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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Oct 29. 2019

커리어 끝엔 뭐가 있을까?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아마존에서는 매년 커리어 상담을 한다. 사내 사이트에 적힌 질문들과 본인이 생각하는 커리어 목표를 작성하고 나면, 얼마 후 매니저와 함께 앉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어느덧 2019년 연말이 다가왔고 필자 역시 최근 커리어 상담을 마쳤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번 해에 상담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고 또한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며 배웠던 부분을 한번 이야기해볼까 한다.



필자의 첫 장래희망은 변호사였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초등학교 1학년 작성했던 장래희망 설문지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적혀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던 어린아이 었는데, 왜 변호사가 되고 싶었을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변호사가 좋은 직업이고 부모님들이 선호하시는 직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의사 역시 어린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자주 등장하고는 했는데, 어렸을 적 피 보는 것을 끔찍이도 무서워했던 어린 쫄보에게 사람을 대하는 변호사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은 커서야 알았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방송 쪽 일을 하고 싶었다. 피디나 작가 혹은 실제 연기자가 되어 네모난 상자 속에 내 생각이나 내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어렸을 적 일기에는 "어서 좋은 대학에 가서 학업을 마치고 방송 쪽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글이 있었으니 꽤나 진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당시의 필자는 연극 공부를 하는 것에 심취해 있었던 학생으로 교내 작품을 디렉팅 하거나 직접 연기를 한 다음 박수를 받는 커튼콜의 짜릿함에 매료되어 있었다. 


허나 필자는 결국 공대를 선택했다. 두꺼운 전공 서적 속 원유 정제 시 필요한 공식들을 외웠고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논문을 읽어보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동기들 중 일찍부터 인턴십을 알아보고 다양한 커리어 행사를 다녔던 친구들이 있는 반면 필자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선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가거나 무한도전을 봤다. 누가 보면 꿈 없이 살아가는 청년처럼 볼 수 도 있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에는 재밌는 일이 너무 많았다.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가는 것, 심지어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것 역시 늘 짜릿하고 새로웠다. 예를 들어 처음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갔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미술을 더 이상 수학하지 않았는데, 미술관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마주하며 큰 자극을 받았었다. 비록 뒤로 맨 가방 속에는 공대 수학 과제물이 있었지만 잠시나마 과거로 돌아가 미술을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동안 했었다. 그렇게 필자는 꿈이 없던 청년이 아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그래서 쉽게 장래희망을 결정하지 못했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후 필자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강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강의실 맞은편 기숙사에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강의 중 잠들까 봐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눈을 마주 보며 공부했다. 장래희망이 없을 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조금 더 많은 옵션들이 있지 않을까 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연구개발 직무를 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에 설레었었다. 신입시절, 모 상무님이 강연을 해주신 적 있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열정적인 눈빛을 마주하던 상무님은 잠시 과거에 젖어 들어 수많은 에피소드를 꺼내놓으셨다. 한 회사의 임원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는데, 그는 강연을 끝내고 마이크를 내려놓기 전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내 커리어 목표가 회사 임원인 사람 손? 

회의실에는 약 60명이 넘는 신입사원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누구 하나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존 커리어 상담을 준비하면서 한동안 쉽게 답하지 못했던 질문이 있었다. 바로 "당신의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요" 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목표가 회사 내 어느 위치까지 올라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여 한동안 검색을 했다. 그리고 매니저와 만나기 전 필자가 적었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내 목표는 프로덕트 매니징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아마존 내 최고 전문가가 되는 거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번 진행한 프로젝트보다 더 복잡하고 더 도전적인 과제를 맡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어. 


