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늦은 시작·부족함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
“비전공자인데 디자인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취업이 가능할까요?”
“29살에 디자이너로 취업하려고 하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돼요.”
“포트폴리오는 만들고 있는데 부족한 것 같고, 이력서를 넣어도 연락이 한 군데도 안 와요.”
이 질문들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같은 지점에서 나온다. 지금의 내가 채용 시장에서 유효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비전공이라는 배경, 20대 후반이라는 나이, 짧은 준비 기간이 겹치면 이 불안은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띤다. 혹시 시작 자체를 잘못한 건 아닐지, 이미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닐지.
먼저 이 질문부터 정리해보자. 비전공자가 디자인을 시작하는 게 불리한가. 29살에 디자이너로 취업하는 게 어려운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전공자라는 배경은 분명 핸디캡이 될 수 있다. 디자인 전공자에 비해 시각 언어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고, 기본기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다만 채용 과정에서 이건 ‘탈락 조건’이 아니라 설명해야 할 맥락에 가깝다. 전공 여부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워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사고 방식을 갖게 됐는지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29살이라는 숫자가 문제라기보다는, 기업이 궁금해하는 건 따로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디자인을 선택했는지, 이전 경험이 디자인 업무에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직무를 단기 체험처럼 생각하는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가져갈 선택으로 보고 있는지. 이 질문들에 답이 보이지 않으면, 나이는 그때부터 리스크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맥락이 명확하면, 나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의미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연락이 안 온다는 결과 앞에서, 모든 원인을 비전공과 나이에 돌린다. 하지만 실제 채용 과정에서 더 자주 벌어지는 일은, 지원자를 어떻게 써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아 보류되는 경우다. 주니어 디자이너 채용에서 회사가 보는 건 완성도 높은 포트폴리오가 아니다. '이 사람이 우리 팀에 들어오면, 어디까지는 맡길 수 있겠다'라는 예측 가능성이다. 그런데 많은 입문자 포트폴리오는 이 예측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화면은 열심히 만들었지만,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는 보이지 않고, 문제를 정의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의가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실력이 부족해서 탈락한다기보다,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 넘어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비전공자 포트폴리오에서 특히 자주 보이는 문제는,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마음이 너무 앞서는 경우다. 최대한 그럴듯해 보이게 만들고, 가능한 많은 역할을 해본 것처럼 정리한다. 하지만 커리어 초반에는 이 방식이 거의 항상 독이 된다. 오히려 “여기까지는 해봤고, 이 단계에서는 이런 한계를 느꼈다”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훨씬 신뢰를 만든다. 채용 담당자는 완성형 인력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이 질문들에는 늘 얼른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함께 따라온다는 점이다. 이건 개인의 의지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 압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너무 크게 던진다. 취업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이 질문은 너무 넓어서, 오히려 아무 답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지금 내 포트폴리오는 어떤 회사에서, 어떤 역할까지 가능해 보일까. 소규모 팀인지, 에이전시인지, 인하우스인지. UI 제작 중심인지, 기획과 구조 설계까지 기대하는 포지션인지. 혼자 판단해본 경험이 있는지, 아니면 주어진 요구사항을 구현한 경험이 대부분인지. 이걸 스스로 명확히 하지 않으면, 지원은 계속 막연해지고 결과도 따라오지 않는다.
연락이 오지 않는 시기는 거의 모든 디자이너가 한 번씩 겪는다. 특히 커리어 전환을 시도한 비전공자라면 더 그렇다. 이 시기를 지나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재능보다는 태도에 가깝다. 불안해하면서도 계속 구조를 정리했는지, 아니면 불안 자체를 증명하느라 시간을 써버렸는지. 채용은 한 순간에 결정되지만, 준비는 누적된 상태로 드러난다.
비전공자, 29살, 짧은 준비 기간이라는 조건은 분명 쉽지 않은 출발선이다. 하지만 이 조건들 자체가 커리어를 끝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정리하지 못한 채 지원을 반복하다가, 아무 피드백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탈락시킨다.
취업이 어려운지를 묻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게 있다.
지금 나는 어떤 팀에서, 어떤 기대치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답이 생기기 시작하면, 나이와 전공은 생각보다 빠르게 뒤로 밀린다.