설득시켰고, 또 한편으로 서로의 의견 역시 존중해주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국가에 맞는 서비스를 론칭하기도 했고, 서비스 가입 페이지를 새로 만들어 가입률을 기존 대비 50% 이상 증가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다.



영어로 고객의 입장에 서서 고민한다는 말을 "put [oneself] in [someone]'s shoes"라고 한다.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상대방 신발에 넣어버린다라는 뜻인데, PM이 지녀야 할 또 다른 덕목 중 하나는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제품을 사용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끝없이 파악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며, 제품을 사용하는 시간대는 언제이며, 제품에서 기대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니저의 말을 빌리자면 PM은 항상 고객에게 집착하여 누구보다 그들을 잘 파악해야 하며, 그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 직감적으로 (gut feeling) 그들의 행동을 예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현재 필자의 제품은 유럽 5개국에 론칭된 상태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와 같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들이지만 고객들의 특성이 너무 다른 곳들이다. 그리하여 해당 고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전화를 걸거나 해당 국가로 날아가서 고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때론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세일즈 팀의 힘을 빌려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물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쌓인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제 어설프지만 "독일 고객들은 이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아", "영국 고객들은 저런 식으로 하는 걸 더 선호할 거야"라며 고객의 소리를 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의견들을 잘 조합하여 보편적이지만 각 국가의 특성을 반영한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필자는 사용자 경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숟가락을 올리는 정도이지만,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객의 소리를 전달하여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게 PM이 UX 디자이너와 일하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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