상담 중 매니저는 좋은 목표 설정이지만 조금 더 장기적인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사실 여기서 다뤄야 하는 커리어 목표라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아. 한번 예를 들어줄 수 있겠어?"라고 물어봤고, 그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네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해봐. 그 일이 꼭 아마존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어. 예를 들어서 자선 사업을 하고 싶을 수도 있고, 벤처 창업이 될 수도 있겠다. 네게 중요한 목표가 있다면 그걸 알려줬으면 해. 그래야 네가 나중에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 더 도움될만한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되게 신선한 발상이었다. 현 매니저와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그는 추가적으로 더 많은 예를 알려줬다. 누군가의 커리어 목표란 경력 사다리 (career ladder)를 밟고 회사 내 사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게 될 수 도 있다. 그럴 경우 본인의 전문성을 확실하게 키워야 하고 다음 위치에 맞는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 커리어 목표란 넓은 경험을 쌓는 게 될 수도 있다. 회사 내 위치를 수직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후 목표가 테크 벤처 회사 창업이라고 한다면 회사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제품 담당자 경험을 몇 년간 쌓고 마케팅 매니저, 세일즈 팀 등 다양한 업의 성격을 파악하며 수평적인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 아마존에서는 경력이나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승진을 하거나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선택과 능력에 따라서 역할과 목표를 설계할 수 있다. 필자가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테크 디렉터와 자주 회의한 적 있었다. 근속 연수가 15년이 넘는 그는 아마존 내 적은 숫자의 직원들만 갖고 있는 보라색 배지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근속연수 1-5년 차들이 하고 있는 하늘색 배지를 차고 있었다. 하루는 그와 맥주를 마시며 왜 보라색 배지를 받지 않냐고 질문한 적 있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좋아. 회의에 들어가서 테크 디자인들을 리뷰하고 반대하는 부분이 생길 경우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거. 그런데 내가 만약 보라색 배지를 하고 들어가면 젊은 친구들이 내 목소리에 조금 더 무게를 두려고 할 거야. 난 그런 게 싫고 지금도 현역에서 애들이랑 동등한 위치에서 싸우는 게 좋더라고" 라며 부끄러운 듯이 웃어넘겼다. 



필자에겐 커리어 목표가 확실한 절친이 두 명 있다. 

한 친구는 중학교부터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컴퓨터실로 뛰어가 스크린 넘어 보이는 다양한 비행기 기종들을 보며 흐뭇해했다. 소설책 한 권 집중하지 못했지만 방에는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비행 서적들이 가득했고, 여행을 갈 때마다 조종실 뒤 조그마한 좌석에 앉아 기장들을 바라보며 여행을 하곤 했다 (착륙 후 기념사진도 함께 말이다). 그는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지만 거대한 컨트롤러를 사용해서 비행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리기도 하였고,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필자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기종들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친구는 음악을 한다. 미국의 좋은 대학교를 다니다가 음악을 하고자 학교를 그만뒀다. 그 이후 부모님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되어 서울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월세를 내기 위해서 영어 과외를 하면서 음악을 만들었고 때론 교통비가 없어 한 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필자와 전혀 다른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부러웠던 적이 많다. 한 곳에 본인의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면 그 목표를 더 확실히 달성하지 않을까라며 말이다. 결국 첫 친구는 조종사가 되었다. 아직 그 친구가 태워주는 비행기를 타본 적 없지만 오늘도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시뮬레이션을 만졌던 것처럼 실제 비행기를 조종하여 하늘을 날고 있다. 두 번째 친구 역시 음악으로 큰 성공을 했다. 우리가 알만한 할리우드 영화 OST를 제작했고 외국에서 꽤나 유명한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두 친구 모두 본인이 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했고 누구보다 노력했기에 본인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커리어 목표는 무엇일까.

결국 매니저에게 "아직은 단기적 목표밖에 모르겠어. 조금 더 고민해볼게"라며 상담을 마쳤다. 어떻게 보면 이때까지 살아왔던 모든 시간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삼성에서 근무할 당시 필자가 아마존에서 근무할지 상상도 하지 않았고,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삼성에서 근무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많은 사람들이 MBA를 졸업하고 나면 삶의 답을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사적인 자리에서 필자가 목표가 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 목표가 없는 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표를 억지로 설정할 경우 그 긴 터널을 지나면서 어느 순간 동기가 바닥날 수도 있다. 혹은 이뤄낸 목표의 모습이 본인의 바람과 다를 때 오는 실망감도 꽤나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위 친구들처럼 확실한 목표가 없다면 굳이 억지로 꿈을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것보다 본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현재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단기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이때까지 지나온 길들이 그랬던 것 같고 다행히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본인이 가고 싶은 목적지를 알고 있다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최적화된 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면 조금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유연한 결정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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