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제약이 오히려 필요할 때

불편함을 이유로 구조가 정교해지는 과정

by 김태길

디자인을 하다 보면 기술적 제약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한의 언어가 아니라는 걸 점점 더 실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연히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이걸 할 수 없다고 하고, 저 기능은 이번 스프린트에 넣기 어렵다고 하고, 특정 인터랙션은 성능 때문에 구현이 어렵다고 말하면, 디자인은 계획해둔 흐름을 계속 수정해야 하고, 문장의 톤이나 버튼의 위치까지 다시 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처음에는 조금 짜증스럽고,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이 제약이 화면의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사고의 흐름을 더 정교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를 좁히는 순간 디자인의 선택지는 넓어지는 경우가 있다.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인터랙션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흐름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예쁘게 포장된 효과를 제거해야 하는 순간 ‘이 기능의 목적이 무엇이었더라’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애초에 중요한 것은 기능의 화려함이 아니라 사용자가 겪는 맥락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고, 제약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핵심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기술적 제약은 디자인의 허술한 구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그 드러남이 결국 더 자연스럽고 더 단순한 해법을 찾게 만든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복잡한 전환 효과는 이런 경험을 자주 만든다. 지나치게 화려한 움직임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렵고, 성능에도 부담을 주기 때문에 종종 제거되곤 한다. 그런데 이 제거의 과정이 오히려 화면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남긴다. 불필요한 감각적 레이어가 사라진 뒤 남은 구조는 자연스러움과 논리만으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흐름이 조금 더 정제된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의도가 더 선명해지고, 감각적 장식이 빠지면 목적이 더욱 드러난다. 기술적 제약이 정제라는 말의 의미를 실체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때로는 서버 구조나 보안 정책 때문에 특정 기능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어서 사용자를 한 단계 더 거치게 해야 할 때도 있다. 그 단계가 처음에는 UX를 해친다고 생각되지만, 다시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단계를 통해 사용자에게 필요한 확인 과정을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게 되고, 정보를 한 번에 밀어 넣는 방식보다 오히려 더 부드러운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제약이 자연스러운 맥락을 설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런 상황에서 배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기술적 제약은 디자인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사고를 다시 묶어주는 기준처럼 느껴진다. 제약이 없다면 흐름은 쉽게 욕심을 내고, 기능은 불필요하게 확장되며, 화면은 설계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형태로만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약이 있을 때 사고는 본질로 돌아가고,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덜어내게 된다. 제약이 만든 좁은 틀 안에서 오히려 더 단단한 균형이 형성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좋은 디자인은 자유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유롭지 않은 조건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기술적 제약은 디자인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벽이고, 그 벽의 모양에 따라 디자인은 새롭게 정렬된다. 결국 제약은 방해가 아니라 기준이고, 그 기준이 있을 때 디자인은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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